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도행전 13장33절에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 에서 "약속(
約束)"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로마서 1장2절에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하는 것처럼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의 글 곧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에 관하여 미리 말씀하여 기록하신 약속의 편지 글로써 하나님은 미쁘시니 약속하신대로(사도행전 13장23절)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모든 약속(누가복음 24장44절)들을 응하고 이루고자 하심이며 그 약속의 핵심 내용은 누가복음 24장46~47절에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처음에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있는 육신의 모양(로마서 8장3절)으로,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를 입고 우리 사람과 똑같은 모양으로 태어나셨으며 그러나 우리 사람과 똑같이 되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함부로하는 죄대로 악한대로 살아가신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육체의 욕심과 그 소욕(갈라디아서 5장17~24절)을 버리고 비우기 위한 노력 곧 고난을 달게 여기면서 겪으셨고 마침내 죄와 악을 그 몸과 마음에서 죽으심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활에 참예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우리들도 죄에서 악에게서 벗어나 마침내 죄 사함을 얻으므로 부활 곧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하고자 하여 앞서서 몸소 그 방법(지혜)들을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의 핵심 내용이며 이 약속들을 온전히, 완전히 이루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겠다(사도행전 1장11절)고 약속하신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약속" 이라 함은 지키기 위해, 그대로 행하기 위해 하는 맹세로써 미리 정한 어떤 일이나 미리 일러주신 말들을 상대방과 어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며 특별히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미리 일어주시고 그대로 지키시겠다고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하신 약속 곧 예언의 말씀이요 언약의 말씀으로써 중요한 것은 그 수많은 약속의 말씀들 중에 누구나 표면적으로 읽으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보다는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인가?"... "아닌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이면에 숨기고 감추어진 말씀(마태복음 13장35절)의 내용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으니 구약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 없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부분적(초보)으로만 알리고 전할 수 밖에 없으며 이를 듣고 배우는 믿는자들 또한 초보 아래에, 몽학 선생(갈라디아서 3장24절)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하지만 언제까지 그 아래에 머물러 있을 수마는 없는 것은 언젠가는 그 약속이 지켜지고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며 그런즉 어떤 누군가가 그 이면에 있던 속 뜻, 참 뜻 즉 온전한 참 형상들을 알리며 전하고 있으며 이를 듣게 되었다(로마서 10장14~15절)면 그 때, 그 날 즉 그 약속들을 이루시고 끝내시는(로마서 9장28절),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가 이르렀음을 천지 기상을 분변하듯(누가복음 12장56절) 시대를 분변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한다.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22절에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성경" 이라 하심은 그 앞 구절들을 보시면 "모세의 율법" 을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써 "율법" 은 사람으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제도 즉 규율, 규례로 사람을 묶어두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꾸어 말하자면 아직고 서로가 서로를 밉다고 미워하고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고 못마땅하다고 함부로하고 언짢다고 갑질하는 죄와 악을 행하고 있다면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며 또한 율법과 약속(언약,예언)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죄악(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로 그 죄와 악에서 떠나고 벗아날 수 있는 방법(지혜)을 알리고 전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고자 함이니 죄와 악에서 벗어나는 방법(지혜)를 알리고 전한다면 더는 제사(예배)를 올리고 제물(헌금)을 드릴 이유는 사라지리니 제사, 제물이 모두 율법의 제도이기 때문이며 그러나 첫 번에 유대 땅에 오셨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모든 것,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면 두 번째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 또한 여전히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며 악을 행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 죄에 대하여 용서를 빌고 돌아서서 또 죄를 범하고 또 그 죄에 대하여 용서를 비는 무한 반복하는 제사(예배,헌금)를 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1장4~5절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는 것처럼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은 고난을 받으시므로 다시 살아나는 부활에 참예하신 그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요한일서 3장11절) 전하여 주시고 지켜 행하라고 하신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계명과 완전한 율법으로써 이를 지켜 행하기 위하여 육체의 정욕과 소욕을 버리고 비우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고 마침내 죄와 악의 소욕을 죽이심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부활에 참예하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죄 범함으로 말미암아, 악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죄 사함을 받아 우리도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뀌고 변화되게 하여 부활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니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하신 은혜와 영광의 약속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본보기를 보이신 것처럼 고난과 시련(야고보서 1장12절)을 참고 견디며 이겨낸 자들에게 생명(부활)의 면류관을 얻게 하고자 구원에 이르게 하고자 하여 6000년 전 처음(창세기)부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사람에게 하신 "약속" 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