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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스겔 20장6절)

교훈 안에 2022. 8. 6. 10:33

오늘은 에스겔 20장6절에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 하심은 출애굽기 3장8절에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430년간 종노릇을 하던 이방 족속 애굽 아래에서 탈출시키셨으며 또한 노예와 같은 삶에서 해방하여 자유케 하시며 건져내어 인도하고자 했던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이었으니 그 곳이 현재의 "팔레스타인 땅" 이며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에 도착하기까지 반드시 지나쳐야 할, 거쳐야 할 곳이 있었으니 바로 "시내 광야" 로써 안타깝게도 모세의 때에 애굽 아래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 광야로 들어갔던 이스라엘 백성(자녀,성도)들은 일주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을 코 앞에 두고서 40년을 광야에서 헤매다가 모세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다 죽었으며 겨우 여호수아와 몇 명 즉 그루터기(사6:13) 씨와 같은 사람 몇 명만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러한 역사적 사실(고전10:11),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교훈(롬15:4)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심이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 관하여 기록하여 주신 목적과 이유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신명기서 8: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하시면서 14절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자녀,성도)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으로 들이시기 전에 애굽에서의 노예와 같은 유전인자와 종의 근성을 버리게 하시려고 하나님 나라 천국의 법이요 계명인 "십 계명" 을 시내 광야에서 두 돌판에 새겨서 주셨으며 이를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낮추어서 다른 사람을 먼저 헤아리고 생각하는 이타심(利他心)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함을 소유해야 하며 이는 바꾸어서 말하자면 사람의 노예와 종의 근성은 다름아닌 높아지고자 하여 상석(上席)에 앉아서 다른 사람을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며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못마땅하여져서 미워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는 "죄와 악" 을 알리고자 하여 애굽 아래에서 자그마치 430년을 종노릇하게 하셨으니 이제와서 알고보니 사람이 죄와 악에 얽매이고 져서 종처럼 살았던 것이 어디 430년 뿐이랴. 결국엔 그러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광야에서 모두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이를 말세(롬9:28)를 만난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와 교훈으로 주신 것은 그러한 전차를 또 다시 밟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 시험을 통과해야만이 비로소 생명(신11:8~12)과 안식과 구원을 주고자 하시는 것이니 그 곳이 바로 참 형상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요 그 날이 온전한 참 형상의 "안식일(겔20:9~12)" 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9~11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시는 것처럼 사람이 몸의 기력이 쇠하고 병들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쉼(안식)을 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다 죽어가는 몸이 아닌 건강한 생명인 "부활" 이 있어야 하며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구원" 이라 하니 만약에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이루시고 응하였다면 두 번째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을 것이요 그 때를 위하여 기록하게 하신 신약 성경 역시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일점 일획(마5:18)도 빠짐없이 다 이루실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에 온전하고 완전한 참 형상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은 여전히 남아 있고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 힘쓰고 애써서 버리고 비우고 죽어야 할 것은 오직 죄와 악에 얽매이고 져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물고 뜯고 싸우고 함부로하는 종의 근성, 악의 유전함(벧전1:18)에서 벗어나야 하며 이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요6:27)을 위하여 우리가 충성과 열심으로 해야 할 일이요 사명이며 이를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여 주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 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성경구절 중에 이사야 7장14~15절에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버터(엉긴 젖)와 꿀을 먹을 것이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행하러 오셔서 온전히 지켜 행하시고(히브리서 10장7절) 다 이루셨으니(요한복음 19장30절) 목이 곧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던 그들과 같지 않고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셨고 고린도전서 15장20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부활의 시작이 되셨으니 우리 또한 그의 자취와 본(本)을 좇아 지켜 행할 때 삶을 얻고 안식할 수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