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세기 9장3~4절에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에서 "식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산 동물을, 만물을 우리 사람에게 채소 같이 쓸 수 있는, 사용할 수 있는 식물로 주셨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며 다만 조건은 "피채 먹지 말라." 는 것이며 여기에서 "식물" 이라 하심은 주기도문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일용할 양식(마태복음 6장11절)" 의 개념이며 중요한 것은 잠언서 20장17절에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속이고 취한 식물" 이라 하심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식물을 대하는, 일용할 양식을 대하는, 모든 만물을 대하는 우리 사람의 마음 자세 즉 꼭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저장고에 가득 채워서 배 부르게 하는 것만이 채소 같이 쓰는 식물이 아니라, 그러한 육적인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받느냐 아니면 족한 줄 모르고 불평과 불만으로 받느냐 하는 영적인 차원의 식물이요 양식을 말씀하시는 것으로써 우리 사람은 자신의 이득과 욕심을 위해서라면 마구잡이로 남획하고 무자비하게 몰수하는 포획을 일삼기도 하기 때문에 남획하고 포획할 때의 마음의 자세로 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무조건 내 손아귀에, 내 품안에 들어오면 내 것처럼 생각하라고 주신 식물도, 양식도 아니니 이것이 "피채 먹지 말라." 는 의미이며 마태복음 15장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면서 18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아무리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 모습이 똑같은 식물이요 양식이요 만물이라 할지라도 이미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자신의 이득과 욕심으로 말미암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고 매사에, 만사에, 범사에 불평하고 불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가 되어 있다면 같은 식물이라, 같은 양식이라 말할 수 없으며 그런즉 식물, 양식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 자체만을 말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 즉 그 식물을, 그 양식을, 그 만물을 대하는 사람 영혼의 어떠함을, 임하는 자세가 어떠함에 따라서 그것이 썩는 식물, 썩는 양식이 되기도 하고 영생하도록 생명이 되는 식물, 양식, 만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8장8~9절에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시는 것처럼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의 제물에 관하여 기록하신 말씀으로써 "우상의 제물" 이라 함은 제사 음식, 사찰 음식 또는 종교마다 먹지 말라고 하는 것들, 이슬람은 돼지 고기, 힌두교는 쇠고기, 십계명에는 술 취하지 말라... 등등등을 말하며 중요한 것은 우상이 제물이 되었건 각 종교마다 바치고 드리는 제사 음식이 되었건 이 모든 것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지으신 만물 중의 하나이며 그러한 것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靈)이시니 우리 사람의 정직한(전도서 7장29절) 심령(스가랴서 12장1절)을 가장 먼저 지으시고 그 다음 그 심령이 살아갈 집이요 거처인 육신(몸)을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식물이, 음식이, 양식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주는 것은 오직 우리 사람의 마음이 착하고 곱고 좋은 의로운 마음인지 아니면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못됐고 나쁘고 악한 마음인지 하는 마음의 자세이니 의롭고 사납다, 선하고 악하다의 기준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얼마나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는지,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지에 있으며 만약에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꽂거나 상처를 주거나 아프게 하여 거치는 것이라면 그 식물이, 음식이, 양식이 하나님 앞에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으로 이끌어주지 못하는 썩는 식물이요 음식이요 양식이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0장3~6절에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하고 쓰고 있듯이 고린도전서 10장은 모세의 때에 모세가 430년간 종노릇 하던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켜서 홍해를 건너게 한 출애굽의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을 기록하신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만나를 먹이셨으니 만나는 하루하루 먹는, 먹이는 식물이요 음식이요 양식이었으며 하지만 이를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평과 불만으로 받으면서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서로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며 서로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으로 행하였기 때문에 일주일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40년이 걸려 안식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였으며 그 사이에 노환으로, 질병으로, 사고로, 여러 재해로 죽은 사람이 대부분이며 다 멸망받고 모세도 가나안을 코 앞에 두고서 목전에서 죽었고 여호수아와 겨우 몇 명만이 가나안에 들어갔으니 이를 기록하신 것은 그저 역사적 사실, 사건을 알리고자 함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이제 표면적인, 초보적인,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며 참 형상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자신의 이득과 욕심을 위하여, 채워지지도 만족하지도 못하는, 한도 끝도 없는 욕심을 위하여 터진 웅덩이처럼 채우기만 하려는 모으기만 하는 식물 곧 물욕, 과욕, 사람의 끊임없는 욕망 욕심을 위하여 끊임없이 줄 세우고 뒤 봐주고 눈 감아주는 사람의 뜻으로 행하면서 마음에 안들거나 못마땅해지면 무자비하게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꺼트려버리는 악으로 행하는 썩는 식물,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어디에 있던지, 어떤 곳에 머물던지 그 마음의 자리 만큼은 항상 말석(末席)에 두고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으로 바뀌고 변화되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려는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겪으며 인내하고 이겨낼 때에 진정 그 식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