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세기 5장23~24절에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서 "에녹(Enoch)"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에녹" 이라 함은 창세기 4장17절에도 가인의 아들 "에녹" 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지만 오늘 이 시간 살펴보고자 하는 "에녹" 은 창세기 5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셋 자손의 계보의 "에녹" 에 관한 것이며 이름은 같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가인은 죄(창세기 4장7절)를 다스리지 못하여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생 아벨을 쳐죽임으로 인하여 그 장자권을 셋 자손의 계보에 빼앗기게 되었고 가인으로 말미암아 가인의 아들 "에녹" 또한 하나님의 장자권에 들지 못하는 자손이 되었으므로 가인이 쳐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다른 씨인 셋 자손 중에 "에녹" 은 하나님의 장자권을 잇는 인물이 된 것으로써 그런즉 오늘 이 시간에 "에녹" 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찌되었건 첫 사람 아담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악(惡)을 행함(호세아 6장7절)에 악과 패역을 행함에 눈이 밝아져서, 눈을 떠서 선(善)을 택하여 행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을 행하기에 더 빨랐기 때문에 이로써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로마서 5장에서도 기록하고 있듯이 모두가 죽고 썩는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지만 "에녹" 은 히브리서 11장5절에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이 있는 하나님 나라 천국으로 옮기웠기 때문이며 이는 그로부터 4000년이 지난 후 유대땅에 드러나고 나타나셔서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생명을 덧입음(고린도후서 5장1~2절)으로 다시 살아나시고 하나님 나라 천국으로 옮기심으로 하나님의 우편 계시는 그리스도와 같은 흔적과 닮아 있기 때문에 과연 죽고 썩게 하는 사망의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무한한 생명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차원에서 우리도 에녹과 같이, 그리스도와 같은 흔적을 가져서 우리의 믿음의 소망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하나님 나라로 옮기움을 받기 위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가인은 앞서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창세기 4장7절에 "문(입,말,혀) 앞에 엎드려 있는 죄" 를 다스리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원망하고 분노하며 마음대로 안되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언짢으면 갑질하는 죄와 악이 결국엔 동생을 쳐죽이는 살인을 행게 되었으니 이는 그 마음과 말씨가 악독이 가득하여 다른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죽게하고 썩게하는 씨이기 때문이며 하지만 히브리서 12장1~2절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세상에 가장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것이 삶의 고단함과 수고로움과 책임감보다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하루에 12번도 더 행하게 되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이기 때문에 이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죄와 악을 이겨내려는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과 육신의 정욕과 그 소욕을 버리고 비우려고 애쓰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법(로마서 13장8~10절)이요 최고한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인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요 죄와 악에서 벗어나 의(義)대로, 선(善)대로 행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법과 의의 키워드는 오직 처음부터 전하신 소식인 "서로 사랑하라(요한일서 3장11~15절)." 하신 말씀에 있기 때문이며 마태복음 1장23절에 기록하고 있는 "임마누엘" 의 참 뜻, 참 형상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뻐하는 자로서의 이사야 62장4절에 기록하고 있는 "헵시바" 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유다서 1장11절에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하시면서 14~15절에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비록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과연 죄와 악을 다스리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여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가인의 길에 행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어찌하든지 죄와 악을 다스리고 제어하고 절제하여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 으로 행하는 그리스도와 에녹의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좇아서 행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인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리니 우리 사람은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배를 위하여, 삯을 위하여, 궁극적으로 돈을 위하여 줄 세워주고 눈 감아주고 뒤 봐주는 육정을 좇으며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꺼트려버리고 엎어뜨리는 악을 행하며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가인의 길에 행하고 있는 불편한 이 진실을 마주하고 있으며 이는 발람과 같이 어그러진 길을 가는 것이요 고라와 같이 멸망에 이르는 길로써 "에녹" 은 이러한 길을 벗어나 하나님의 법과 의대로 행하는 경건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망과 멸망의 길에 서게 될 것을 예언할 수 있었으며 경고의 나팔을 불 수 있었으며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도 나팔(피리)를 불었지만 그 소리(마태복음 11장17절)에 이렇다 저렇다 즉 고쳐 행하든지, 다시는 죄와 악을 행하지 않으려 노력하든지 반응하지 않는 것에 관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때, 마지막 때 우리들에게 경고하시고 교훈하시는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