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세기 16장1절에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에서 아브람의 아내 "사라" 와 여종 "하갈"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비롯한 창세기 16장 전장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본부 사라가 자식을 잉태치 못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 이라고 하는 아들을 얻게 된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이미 6000전에 지나간 이 역사적 사실, 사건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써 그저 역사적 사건, 사실만을 전하며 가르치고 배우기만 한다면 성경 66권은 역사책이지 약속(언약,예언)의 말씀이라 할 수 없으며 또한 이러한 표면적인 것 즉 초보적이고 부분적인 가르침으로는 우리로 선한 양심(베드로전서 3장21절)으로 변화될 수 없음으로 하여 온전케 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 도의 초보에서 벗어나 하며 도의 초보에서 벗어나 온전하고 완전한 참 형상으로 나아가야 우리에게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이 나타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지난 시간에 "아브라함의 자손" 에 관하여 살펴 볼 때에 아브라함에게는 여종 하갈에게서 낳은 장자 "이스마엘" 이 있었고 본부 사라에게서 얻은 "이삭" 이 있었음을 말씀드렸으며 하지만 갈라디아서 4장22~24절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 하고 쓰고 있듯이 두 아들 이스마엘, 이삭 그 자체만을 말하고자 하여 창세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비유" 라 하시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여 그 속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참 뜻, 참 형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참 형상에 관하여 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으니 참고하시길 바라며... 오늘은 사라와 하갈 이 두 여자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하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 이라 하시는 것은 이 두 여자에 관한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 두 언약에 관하여 뒷 구절 25~26절에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하시는 것처럼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에서 "예루살렘" 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 즉 하나님께서 계시는 (모세의)장막, (솔로몬의)성전, 교회가 있고 또한 위 곧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계시록 21장10~22절)이 있는데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 그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을 "예루살렘"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며 그 하늘의 예루살렘이 땅에 내려 온 것이 모세의 때에는 "장막" 이라, 솔로몬의 때에는 "성전" 이라, 오늘날에는 교회라 성당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며 굳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 "위에 있는 예루살렘" 이라 구분해서 표현하여 기록하신 이유는 요한복음 3장31절에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땅에 속한 것 곧 제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성당을 다니며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외치며 부르짖어도 그 말과 행함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 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 곧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야고보서 3장14~16절)을 행한다면 이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 이요 이는 무늬만 예루살렘이지 그림자, 겉껍데기에 불과하며 "위에 있는 예루살렘" 어디에 있든지, 어떤 자리(위치)에 있든지 죄와 악으로 행하던 것에서 벗어나려고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며 인내하고 이겨내서 하나님의 최고한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완전한 율법(로마서 13장8~10절)으로 행할 줄 아는 그 사람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 이니 그리스도께서 비록 땅에 계셨지만 죄대로 악대로 행하지 않으려고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심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으로 행하시고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신 것은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이시고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 를 따라오게, 지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분명 오직 예수를 외치면서 교회도 다니고 성당에도 나가고 충성과 열심으로 봉사와 기도와 헌금을 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그 행실은 자신에게 있는 재력이나 학력이나 권위를 내세우고 체면과 자존심을 중요시하면서 줄 세워주고 뒤 봐주고 눈 감아주면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마녀 사냥하듯이 비방하고 못마땅해지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언짢아지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독한 시기와 다툼으로 행한다면 그 사람은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8장7~10절에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히브리서 8장의 말씀 즉 하나님의 이 두 언약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시내 광야의 시내산에 주신 율법이며 사실 이 마저도 지키지 못한 것을 시편 78편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기록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법은 입으로만 말로만 혀로만 줄줄 외고 있었지 실상은 사람의 체면과 자존심의 법에 종노릇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하여 둘째 것이라고 하는 새 언약을 세우셨으니 새 언약은 말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처럼 행동, 행실, 행위 또한 그렇게 행하여야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법을 저희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였다면 새겼다면 행동으로 나오게 되기 때문이며 그 하나님의 법은 최고한 계명이요 완전한 율법인 "서로 사랑하라." 이며 이것이 첫 언약에도 새 언약에도 우리 사람을 향하여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땅에 속한 체면과 자존심에 종노릇하느냐, 위에 있는 "서로 사랑하라." 에 순종하느냐 하는 것이 두 언약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