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도행전 10장4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에서 "세례(洗禮)"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교회를 다니고 천주교를 다니며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외치며 부르짖는 사람 중에 "세례" 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몸에, 머리에 물을 뿌리기도 하고 손을 씻기도 하고 발을 씻기도 하며 몸 전체를 아예 물 속에 빠졌다가 나오기도 하는 "세례" 의 방법과 종류는 많이 있지만 "세례 의식(儀式)" 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우리 사람(인생)의 죄을 씻고자, 씻어서 정결케 깨끗케 하고자 함에 있으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6000년 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성도,자녀)들이 장막(성전,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릴 제사(예배와 제물)를 위하여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육체의 예법(禮法), 예식(禮式)으로써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리니 다시 말해서 "율법" 은 참 형상(실물)이 아니라 참 형상에 대한 그림자(히브리서 10장1절) 즉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예배,헌금)가 양심상(히브리서 9장9~10절) 그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는 부분적이고 초보적(히브리서 6장1~2절) 단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베드로전서 3장21절)을 알(깨달을) 수 없음으로 하여 반드시 개혁(改革) 곧 새롭게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하리니.....
요한복음 3장16절에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하고 쓰고 있듯이 "세례(침례) 요한" 은 그리스도께서 드러나고 나타나심과 동시에 모세의 율법으로 행해지는 모든 육체의 예법과 예식의 마지막(누가복음 16장16절)이 되는 길예비 사자(마태복음 10장10~11절)이며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율법의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그림자 즉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율법의 모든 것을 끝내시고(로마서 6장4절)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은혜와 진리(요한복음 1장17절)로 오셨으며 하지만 한 사람 "예수" 가 그리스도(사도행전 2장36절)가 되시기까지는 그 역시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 있는 사람의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를 입고 태어나셨기 때문에 율법 아래(갈라디아서 4장1~5절) 즉 그 당시, 그 당대의 율법 아래에서 율법대로 행하는 대제사장들과 세례(침례) 요한이 주는, 베푸는 세례를 받았으니...
중요한 것은 2000년 전 유대(이스라엘) 땅에서 율법으로 행해지는 모든 육체의 예법과 예식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은혜와 진리로 온전히 이루셨다면(요한복음 19장30절)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겠다(임하시겠다)는 약속(언약,예언)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2000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역시 아직도 여전히 모세의 율법에서 난 육체의 예법과 예식을 행하지 않았으리니 그런즉 온전히 이루시고 끝내시기(로마서 9장28절)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 오늘날에도 부득이 2000년 전에 있었던 길예비 사자와 그리스도와의 상관 관계가 재현(再現)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그래서 참 형상(실물)의 온전한, 완전한 "세례" 는 겉사람의 손을, 발을, 몸을 물로 씻고 닦고 뿌린다고 하여, 그러한 예식(禮式)과 의식(儀式)을 행하고 지킨다고 하여 절대로 속사람 곧 마음에 있는 죄를 씻을 수도, 닦을 수도, 깨끗케 할 수도 없으며 다만 이러한 것은 율법에 입각한 형식과 절차와 순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러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들(체면,자존심)을 중요시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으며 못마땅하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훼방하고 마녀사냥하듯 잡으며, 언짢아지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마음에 있는 이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씻어내야 깨끗하게 되며 이것이 온전한 "세례" 가 되리니 쉽게 말해서 사람이 잘못인 줄 알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무뎌지고 무감각해져서 서슴치 않고 이러한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행하다가 때(예배, 기도)가 되면 죄에 대한 용서와 관용과 자비와 긍휼을 하나님께, 그리스도께 구하기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것이 죄(罪)되는 줄 안다면, 악(惡)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가책을 느껴 찔린다면 다시는 그와같은 것을 행하지 않으려 깨어서 하나님의 의(義) 곧 그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완전한 법(로마서 13장10절)에 서서 행하려 삶속에서, 현실에서 노력(훈련,연습)하면서 죄(고린도전서 15장34절)를 짓지 말아야 하리니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이며 이제는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참된 회개가 없이는 죄 사함 즉 "세례" 는 없으며 "세례" 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온전한 성령(사도행전 2장38절) 또한 받을 수 없으리니 성령을 받지 못하고서야 어찌 그리스도의 사람(로마서 8장9절)이라, 그리스도로 옷(갈라디아서 3장27절) 입었다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29~31절에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하는 것처럼 대대손손 우리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그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능력 곧 학력이나 재력이나 권력 그리고 권위와 지위와 나이와 성별과 같은 것들로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고 세우기 위해서 정작 마음의 자리는 상좌(上座)에 두고 높아져서 뒷짐지고 좌지우지 부리기를 좋아하며 대접받기만을 좋아하였으니 그러나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겉치레와 관행은 이제 개혁이 되어야 하며 이를 깨트리고 제대로, 똑바로 세우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부터 그러한 육체의 정욕과 소욕대로 행하던 것들을 버리고 비우기 위하여 고뇌와 애통과 싸우는 심적 갈등 고난을 겪으셨으며 이를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십자가의 도(고린도전서 1장17~18절)" 라 기록하고 있으니 고난이 없이는 결단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죽일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사는 부활도 없으리니 부활을 논하며 부활를 외치며 부활을 믿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이지 못하고 이때까지 하던대로 물고 뜯고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다면 우리에게 성령과 불로하는 세례 즉 마음에 있는 죄를 씻어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앞서서 죽으신 그 죽으심의 십자가의 도를 전하신 말씀을 헛되게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또한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는 노력(훈련,연습)을 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로마서 6장3~4절)를 받은 것이며 비로소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