오늘은 사도행전 10장15절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에서 "깨끗하다.", "속되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모세의 율법 즉 레위기 7장21절에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깨끗하지 못하고 속된 즉 부정한 물건이나 짐승을 먹거나 만져서 부정해진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없어짐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그 부정한 물건이나 짐승, 사람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 11장" 이니.....
중요한 것은 모세의 율법 그 자체는 장차 우리 앞에 드러나고 나타나게 될 하나님을 향한 좋은 날, 좋은 소망에 관한 지극히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그렇기 때문에 초보적이고 부분적인 그림자(히브리서 10장1절)에 불과하므로 이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믿는 모든 믿음의 행위(행실,행동)가 우리로 양심상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개혁(히브리서 9장9절)하여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이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모세의 율법을 새롭게 뜯어 고쳐서 이스라엘(유대인)이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리고 전하며 가르치신 것이 "4복음서" 이며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에게 계시(啓示,갈라디아서 1장11~12절)하여 보이신 "바울 서신서" 이니 그러나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고 완성된, 이면적이고 장성한 참 형상(실체)의 율법을 보이고 드러내고 나타내며 이를 전하고 알리며 부지런히 가르치셨지만 진정한, 진짜 사람은 우리 속에 마음 속에 있는 속사람인 것을, 속사람이 깨끗하게 변화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겉사람을 권력으로, 재력으로, 학력으로, 타성에 젖은 연륜으로 화려하게 감추고 숨긴다고 하여 속사람까지 깨끗하게 바뀌고 변화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당시에 4000년을 이어왔던 하나님을 향한 지극정성 믿음을 하루 아침에 헌신짝처럼 버리고 대수롭지 않게 경홀(소홀,만홀)히 여겨 지켜 행하지 않았으며 이는 2000년이 지난 지금,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 오늘날에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이 일반이니 우리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 속사람의 나약함과 아픔과 고생스러움과 고달픔과 간절함을 바라봐주지 못하고 능력, 재력, 학력, 위치(자리), 스펙에 따라서 뒤 봐주고 눈 감아주고 줄 세워주는 관행을 더욱 중요시 여기면서 그렇지 못하고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하고 언짢아지면 지극히 작은 자의 겉모습으로 오셨던 그리스도의 진짜 사람 속사람을 보지 못하고서 미워하며 비방하고 때리고 침 밷고 곤욕을 치르게 하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행하였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한 것들을 행함에 거리낌이 없고 거침이 없으니 누가 더 정하지 못하고 부정한 즉 속된 것일까?
그래서 마태복음 15장16~20절에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말씀은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뒤집는, 대반전의 의미로써 결국 모세의 율법에서 기록하고 있는 정함, 부정함 즉 깨끗하고 속된 것은 사람도, 짐승도, 어떤 물건도 아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관한, 속사람의 어떠함에 대한 것을 알리고자 전하고 하셨던 것이 참된 하나님의 뜻이며 다시 말해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감사함(디모데전서 4장4절)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고 더러울 것이 없는데 사람이 감사하지 못하고 감사함으로 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불평과 불만과 미움과 원망과 분노로 함을 행동으로든, 말로든 쏟아냈던 우리 사람 자체가 부정하고 속된 것이며 더러운 것이니 우리가 하나님께 있는 좋은 날, 좋은 것 곧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아직까지, 여전히 2000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이 모세의 율법에 속하여 자기자신 속의, 마음 속의 깨끗함과 속됨의 어떠함을 들여다보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남,타인)의 겉모습이 어떠함을 까칠하고 예리하게 바라보면서 겉으로는 거룩하고 고상하고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마음으로는 죄되고 악하고 불의하며 불법한 소위 속된 것으로 채우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여도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과 똑같은 오류와 누(累)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6장41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면서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는 것처럼 오죽하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라는 고백을 했을까? 깨끗하고 속된 것, 정하고 부정한 것을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남을 쳐다보지 말고 타인에게 눈총주지 말고 오직 우리 자신의 내면이 어떠한지, 내 속사람이 부정적이고 꼬이고 사나워져서 부정하고 속된 것인지 그 무엇보다 살펴야 하리니 만일 아직도, 지금도, 여전히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정한자, 속된 자로 서게 되며 그 때에는 참으로 모세의 율법에서 기록하신대로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왕 같은 제사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반열에서 끊쳐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