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복음 12장58절에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 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에서 "화해(和解)"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화해" 라 하심은 서로 오해가 있거나 나쁜 감정으로 인해 갈등하고 대립하며 싸웠던 마음을 풀어서 이해하고 존중하여 좋은 감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물론 세상에는 법관이나 재판장(판사)이 있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거나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해결해주는 법적 판단을 하지만 그러한 법관, 재판장에 빗대어 비유하여 재판장이신 "주 하나님(딤후4:8)" 을 알리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으로써 "화해" 의 참된 목적은 로마서 12장17~19절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세상에서도 억울한 일이 있거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이용하여 고소, 고발을 하기도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가 원만하게 맺힌 응어리를 풀고서 서로가 웃을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멋진 "화해" 이며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원수 갚는 것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준법자이고 그 법의 계명의 본질은 오직 "서로 사랑하라.(갈5:14~15)" 이므로 선(善)으로 행하며 더불어 화목하고 화평하며 평화롭게 될 수 있는 길(방법)을 도모하는 것이 우리 사람들의 할 일이라는 것이니 마태복음 18장6~7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저마다 연약하고 취약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고 같은 상황(문제)도 누구에게는 식은 죽먹기로 쉬운 일이 되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는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고민하여 마음을 먹어야만 되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 마음을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랑" 으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선(善)" 이요 옳은 행실 곧 "의(義)" 이므로 상대방을 넘어지게하고 쓰러지게 하며 떨어지게 하는 것은 이유가 무엇이든, 목적이 어떤 것이든 모든 일(문제,사건,상황)의 주체는 "사람" 이기 때문에 "사람" 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며 슬프게 하고 외롭게 하면서까지 배제한 좋은 일, 훌륭한 일, 아름다운 일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14장1절에서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하시면서 3절에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과 계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든 종교에서 추구하는 이념과 사상의 본질은 "착하게 살아라", "의롭게 살아라." 하는 것으로써 자신이 믿는 신(神)을 위한답시고 사명감으로 충성과 열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으신 사람이나 만물을 함부로(업신여김,무시,갑질)하거나 고통을 준다면 더불어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요 삶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한 믿음이고 무엇을 위한 충성과 열심인가? 하는 것이니 무엇을 먹고 안먹고, 어떤 것을 하고 안하고, 무슨 날을 지키고 안지키고는 그저 모양(체면)을 갖춘 형식이나 의식(儀式) 또는 순서와 절차에 불과하여서 그러한 것으로 우리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절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오직 그 모든 것의 주인이요 주체는 내 옆에, 내 주변에 있는 그 지으신 "사람" 이므로 옆에, 주변에 있는 상대방을 억울하게 만들거나 억장이 무너지게 만들거나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눈물나게 하거나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하면서까지 혼자 들어가는 "천국" 이, "극락 왕생" 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그러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하나님 나라 천국은 없으며 13절에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하시면서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돌아보아서 행여 그것으로 마음이 부딪혀서 넘어지지 않을까? 살펴야 하며 혹여 거칠 것으로 인하여 그 마음이 떨어지지 않을까? 들여다 볼 줄 아는 마음이 참 형상의 "화해" 이며 이를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십자가의 고난, 죽으심" 곧 "십자가의 도(고전1:17~24)" 이며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때에 처음 익은 열매(롬8:23) 즉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전15:23), 속한 자(계14:4),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갈3:27)가 될 우리들도 그 본과 자취(벧전2:21)를 좇아 따라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하여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22~25절에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못마땅하여 비방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화해)하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실수가 많기는, 잘못이 있기는, 오류가 많기는, 혐의가 있기는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분노할 이유도 없으며 못마땅해 할 핑계도 있을 수 없지만 모두가 마음의 상석(上席)에 앉아서 상전(上典)처럼 떠받들어 주기를 바라며 대접해 주기만을 좋아하고 상대방의 미운털이 될만한 꼬투리만 보면서 없는 곳에선 흉보고 욕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니 이러한 죄된, 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고 죽이지 못하면서 "내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면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드려지는 헌금(예물)이 무슨 효력(갈5:6)과 공력(고전2:13~15)을 발생할까?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장소에만 계시지 않고 어느 특정한 날에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든 없는 곳이 없고 어디든지 못 가실 곳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그러한 일(문제,사건,상황)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그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시므로 야고보서 4장11~12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비방과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저 연약하고 취약하고 부족한 미완성, 불완전한 인간(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뜻대로 안된다고 미워하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헤아려 이해하며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물고 뜯고 싸울 것이 아니라 존중하며 못마땅하다고 함부로하고 갑질할 것이 아니라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그 마음이 "화해" 하는 첫 단추요 첫 걸음이요 이러한 마음이 어느덧 우리 자신을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천국의 문 앞에 세워놓을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