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64장3절에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 에서 "산(山)"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이 "산(山)" 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이유는 계시록 14장1절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하시면서 4절에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약속(언약,예언)대로 오시기는 오시되 "산" 에 오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 곳에 처음 익은 열매 즉 그리스도(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 붙은 자들(고린도전서 15장23절),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들(갈라디아서 3장27절)이 있기 때문이니 여기에서 "시온 산" 이라 하시는 것은 정말로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하는 산(山)이 아니라 "인산인해(人山人海)"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의미하며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육신)만 모여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하시면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심 곧 그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 교훈" 의 본(本)에 한 마음 한 뜻이 모인 곳, 그러한 마음과 뜻을 지켜 행하는 것이어야 처음 익은 열매요 진정한 "산(山)" 이라 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이 계시록 21장10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
을 보이니~ "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인생)에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주신 가장 큰 목적인 거처를 함께 하시는 것(요한복음 14장23절) 곧 덧입음(고린도후서 5장1~2절)으로 온전한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23장37절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시대시대마다, 그 세대세대마다 거처를 함께 하기를, 덧입기를 즉 하나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되어 줄 하나님께 속한 자, 처음 익은 열매들을 모으려, 그 마음들을 모아보려 하셨고 그 흔적이 바로 에덴 동산(아담 때), 아라랏 산(노아 때), 모리아 산(아브라함 때), 시내 산(모세 때), 시온 산(유대 땅에 오신 그리스도 때)이며 그러나 우리 사람은 마음에 불일 듯 이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는 악한 생각과 비방하고 때리고 훼방하는 죄 범함과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불의와 불법에 종 노릇함이 대대손손 유전처럼 뼈속 깊이 박혀서 하나님의 계명과 법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7~8절) 그 이타심(利他心)으로 바뀌고 변화되어야 하는데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으로 행하기에 손과 발과 눈과 입이 빨랐으니 이러한 역사가 지금 살아서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바라고 소망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와 교훈이 되어서 매번 반복된 이 시행착오의 종지부를 반드시 찍어어 할 사명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잡아 내시길 바라며.....
그래서 에스겔서 35장3절에 "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 하고 쓰고 있듯이 "
세일산" 은 에돔족속, 즉 에서의 자손들(창세기 36장1~8절)이 있던 곳을 의미하며 중요한 것은 "에서" 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장자(長子)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에게 그 장자권을 빼앗긴 것처럼 겉모습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었던 이스라엘(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율법의 규율과 형식, 체면과 자존심에 묶이고 매여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침 밷고 때리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과 불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못박아 죽임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그 장자권을 빼앗긴 "에서" 와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자들이 모인 곳을 "세일 산" 에 빗대어 하신 말씀으로써 무늬는, 겉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바란다고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외치며 부르짖으면서도 실상은 삶속에서, 현실에서 믿는 하나님의 뜻인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대로, 법(로마서 13장10절)대로 지켜 행하지 못하고 못마땅하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훼방하며 언짢으면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고 있다면 세월(시간)만 흘렀을 뿐, 공간(장소)만 바뀌었을 뿐 2000년 전 그 때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별반 다른 것이 없으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처음 익은 열매 곧 아들들(히브리서 2장10절)이 될 수 없으리니 그리스도께서 본보기로 보이신 그 지켜 행하심 즉 육체의 정욕(욕심)과 그 소욕(갈라디아서 5장17~24절)을 버리고 비우기 위하여 자기와의 싸움 곧 고난을 같은 마음으로 겪으며 이겨내어(요한복음 16장33절) 못박음으로 죽을 수 있어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붙은 자, 옷 입은 자가 되어 어디에 있든지 "시온 산" 에 있는 자가 되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영들, 성령들을 덧입음으로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49장13절에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하시면서 18절에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아직도, 여전히, 지금도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매이고 묶여 있어서는 절대로 노래할 수 없으며 기뻐할 수 없으며 만약에 노래하며 기뻐하고 있다면 이는 가식이요 거짓이요 외식이니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계신 그 "산" 에 모인 자, 올라간 자로서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하시면서 지켜 행하신 십자가의 도(道) 즉 그리스도 교훈안(요한2정1장9절)에 거하여야 하며 이를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리고 비워야하는 고난은 있겠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는 옛말도 있는 것처럼 오히려 세상의 꼬질꼬질한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종노릇하는 세상 짐보다 어느 순간 가벼워지고 쉬워지리니 이곳이 혼인집이요 우리들가 신부로서 하여야 할 단장이요 예비이며 그 혼인집(누가복음14장8~11절)에서 스스로를 낮추지 못하고 그 마음으로 말석(末席)에 두지 못하고 계속하여 상석(上席)에 앉아 있는 자는 결단코 들어올 수 없으며 고난이 사람으로 낮추게 만들기 때문에 비로소 온전한 생명과 쉼(안식)과 구원을 유업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