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세기 9장20~21절에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에서 "벌거벗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노아는 창세기 6장(9절)에서도 기록하고 있듯이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으며 하지만 9장 시점에서 "벌거벗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모습이니 중요한 것은 왜 벌거벗은가?, 어찌 벌거벗게 되었는가? 하는 것으로써 이는 역사적 사실, 사건의 차원에서 그저 지식적으로 말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접근은 이제 도의 초보에 지나지 않으며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고자 함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노아가 벌거벗게 된, 처음의 그 순전하고 신실한 모습이 변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아서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시는 약속이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고린도전서 10장11절)와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 삼아 우리에게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게 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벌거벗었다." 는 것은 더럽고 추한 민낯을 다 드러내어 보여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노아가 벌거벗게 된 이유는 그가 농사를 지었던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였기 때문이며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막 곧 거룩한 장소 "성소" 에서 벌거벗었기 때문이며 장막은 오늘날의 교회, 성당, 성전, 예배당을 의미하며 또한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음으로 창세기 9장22절에서 "하체를 보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하체를 보였다 콕 찝어서 말씀하신 것은 에스겔서 16장22절에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하시면서 26절에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하시는 것처럼 벌거벗게 되는 것은 소싯적 즉 오류가 많고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은 영적으로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며 중요한 것은 누구나 사람은 다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고 오류가 많은 소싯적은 있기 마련이지만 일깨우고 돌이켜서 그 어린 아이 일을 버리고 온전하고 장성하고 완전한 데로 나아와 고쳐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뜻이므로 두 번 다시 그런 어린 아이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하체로 그의 딸들과 동침을 하였으니 행음하고 음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던 그 마음 속에 두 마음을,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즉 노아를 취하게 만들고 하체를 보여 행음하게 만들었던 포도주 역시 이사야 5장1~7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공평과 의로움으로 행하는 것이 좋은 포도, 극상품 포도로 농사를 짓는 것이요 하지만 들포도를 맺혔다는 것은 포학으로 행하고 그저 하나님께 주세요 주세요 외치며 부르짓기만 하면서 그 죄와 악은 고쳐 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니 공평과 의로움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어떤 유익이나 이익이나 욕심은 배제하고 다른 사람,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와 상황을 헤아리고 이해하여 배려하고 양보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과 최고한 계명의 핵심 키워드이며 그런즉 노아는 처음에는 신실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과 계명대로 준행하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서 변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니 계시록 2장4~5절에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누구나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는 믿음과 사명으로 말미암아 신실하고 순전하였다가도 이를 "처음 사랑" 이라 표현하며 하지만 권위가 쌓이고 재력이 쌓이고 권력이 생기고 상좌에 앉아있는 날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점점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지켜 행하려는 사명감과 충성심 보다는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서 마음까지도 상석에 앉아서 다른 사람을 좌지우지 하려 하며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훼방하며 못마땅해지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며 언짢아지면 갑질하는 포학으로, 죄와 악으로 행하게 되니 이것이 하나님 앞에 벗거벗은 것이요 벌거벗은 하체로 행음하는 것이요 이는 애굽과 같은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세상 사람들, 이방인들이 하는 행실을 노아가 들포도주에 취하여 하게 된 것이며 이는 노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13장13~14절에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하고 쓰고 있듯이 술에 취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술에 취하면 이성적인 판단이나 추진을 하기 어렵고 더욱이 술에 취하여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며 꺾어버리고 잘라버리고 꺼트려버리고 밟아버리고 넘어뜨리는 술에 취한 행동 즉 포학과 죄와 악의 방탕에 자신을 방임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어 음란하고 호색하는 것이며 이제는 이러한 소싯적 어릴 때의 그 벌거벗은 적신의 모습으로 포학과 죄와 악으로 행음하지 말고 어린 아이 일을 버리고 온전하고 장성한 데로 나아와서 오직 하나님의 법과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사랑은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먼저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하나님의 최고한 계명과 완전한 율법으로 지켜 행하기 위하여 포학과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는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으심으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본보기를 먼저 보이셨으니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들로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따라 오게,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길이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유와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노아의 벌거벗음을 기록하신 것이며 비판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