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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이사야 63장7절)

교훈 안에 2019. 9. 28. 10:09

오늘은 이사야 63장7절에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에서 "자비(慈悲)" 와 "긍휼(矜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자비" 는 "자애", "박애", "인애" 와 같은 맥락으로 측은지심 즉 긍휼한 마음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사랑" 에는 남녀간의 사랑, 동료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등등등 사랑의 종류와 방법은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사랑한다면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거나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없이, 이유없이 베풀며 행할 줄 아는 "희생" 이 없이는 참된 사랑,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없으니 느헤미야 9장29~31절에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이렇듯 사람을 대하여 변함없이, 끊임없이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하시는데... 이 말씀은 비록 모세의 때에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가는 노정에서 있어진 일들을 기록하신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이와같은 행실(행위,행동)은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반복하여 동일하게 행하여 온 것들로써 경계치 않으며 교훈으로 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계명,법)을 전하고 알리러 오신 또한 그 뜻을 온전히 지켜 행하러(히브리서 10장7절) 오신 그리스도를 참형, 극형 곧 십자가의 죽음으로 결국 몰고 갔으니 이 또한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인 오늘날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고린도전서 10-장11절)와 교훈(로마서 15장4절)의 말씀으로써.....

이제는 죽어서 이 세상에 흔적조차 없어지고 사라진 그들말고 지금 살아서 생생하게 접하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하나님의 뜻인 최고한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완전하신 법(로마서 13장10절)을 잘 지켜 행하고 있을까? 불편하게, 어렵게, 조금만 곤란하게 만들어 상대방(남,타인,다른사람)이 못마땅해지고 마음에 안 들고 언짢아지면 참아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라 확 올라와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잘못되기를 바람)하고 다투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이 모세의 때처럼 여전히 만연하며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9장13절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자비)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진짜 "죄" 는 교회(성당,성전) 안가고 안믿고 이러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면서도, 믿으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현실에서 선(善)을 행할 줄 알고도, 사랑을 행할 줄 알면서도 자신의 여러 고집과 아집과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이러한 것이 이유와 핑계가 되어 선을 행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죄(야고보서 4장17절)" 이며 그런즉 이 세상에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음으로 하여 이러한 인지상정(人之常情),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보아 겸손한 마음(빌립보서 2장1~3절)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서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행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마음이 아닌 얼굴을 보이러 오는 제사(예배,헌금)보다 더 원하고 바라시는 것임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는 것처럼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의 본보기(모범,표적)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시요 동등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 있는 사람의 모양(로마서 8장3절)으로 나셔서 사람보다 더 낮추시고 낮추기시기를 죽기까지 복종(순종)하셨으니 이것이 "십자가의 도(고린도전서 1장18절)" 이니 다시 말해서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있는 모양, 죄의 종의 형체를 입고 태어나셨다면 하나님의 뜻인 그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피, 눈물이 따르는 고뇌와 애통과 심적 갈등 곧 고난이 있었을 것이며 이를 버리고 비우는 것이 "못 박히심" 이요 완전히 버리고 비우는 것이 "죽으심" 이며 이로써 하나님께 있는 생명(부활)에 참예하시며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셨으니 이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우리 또한 따르고 좇아서 지켜 행할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인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며 이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 서로가 서로를 대하여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행하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55장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물론 하나님께는 자비와 긍휼(예레미야 애가 3장22절)이 무궁하시지만 이는 우리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를 조사하고 살펴서 그 행위를 돌이켜 고쳐 행할 때(예레미야 애가 3장38~40절)에 하나님께서도 우리 사람을 비로소 용서하시고 생명(부활)과 안신과 구원으로 복(福)으로 갚아주시는 것이며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행하기보다는 쉽게 미워하고 원망하며 쉽게 분노하고 비방하며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 불법을 행하기에 손과 발과 눈과 입이 빨랐으니 우리가 죄인 중에 괴수(디모데전서 1장15~16절)이며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앞서서 일체 오래 참으시는 본보기를 보이사 그리로 좇아오게, 지켜 행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께 있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선물이요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빅픽쳐라는 것는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