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63장1절에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에서 "홍의(紅衣), "의복(衣服)" 하는 "옷"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옷" 은 사람의 몸(육신,신체)을 보호하기 위하여 천이나 가죽 등으로 만들어 입는 것을 뜻하며 또한 그 입고 걸치는 "옷" 의 화려함이나 누추함, 부드러운 의복이냐 거칠은 의복이냐, 아름다운 옷인가 더러운 옷(야고보서 2장2절)에 따라서 그 사람의 위치(신분)를 알 수 있으며 하지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이러한 옷의 특성과 성질에 빗대어 이사야 59장17절에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 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신체,육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옷을 입듯 우리의 영혼(마음), 정신 세계를 파멸(멸망,패망)과 사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義)와 구원에 이르는 옷과 같은 말씀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여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이사야 61장10절에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신랑이 신부를, 신부가 신랑을 맞이할 때에는 이에 걸맞는 옷과 보물로 단장하며 쓰고 걸치듯 하나님께 있는 그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구원의 옷, 의의 겉옷으로 단장하며 입어야 하리니 우리 사람(인생)은 하나님께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신의 성품(베드로후서 1장4절)을 마음 속에 품고 있지만 삶이, 인생이,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람이든 어떤 일(문제,상황)이든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욕심을 신의 성품보다 더 품게 되며 하지만 욕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그 따라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못마땅해지고 마음에 안들고 언짢아지게 되며 이러한 마음은 신의 성품을 너무나 쉽게 던져버리게 만듦과 동시에 사람으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게 만들며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고 하며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게 만들므로 이러한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이 사람으로 파멸(패망,멸망)과 사망(죽음)으로 내리 달리고 질주하게 하였고 그런즉 이러한 모습은 먹이를 위하여 물고 뜯고 성난 사자나 짐승처럼 사나워져서 싸우는 것이 겉사람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 속사람은 짐승(동물)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마태복음 3장4절에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짐승(약대) 털옷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옷(로마서 13장14절) 입어야 하며 허리에는 짐승 가죽띠가 아닌 진리의 허리띠(에베소서 6장14~17절)를 띠어야 하며 이를 계시록에서는 "금띠(계시록 1장13절)" 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먹어야 할 음식은 멜기세덱(창세기 14장18절)의 반차로부터 나온 떡과 포도주이어야 하리니 "세례(침례) 요한"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5년2월5일자,2014년4월24일자,2013년9월13,14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세례(침례) 요한은 그 시대, 그 당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알리며 가르침에 있어서 그 말씀의 차원의 높기가 가장 컸으며(마태복음 11장11~13절) 하지만 제아무리 높고 크다고 할지라도 세례(침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약속(예언,언약)하신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맡아서 예비(마태복음 11장10절)하는 사명과 임무로 온 자이기 때문에 때가 되면 그 자리(위치)에서 내려와 그리스도 앞에 차별없이 하나(갈라디아서 3장28절)여야 하지만 사람은 시간이 흐르고 타성에 젖으면 처음에 가졌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하고 순전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명예와 재력과 권력과 권위에 눈이 멀어져서 뒤 봐주고 줄 세워주고 눈 감아주는 사람의 계명(마가복음 7장6~8절)을 더욱 좇아서 행하게 되니 가장 큰 자였던 세례(침례) 요한이 그러하면 그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던 이스라엘(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을 잡아 내시길 바라며.....
그러므로 디모데전서 2장9~10절에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하는 것처럼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옷 입듯해야 함이 어찌 남자, 여자가 있을까? 그 염치와 정절로 옷 입음이 오직 선행에서 비롯되며 또한 선행(善行)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 곧 그리스도로 옷 잆을 때에라야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도 처음부터 그리스도로 옷 입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 있는 사람의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를 입고 나셨으며 그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버리고 비우기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고 못 박으시므로 그 모습이 눈 같이 흰 옷(마태복음 28장3절)을 입은 것처럼 희었으니 베드로전서 4장1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또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행하여 왔던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았던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의 옷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로 옷 입고 갑옷을 삼을 때에 비로소 죄가 그치리니 이것이 진정한 "세례" 요 의식(儀式)으로 행하는, 지켜지는 세례로는 절대로 우리로 양심상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라며.....
계시록 3장4~5절에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같은 눈 같이 흰 옷을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며 그 이김은 다른 사람(타인,남)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야고보서 3장14~16절) 즉 이 세상에 어찌 모든 일이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마음에 들고 좋은 일만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럴때마다 못마땅해하고 언짢아하고 마음에 안들어 하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다면 이는 죄에게, 악에게 져서 노예가 되어 종노릇하는 것이니 이러한 죄와 악과 불의 불법과 싸우는 싸움이요 싸워서 이길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우리가 입어야 할 거룩한 옷(시편 29편2절)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