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63장18절에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대적이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 에서 "대적(對敵)"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대적" 이라 함은 어떤 이유로 서로가 맞서서 적대시하며 싸우는 적을 뜻하며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의 대적이며 하나님의 "대적" 은 마귀(베드로전서 5장8절) 곧 사단(계시록 20장2절)이며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귀의 궤계(에베소서 6장11절)이며 마귀, 사단의 간사한 꾀 즉 그 궤계(詭計)는 야고보서 3장14~16절에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나 잘 보여야 하는 곳에서는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관용과 배려와 양보로 하면서 보이지 않는 뒤에서나 잘 보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는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그 마음의 자리를 상좌(上座)에 두고서 다투고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는 악함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하리니 입으로는, 말로는, 혀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행실은 하나님의 대적(對敵)인 마귀, 사단을 좇아서 행하기 때문이며 이는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이 행하는 것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다고 부르짖으며 외치는 자들이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갈라디아서 5장16~17절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는 것처럼 성령(聖靈)을 좇아서 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비둘기와 같은 성령(마태복음 3장16절)이 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인 그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법(로마서 13장10절)을 온전히 지켜 행하기(히브리서 10장7절) 위하여 마음에 이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싶은 육체의 욕심 곧 정욕(갈라디아서 5장24절)을 버리고 비우려는 노력(훈련,연습)을 하시며 그 욕심으로 말미암아 행하게 되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 곧 육체의 소욕을 행하지 않으려 고뇌와 애통하고 심적 갈등 곧 고난을 겪으셨으니 이는 우리들을 위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으로써 버리고 비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고난을 겪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육체의 소욕 곧 그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부르짖으며 외치고는 있지만 실상은 생활속에서, 현실에서는 말로만 할뿐, 말뿐일 때가 많음으로 하여 로마서 3장10~12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무론대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 사람(인생)은 하나님의 의(義)대로, 성령으로 행한 자는 없으며 모두가 자신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기준,관점)과 욕심에 치우쳐서 욕심만 채우고 끌어안기 바빴으며 이러한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선택적으로 선(善)을 행하여 왔으니 온전히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오히려 "대적" 이 되어 행할 때가 많았음으로 우리의 싸움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내면(內面)의 보이지 않는 "속사람" 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0장4~5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삶속에서, 생활속에서 서로서로 유대관계,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또한 사회적으로 명성과 권위와 명예를 쌓으면 살아가며 하지만 권위와 명예가 쌓이는만큼 함께 자존심과 체면도 쌓아가게 되고 저마다 학력, 재력, 권력, 지위(위치), 나이, 성별과 같은 내세울 수 있는 간판을 통하여 뒷짐지고 상대방(남,타인,다른 사람)을 부리려 하고 대접만 받으려 하면서 마음도 임금처럼, 사장(회장)처럼 높아졌으니 이러한 사람의 모습(자세)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베드로전서 3장21절)에 있어서 견고한 진, 철옹성이 되어 막고 있음으로 하여 위아래 곧 높고 낮음의 잘못된 논리(이론)을 파하여 깨부수지 않는다면 계속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며 이를 파하기 위해서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으로 바뀌고 변화되어야만 하며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높아진 마음을 버리기 위하여 겪으신 고난으로 싸워 이기셨으니(요한복음 16장33절) 데살로니가후서 2장4절에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스스로를 낮추지 못한다면 역설적으로 하나님처럼, 임금처럼, 회장님처럼 그 마음이 항상 상좌(높은 자리)에 앉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소위 "갑질" 이라고 하는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악한 자(데살로니가후서 2장9절~12절)가 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적자가 되리니 참된 하늘과 땅의 이치 즉 높고 낮음의 참된 진리를 좇아서 행하기를 싫어하며 오히려 불법,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5장5~6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는 것처럼 이 말씀이 어찌 젊은이들에게만 국한된 말씀일까? 남녀노소, 무론대소하고 무엇보다 서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이타심(利他心)과 겸손으로 겸비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교한 자로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회장님처럼, 임금처럼 칼자루를 자신의 입맛대로 마구 휘두르는 대적하는 자가 되리니 항상 마음을 말석(末席)에 두어 상대방을 헤아리고 살피며 오해하거나 와해하지 말아서 이해하려 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뒷짐지고 대접만 받으려하지 말아서 배려하고 양보하려 애쓰며 노력(훈련,연습)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우편으로 높이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