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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세기 14장20절)

교훈 안에 2021. 5. 21. 18:05

오늘은 창세기 14장20절에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에서 "십분 일" 곧 "십일조" 에 대하여 히브리서 7장과 연결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 즉 "십일조" 를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 역사적 사실, 사건을 알리고자 하여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일점 일획(마태복음 5장18절)도 반드시 다 이루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언약)의 말씀" 으로써의 그 속에 전하고자 하시는 참 형상, 실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며 아브라함이 멜시세덱에게 십일조를 주게 되기까지의 시대적인 배경은 아브라함은 애굽(창세기 12장8~20절)에서 바로 왕에게 죽을뻔 한 일이 있은 후에 벧엘에서 헤브론(창세기 13장18절)으로 옮겨 그 곳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장막을 쳤으며 그 당시에 북쪽에 있는 그돌라오멜을 비롯한 다섯 나라와 남쪽에 있는 소돔, 고모라를 비롯한 네 나라의 전쟁이 있었고 남쪽에 있는 네 나라가 전쟁에서 짐으로 말미암아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그 때의 아브람의 조카인 롯의 재물도 빼앗아 가니...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브람은 롯을 구하러 갔고 롯과 함께 빼앗겼던 모든 재물들을 되찾아서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제사장이신 멜기세덱을 만나므로 복 빎을 받았고 아브람은 그러한 멜기세덱에게 그 되찾은 것의 십분 일을 주게 된 것이 바로 "십일조" 에 관한 기록이며 이것이 모티브가 되어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고 있는 것이 "십일조" 이니 오늘날 이 "십입조" 를 내고 못내고가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척도가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이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 믿으며 내고 있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어떤 부모가 그 자식, 자녀에게 돈을 요구할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만드신 부로로서 아버지 하나님으로서 과연 우리 사람에게 돈을 바라시고 돈을 요구하실까? 또한 멜기세덱은 약속을 따라 난 대제사장으로서 율법을 따라 난 제사장 즉 하나님께 죄와 악을 속죄하심을 받기 위해 제사(예배)와 예물(헌금)을 드리는 제사장은 오늘날에는 목사, 전도사, 신부님이 이에 해당되며 이들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난 제사장이 아니라 율법의 명령을 좇아난 제사장이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온전한 실상, 참 형상의 십분 일 즉 십일조가 무엇인지 살펴 보고자 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멜게세덱에게 십분 일 즉 "십일조" 를 드리는 것에 대한 참 형상, 실상을 히브리서 7장에서 기록하고 있으니 1~2절에 "이 멜기세덱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내용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인용해와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며 4~6절에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 하시는 것처럼 이 내용은 레위기 6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으로써 그것이 노략물이 되었건 다른 무엇이 되었건 사람의 입장에서 "좋은 것" 이라 함은 돈이나  좋은 자가집 또는 학벌, 철밥통 같은 좋은 직장, 삐까번쩍하는 좋은 차... 등등등 이러한 것이겠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 사람에게서 받고자 하시는 좋은 것은 오직 착하고 곱고 좋은 마음, 너그럽고 겸손한 마음 즉 그 마음과 생각이 얼마나 선하고 의로운 것인가 하는 것이며 선하고 의로운 것은 오직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는 사랑으로만 행할 때에 나올 수 있는 마음이며 중요한 것은 율법에서는 아론의 자손이 레위 지파 곧 레위 아들들로서 그 가운데서 기름 부음을 받아 제사장 직분을 받는 자들이 되며 이들이 하나님께 번제로, 소제로 제사를 올릴 때에 고운가루로 에바 십분의 일을 항상 드렸으며 또한 이 십분의 일은 이스라엘 백성 즉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십분의 일을 바쳐야 하는 것이 율법의 명령이며 하지만 아론의 반차, 제사장 직분을 맡은 레위의 지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멜기세덱은 오히려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더욱이 9~11절에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하고 쓰고 있듯이 백성들(성도들)에게서 십분의 일 즉 십일조를 받던 제사장 레위 지파도 엄연히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것은 율법의 명령을 좇아 제사장 직분을 행하던 레위 지파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약속의 말씀" 으로써 율법은 이러한 약속이 오기까지, 이루기까지 그 율법 아래에 사람들(백성들, 성도들)을 맡겨 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5장1~3절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대제사장" 은 율법을 따라 난 제사장을 의미하며 오늘날 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인 성도들을 맡아서 관리하며 죄를 속하는 직분을 맡은 목사님, 전도사님, 죄에 대한 고해성사를 듣고 받는 신부님들을 의미하여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연약하여서 자꾸만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기 때문에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신 것이요 죄와 악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이 교회에서 성당에서 하고 있는 예배와 미사이기 때문이며 예배와 미사를 주관하는 이가 바로 제사장 곧 목사님, 신부님이기 때문이니.....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고 알리는 일까지 하므로 "선생" 이라고도 하며 이들이 성도들의 십분의 일 즉 십일조를 받는 자들로서 그러나 이들 또한 허물 많고 실수 많고 오류가 많으며 미울 땐 미워하고 마음에 안들 땐 마녀사냥하듯 비방하고 못마땅할 땐 함부로하고 언짢을 땐 갑질도 하는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는 우리 사람과 똑같은 연약에 싸여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죄를 위하여서만 제사를 드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서도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며 하지만 율법을 따라 난 제사장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난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하리니 옛말에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말도 있지만 이들을 위하여는 누가 제사를 드려줄 것이며 십일조를 받아줄 것인인가? 하는 것이니 다시 말해서 히브리서 7장15~16절에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돈(헌금)도 집도, 학력도, 권위도 아무것도 대신 할 수 없으며 그동안 행하여 왔던 죄와 악을 없이 할 수 없으며 오직 스스로가 무궁한 생명의 능력 곧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그 키워드인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계명과 완전한 율법을 좇아서 지켜 행할 줄 알아야 하나님께 다만 십분 일이라도 좋은 마음, 의로운 마음을 바친다 할 수 있으리니 그러한 예법과 의식(儀式)을 좇는 제사 즉 예배와 헌금으로는 우리의 죄를 없앨 수 없으며 오로지 모든 사람 스스로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지켜 행하기 위하여 욕심으로, 높은 마음으로 행하던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고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을 버리려는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겪은 후에야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순종할 수 있으며 그 순종함이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서 바라는 십분의 일, 십일조이며 십분의 일만이라도 그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에게 바치기을 원하시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