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한복음 11장1절에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에서 "나사로"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요한복음 11장 전장에는 죽은 "나사로" 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4복음서 안에는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써 가난한 거지 "나사로" 에 관한 말씀의 내용과 더불어 부활(다시 살아남)한 "나사로" 에 관한 말씀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은 부활한 "나사로" 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이 "부활" 이 "나사로" 와는 상대적으로 세상 사람들도 다 알고 있고 유명해져 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神)적인 영역으로 여기고 있지만 이는 분명 그리스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고 공정한 기회의 영역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알리고자 하심이며 또한 우리 평범한 사람들도 "나사로" 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고린도전서 15장31~32절)에 관하여 미리 말씀하여 주신 약속의 말씀의 차원에서 "나사로" 에 관하여 성경 말씀안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유와 배경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전서 15장16절에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부활의 촛점이 모두 "그리스도" 에게 집중적으로 맞추어져 있지만 하나님께서 6000년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고 이루시고자 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 에 관한 약속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는 본능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며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욕심으로 행동는 죄와 악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곧 썩고 죽는 "사망의 길(로마서 6장23절)" 을 걸어가고 있는데 그저 죽음(사망)이란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旣定事實)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생명의 길" 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과 기회가 우리 사람에게 남아 있음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앞서 본보기를 보이심으로 드러낸 것이며 그 가능성과 희망을 "나사로" 를 통하여 나타냈다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살펴보아야만이 그 기록하신 이유와 배경과 목적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니..... 그래서 요한복음 11장3~4절에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는 것처럼 정말로 호흡이 끊어지고 딱딱하게 굳어져서 부패하는 냄새가 진행되고 있는 "나사로(요한복음 11장39~40절)" 를 표현하여 기록하신 것은 그저 표면적으로 보여진 것 즉 초보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며 참 형상은 "나사로" 뿐만 아니라 나사로를 비롯하여 이미 모든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으로 말미암아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으로 행하기 보다는 미움은 분노를, 분노는 비방을, 비방은 보복을, 보복은 복수를, 복수는 테러를, 테러는 전쟁을, 전쟁은 모두가 다 멸망하는 즉 썩고 죽는 사망으로 가는 냄새(고린도후서 2장16절)를 풍기며 미쳐 돌아가는 병에 걸려 있으니 비록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께는 죽은 자(계시록 3장1절)와 다름 없는 것으로써 그러한 죽은 자를, 죽어가는 우리들을 살리고자, 살려주고자 하여서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이며 그 말씀을 하나님 나라 "천국 법" 이라 하여 "율법" 이라도 하시는 것이며 그 율법을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며 그 광범위한 율법 속에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 행하여야 할, 순종해야 할 계명(갈라디아서 5장14~15절)을 주신 것이며 그 계명이 우리 사람으로 썩지 않고 죽지 않는 항상 있는 "생명" 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심으로 그 영광에 들어가신 첫 열매로써 우리가 정말로 죽어야 할 것은, 죽여야 할 것은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단 번에 죽는 것(로마서 6장10절)이며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죽는 것 곧 벗어나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노력 없이는 절대로 될 수 없으니 이를 "십자가의 고난" 이라 하시는 것이며 고난이 없이는 죄에 대하여 죽을 수도 없으며 죄를 죽이지 못하면 계명에 순종할 수도 없으며 순종함이 없이는 구원(히브리서 5장7~9절) 곧 다시 사는 생명 곧 "부활" 도 없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1장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은 "부활" 곧 썩지 않고 죽지 않는 항상 있는 "생명" 으로써 이 생명은 하나님을 믿고 안믿고를 떠나서, 교회를 다니고 안다니고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기회와 희망과 가능성은 있지만 또 누구에게나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 은 오직 노력 밖에 없으니 우리 사람으로 썩게 만들고 죽게 만들었던 것이 오직 우리 사람이 죄대로 행하려는 본능과 악대로 행하려는 욕심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며 그런즉 죄와 악의 얽매인 쇠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그 고리에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을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기울여야 함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앞서 본을 보이신 "십자가의 고난" 으로써 그 노력이 우리로 하나님의 계명에 지켜 행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어서 순종할 수 있게 하고 그 순종함이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언제나 항상 있는 "생명" 으로 인도하리니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지금도 절제하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여서 나의 유익(입장과 처지)과 이익(기준,관점)을 내세우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되어서 상대방에게 거칠 것과 부딪힐 것을 두어서 어렵게 힘들게 곤란하게 만들며 이는 이웃에게 악을 행하며 민폐를 끼치며 해를 입히는 것으로써 미우면 미워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그 사람은 계속하여 썩고 죽는 사망의 냄새를 풍기는 자로 남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