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세기 4장15절에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 에서 "가인을 죽이는 자"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가인" 은 자신의 마음의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죄(창세기 4장7절)를 다스리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동생 아벨을 쳐죽이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가인" 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땅을 유리하는 자가 되었으며 이미 동생은 쳐죽였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혹여 동생 아벨을 쳐죽인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자신도 동생처럼 죽임을 당할까봐, 죽게 될까봐 걱정할 때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며 60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우리는 동생 아벨을 쳐죽인 가인을 미워하고 비방하고 있으며 비판하고 정죄하고 있으며 그러나 이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록하신 목적과 이유는 요한일서 3장12절에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 가인 같이 하지 못하게 하시고자 주신 말씀으로써 우리도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여 미우면 미워하고 마음에 안들면 함부로하고 못마땅하면 갑질하는 죄와 악을 행하고 있다면 6000년이 흘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르지 않으니 우리가 과연 가인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가인을 미워하거나 비방하거나 함부로하며 비판하고 정죄하는 손가락질 하고 눈총 눈치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고린도전서 10장11절)과 경계로 삼아야 하며 또한 미워하고 비방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가인을 죽이는 자" 가 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사람은 가인보다 오히려 더 악한 사람으로 간주하여 하나님께서 가인보다 더한 벌을 일곱 배나 받게 하신다는 것이니 그런즉 여기에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핵심은 로마서 12장17절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9절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자신이 할 일은 미워하고 비방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하여 선한 양심으로 바뀌고 변화되는 노력과 정성과 수고 곧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본보기를 앞서서 본으로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믿는다면 우리도 그리 행하여야 하며 다만 요한복음 5장29절에서 말씀하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 로 갚으시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시편 37편7~8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생활 속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사람을 보면 또는 나를 불편하게 곤란하게 힘들게 만드는 사람을 있으면 때로는 불평하고 분노하고 불만을 품고서 미워하게 되며 흉보고 욕하는 비방을 하게 되며 가다가 코나 깨져라 하는 잘못되기를 바라는 훼방하는 마음을 품기도 하며 이도저도 분이 안풀리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며 악을 행하기도 하니 이러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저 똑같이 행악에 치우쳐서 악을 행하는 사람에 불과하여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승화시키고 부드럽게 순화하여 받아들이며 선한 양심으로 변화되고 바뀌기 위하여 노력(훈련,연습)하는 고난을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이겨내야 하며 다만 훗날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를 참아 기다리며 잠잠하는 것이니 누가복음 6장37절에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실수도 많고 죄의 허물도 많고 많은 오류를 범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라서 "죄된 마음을 잘 다스려야지.", "절제해야지." 하다가도 순간 그러한 착하고 너그럽고 좋은 마음은 잊어버리고 미우면 미워하며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게 되고 마음에 안들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비방하게 되고 못마땅해지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을 행하게 되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비난하고 정죄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면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직 "서로 사랑하라." 하신 처음부터 전하신 하나님의 뜻(요한일서 3장11절), 최고한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을 지켜 행하며 서로 용납하고 관용하고 용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8장4~5절에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7절에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 11절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하시는 것처럼 모세의 율법을 아주 구체적이고 핵심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십계명" 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며 하지만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다 할지라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못해서 이웃에게 악을 행한다면 그 사람은 모든 율법을 범하는 사람이요 죄를 범하는 사람이기 되기 때문에 우리는 너나 할 것없이 재력이 많든 적든, 학력이 높든 낮든, 지위가 높든 낮든, 나이가 많든 적든, 여자이든 남자이든, 믿든 안믿든 이러한 것은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 앞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자가 율법을 모두 지켜 행한 자요, 진정 하나님을 믿는 자요 선을 행한 자로서 생명의 부활 곧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