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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교훈 안에 2020. 3. 28. 05:59

오늘은 사도행전 13장22~23절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에수라." 에서 "다윗(David)"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다윗" 은 잘 알고 계시듯이 초대 왕 사울 다음으로 왕이 되어서 주변의 여러 이방 국가들로부터 가장 강력하고 이상적인 이스라엘 왕국(국가)을 만들었던 인물로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훗날 다윗와 같은 다시금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이끌어 갈 이상적인 유대 왕을 유대인들은 기다리게 되었으니.....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약속하신 "다윗의 위(位)에 앉은 유대 왕" 과 유대인들이 생각하며 기다리는 "다윗과 같은 유대 왕" 에는 상당한 갭(이견,차이)이 있었으니 유대인들 아니 사람(인생)이 생각하는 "왕" 이라 함은 좋은 집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학벌에 강한 권세와 권력이 있어서 그 힘으로 이방 국가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들을 통제해주며 우러러 볼 수 있는 그러한 "왕" 을 원하고 기다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뜻하시고 약속하시 왕은 이사야 9장6~7절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 어깨에 맨 정사(政事)는 오직 공평과 정의로 행하는 것이며 백성(자녀,성도)들 사이에 독한 시기(미움,분노,비방,함부로 함,갑질)와 다툼(야고보서 3장14~16절)이 없게 하는 모사(조언자)로서, 서로가 화기애애하고 화목하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평케 하는 "평강의 왕" 으로서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인 것을 알(깨달을) 리가 없는 유대인들로서는 "섬기러 왔다(마가복음 10장45절)" 고 하는, "아버지의 뜻만을 행하러 왔다(요한복음 5장19절)" 고 하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또한 오직 공평과 정의로 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기준,관점), 욕심(성공,권력)에 치우치거나 앞세우면 안되고 오직 남(다른 사람,타인,상대방)의 유익을 먼저 구하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빌립보서 2장3~5절)으로 헤아리고 살피며 이해하려는 노력(훈련,연습)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그 동안 습관처럼, 버릇처럼 자신을 먼저 위하고 앞세우는 육체의 정욕(욕심,욕구)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을 겪어야 만이 비로소 온전한 다윗의 위에 앉은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의의 왕(히브리서 7장2절)", "평강의 왕" 이 될 수 있으며 이것으로 이 세상을 치리하고 다스릴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과 약속(예언,언약)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예레미야 22장2~3절에 "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탈취당하고 압제당하며 학대받았던 것은 서로가 서로를 헤아려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과 사람이 사람에게 배려와 양보해주지 못하는 것과 나이나 학벌, 성별, 재력, 권위, 자리(지위)를 방패 삼아 차별하고 구분지어서 갑질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윗의 위에 앉은, 다윗과 같은 왕이라면 먼저 앞서서 본보기로 이를 몸소 실천하여 행하는 것이며 이것이 그 어깨에 맨 공평과 정의로 행하는 정사(政事)이지만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마치 왕과 다름이 없었던 율법사, 대제사장들에게 보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러한 하나님의 참 모습은 한 없이 약해 보이고 없어 보이고 굴욕적으로 보임으로 하여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는 조롱썩인 팻말과 함께 그리스도를 극형(십자가)에 처하였으니 하지만 이조차도 그리스도는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침 밷고 때리고 함부로하였던 것이 아니라 입에 재갈을 먹여 그 입술로 범죄치(시편 39편1~2절) 않으려고 잠잠하였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어깨에 맨 공평과 정의를 위하여 이를 묵묵히 행하였으니 이로써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생명(부활)에 참예하게 하시고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실 약속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좇아서 행하게 함으로 우리로 왕 같은 제사장(베드로전서 2장9절)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1장3~4절에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하는 것처럼 사실 그 혈통이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 뭣이 중요할까? 아브라함(로마서 4장9~11절) 역시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듯이, 다윗 역시 처음부터 왕이 아니었듯이 진정한 하나님이 아들로서 다윗의 위(位)와 같은 의의 왕, 평강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앞서서 본보기가 되어 공평과 정의를 행할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화목하게, 화평하게 만들 수 있는 평강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그리스도의 본과 자취를 좇아서 행할 줄 아는 자라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하신 참된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으리니 이는 사도행전 2장29~30절에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제는 죽어서 썩음을 당하여 이 세상에 흔적조차 없는 다윗이나 아브라함의 영광과는 달라서 비록 육신은 어떠한 위치(자리)에 있든지,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학벌이 높든지 낮든지, 권력이 있든지 없든지 이러한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다만 그 마음이 항상 말석(末席)에 처할 줄 알아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 헤아리고 이해하며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할 줄 알아서 배려하고 양보하는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왕" 이기 때문에 이를 좇아서 행할 때에 우리 또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생명(부활)에 참예하게 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  


p.s  "그리스도 교훈안에" 유튜브(youtuve)에서 "천지창조- 바람에 대하여" 를 방송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