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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누가복음 13장19절)

교훈 안에 2022. 12. 24. 11:04

오늘은 누가복음 13장19절에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에서 "겨자씨"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겨자씨" 는 그 크기가 좁쌀만한, 아니 좁쌀보다 쬐금더 작은 형태로써 다 자라봐야 1m에서 최대 3m정도로 자라는 한해살이 풀이기 때문에 새들이 믿고 앉을만한 나무라고 보기는 어려운 식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천국을 알리고 설명할 때에 "겨자씨" 에 빗대어 비유하여 말씀하신 이유는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생명의 근본이요 근원인 "씨" 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전하고자 함에 방점을 찍기 위함이요 그러한 아주 작은 "겨자씨" 에 빗대어 "하나님의 말씀의 씨(눅8:11)" 역시 아주 아주 작은 것이라서 볼품도 없고 풍채(사53:2)도 없고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어서 사소하게 여기고 있지만 세상에서는 경험한 적이 없는 놀라운 생명력의 "말씀의 씨" 라는 것을 전하고자 함이요 그러나 정말 귀하고 소중한 씨라는 것을 인지하고 깨달았다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지 않았을 것이요 그리스도를 두 번 죽이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운 맹수처럼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거나 악을 행하지 않았으리라. 그러한 "씨" 임을 말하고자 함이니 중요한 것은 제아무리 좋은 씨라고 할지라도 채전(菜田) 즉 그 씨라 떨어지는, 뿌려지는 밭(흙,땅)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누가복음 8장15절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6000년 전부터 말씀의 씨를 사람의 마음 밭에 뿌리신 "농부(요15:1)" 로서 농부의 기쁨은 그 결실함이, 그 열매 맺음이 "30배, 60배, 100배(마13:23)" 하듯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할나위 없는 것이며 그 밭은 착하고 좋은 마음이라야 결실을 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착하고 좋은 마음의 소유자라야 하리니.....

여기에서 바로 잡아야 할 것은 "착한 것" 과 "바보" 의 차이점이 있으니 알고도 당해주는 것이 "착한 것" 이요 경험이 부족해서든, 눈치가 없어서든 뭘 몰라서 당하는 것이 착해서가 아니라 "바보" 이기 때문으로써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나의 기준(성향,가치관)이나 관점(이념,철학)보다 더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여서 백 번 배려하고 양보하는 과정에서 알고도 당해주는 것은 그 마음 밭이 착하고 좋은 밭(흙,땅)이기 때문이요 그러한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리니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그 계명에 "서로 사랑하라.(갈5:14~15)" 하시는 것처럼 다른 사람 즉 내 옆에, 내 주변에 있는 상대방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에 관하여 기록하신 책이기 때문이며 이를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 로서 그 롤모델을 따라 행하게 하려 하심이며 그런즉 씨가 자라서 나물이 되고 나무가 되어서 새 곧 성령(마3:16~17)이 깃드는 것이 완성된 온전한 하나님 나라 천국의 모습이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오셔서 깃드는 것 즉 우리 사람이 옷처럼 덧입는 것(고후5:1~4)이 정확한 표현이며 하나님의 영(靈) 곧 성령을 옷처럼 덧입는다는 것은 생명이 사망을 삼키는 형국이기 때문에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무궁한, 무한한 생명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6000년 전 아브라함과 하신 안식의 땅 가나안에 관한 영원한 언약(창17:7~8)의 내용이었으며 이를 이루시고 끝(롬9:28)내시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그 "세상 끝" 에 관한 의미이며 그런즉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안식(히4:8~9)을 목전에 두고 광야 끄트머리에서 모세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성도,자녀)들처럼 지켜 행하라는 계명을 지켜 행하지 않고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언짢으면 갑질하는 범죄와 행악을 인하여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코 앞에서 두고서 죽느냐(신32:51~52), 아니면 이를 거울과 경계(고전10:11)와 생명의 교훈(롬15:4)으로 받아서 계명을 순종하여 요단 강을 건너므로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19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하시면서 32~34절에 "내가 범인처럼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답시고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못한 것들이 얼마이며 구원에 대한 믿음의 소망 때문에 여기도 안가고 저기도 못간 것들이 얼마이던가? 물론 이제와서 보니 이러한 것을 절제하라는 뜻이 아니라 이는 일부분만 알고 있는 초보로써 참 형상은 마음의 죄된 것들을 절제(롬9:25)하고 제어(벧전2:11)하며 악한 것들을 다스리고(창4:7) 죽이라(롬6:10~11)는 의미였지만..... 어쨌거나 우리 사람은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사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서 각종 질병과 암(시한부)이나 사고, 사건과 자연 재해 앞에서 개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파리 목숨에 불과하여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어떤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성공,재력) 앞에서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어서 맹수처럼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함부로하면서 갖고 있는 능력(나이,성별,지위,재력,학력)으로 갑질도 하는 죄와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유야 어떻든 목적이야 무엇이든 죄된 것, 악한 것의 모든 모양은 다 불의이며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므로 우리 사람은 옳은 행실 곧 의(義)와 선(善)으로 행하는 것이며 의와 선의 그 밑천은 전적으로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 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이래서 미워하고 분노하며 저래서 비방하고 훼방하며 그러해서 함부로하고 맹수처럼 싸우는 죄와 악을 행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먹고 마시지 말기를 말씀하신 것으로써..... 그런즉 37~41절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이 눈 코 입, 팔 다리를 제대로 갖춘 사람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씨(정자)가 밭(난소,난자)에서 잘 자랐기 때문이듯이 모든 생명의 시작은 "겨자씨" 만한 형체 없는 작은 알갱이에서 시작되어 착하고 좋은 마음의 밭을 만나 새가 앉을만한, 깃들만한 나무가 되리니 이는 톱니 바퀴가 잘 들어맞듯 하나님의 말씀의 씨는 그러한 마음 밭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바뀌고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하며 노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수 이선희씨나 조용필씨가 가왕이 되기까지는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을정도로 자기 관리, 평정심 유지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의에 대해서는 따라 올 자가 없는 의의 왕이 되어야 하며 화목하고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분위기 매이커에 있어서는 따라 올 자가 없는 평강의 왕이 되어야 하리니 그러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끊임없는 훈련과 부단히 연습해야 가능한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앞서서 그리스도께서 본보기를 보이신 것은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 사람을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어 무한한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죽기까지 실천하신 것이며 죄와 악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향하여 불나방 같이 달려가는 땅에 속한 형체의 씨에서 벗어나 최고한 계명(눅10:25~28)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들어가는 하늘에 속한 형체의 씨로 다시 태어나게, 거듭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