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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

교훈 안에 2019. 10. 19. 09:10

오늘은 사도행전 10장45절에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 에서 "할례(割禮)"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할례" 라 함은 출애굽기 12장48절에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찌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미 6000년 전 모세의 율법에 타국인(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할례(음경의 표피를 잘라내는 의식)를 받아야 본토인(하나님의 백성)과 같은 입장이 되며 그런즉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유월절 규례(출애굽기 12장1~17절)와 함께 이 "할례" 를 받아야 하리니.....

중요한 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먼저 하신 언약(약속,예언)의 말씀으로써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에게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창세기 17장10~14절)를 행한 것이 그것이며 다시 말해서 로마서 4장11~13절에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역시 처음부터 할례자로서 하나님의 백성, 믿음의 조상이었던 것이 아니라 무할례 시에 하나님을 향한 구구절절하고도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할례의 표를 받게 된 것이며 또한 그 할례의 표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시작하는 무할례자의 조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러저러한 계기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므로 믿는다고 자만(교만)할 일도, 안믿고 못믿는다고 움츠릴 일도 아니라는 것이며 그런즉 "할례" 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표이긴 하지만 "믿음" 이라고 하는 것이 형식과 절차와 순서와 의식(儀式)을 중요시하는 의문(儀文)에 있는 율법의 행위보다도 진정한 믿음의 자취를 좇고자 하는 "진실된 마음" 이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것이니 "믿음의 행위" 라고 하는 것은 마음에는 없어도, 믿음은 없어도 체면이나 권위(명예)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라도 보이기 위해, 보여주기 위해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의식(儀式)만 행할 수도 있는 여지(가능성)가 있고 다분(多分)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2장28~29절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의문(儀文)" 이라고 하는 것은 모세의 때에 하나님께 예(예배)와 제(헌금)를 드리는 예법(禮法)의 절차와 순서를 기록한 글로써 오늘날에는 교회, 성당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 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보(週報)" 같은 것이며 다시 말해서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믿는 자라고 할지라도 마음에서 진정 우러나서 할 수 있어야 참된 할례이기 때문에 그 진정한, 진실된 마음은 몸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리를 낮추어 다시는 목음 곧게 하지 않는 것(신명기 10장16절)으로써 마음을 낮추어야만이 비로소 사람의 죄 범함과 악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완전한 법(로마서 13장10절)을 지켜 행할 수 있으리니 사도행전 7장51절에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하는 것처럼 제아무리 열심으로 기도하고 충성으로 봉사한다고 하여도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스르는 것으로써 우리 사람의 못마땅하면 미워하고 원망하고 마음에 안들면 분노하고 비방하고 언짢아지면 다투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행하던 마음 가죽(예레미야 4장4절)을 베어내지 못한다면 절대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지 못하며 하늘의 하나님께로 내려오는 예루살렘(계시록 21장2절)을 덧입을(고린도후서 5장1~2절) 수 없으며 혼인잔치에서 입어야 할 빛난 세마포(계시록 19장7~8절)도 입을 수 없으리니 하나님 나라(이사야 52장1절)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3장16~17절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언약)은 그 이후에 모세에게 주신 율법과는 별개이고 다른 것으로써 "율법" 하나님을 섬기고 모시는 육체의 예법(히브리서 9장9절)에 불과하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행위의 전부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죽기 직전에 한 번 예의를 갖추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처음에 탄생했을 때와 어렸을 때에는 율법에 속하여 율법 아래(갈라디아서 4장1~4절)에 있어서 난 지 팔 일만에 모세(요한복음 7장22절)로부터 주어졌던 육신(몸)에 행하는 할례(누가복음 2장21절)를 받았으며 하지만 이미 레위지파에 속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과 같은 존재였던 제사장이 있었음에도 유다지파에 속한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참된 의의 왕, 평강의 왕(히브리서 7장2절)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면서 장성하여 몸과 마음에 있는 죄되고 악하며 불의와 불법을 행하던 마음 가죽의 할례를 행하였기 때문이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십자가의 도(道)" 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는 것(히브리서 10장7절)" 이라 하니 다시 말해서 율법에 기인한 형식과 절차와 순서와 의식을 좇는 육체의 예법, 예식은 마음에는 없어도, 믿음은 없어도 얼마든지 행위로만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는 것은 마음에 없으면,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행할 수 없는 것이며 마음 가죽을 베어내는 할례를 행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선행되어야 그리스도께서 본보기를 보이신 십자가의 도(道) 즉 육체의 정욕(갈라디아서 5장24절)을 버리려는 노력(고난)과 못 박음, 죽으심이 없이는 부활(생명)도 안식도 구원도 없으리니 그런즉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지킬 따름(고린도전서 7장18~19절)이며 육체의 정욕과 소욕(갈라디아서 5장17~18절)의 육적 몸을 벗는 것이 진정한 할례(골로새서 2장11절)로써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몸소 본보기로 실천하여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죽으심(골로새서 2장13~15절)을 보이시고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믿는다면 좇아서 따라오게 하신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