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레미야 1장13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에서 "끓는 가마"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끓는 가마" 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이유는 당연히 쏟아붓기 위함, 쏟아내기 위함이며 마치 사람이 화가 치미는 것을 억눌러서 참고 있을 때에 "끓는다 끓어." 하는 것처럼 "분노나 노여움" 을 "끓는 가마" 에 빗대어 비유하여 에둘러서 표현하신 말씀으로써 여기에서 "북" 이라 하심은 북방에 있는 이방 족속 곧 대표적으로 강대국 "바벨론과 앗수르" 를 의미하며 모세의 때에는 애굽이요 실질적으로 솔로몬 왕 이후로 이스라엘 땅은 남유다(예루살렘) 북이스라엘(사마리아)로 땅이 나뉘고 분열되면서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포로로 사로잡혀(렘1:3) 갔으며 그런즉 "끓는 가마" 는 바벨론을 의미하며 또한 앗수르(사10:5~6)를 "나의 진노의 막대기, 몽둥이" 라 표현하여 기록하신 것과 동일한 맥락이니 이 또한 지나간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에 빗대어 비유하여 참 형상을 감추어 놓으셨기 때문에 북방의 이방 족속 바벨론, 앗수르는 그림자(껍데기)에 불과하여서 아직도 이대로 가르침을 받으며 배우고 있다면 초보(일부분) 아래에 있는 몽학 선생(갈3:23~25)과 그 성도들이 되리니 초보(일부분)로는 허깨비(그림자,껍데기)만 붙잡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이렇듯 "끓는 가마" 하듯이 하나님의 분노와 노여움의 발단이 된 것은 예레미야 1:15~16절에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모세의 율법에 "십 계명" 에도 "나 외에 다른 신은 만들지도 절하지도 섬기지도 말라.(신5:7~9)" 하심이 어찌 다른 종교에는 눈 돌리지 말라는 얄팍한 의미만을 담고 있을까? 이는 그저 표면적인 것(초보,일부분)에 불과하며 오히려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분명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도 정작 지켜 행하라고 주신 계명(눅10:25~28)은 지켜 행하지 않고서 이런저런 이유(체면,자존심)로 마음에 안들어하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비방하며 이러저러한 핑계(내 입장,처지)로 못마땅해하면서 함부로(무시,업신여김)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것이 참 형상(실물,실체)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 곧 마귀(요일3:8)에게 절하며 마음에 만들어서 섬기는 것이니 이사야 3장8~9절에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찐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그들의 언어는 서로가 서로의 가슴과 마음에 비수 꽂는 송곳 같은 못됐고 나쁜 악(惡)이요 그 행위는 함부로(무시,업신여김)하고 갑질하는 죄(罪)이며 그 안색은 늘 심통과 심술 때문에 울그락불그락 변하며(창4:6~7) 이것이 그들의 죄악을 발표하고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니 어찌 멸망과 파멸과 사망(죽음)을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 역시 빗대어 비유하여 에둘러서 표현하신 것으로써 시간(세월)만 흘렀을 뿐, 공간(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주여 주여!! 부르짖고 있는 우리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며 시대시대마다, 그 세대세대마다 "분노 유발자" 하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을 거울과 경계(고전10:11)와 생명의 교훈(롬15:4)으로 삼지 못한다면 구원은 고사하고 그 서 있는 길이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보호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잠언서 6장15~22절에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하리라.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명령을 지키며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자신의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성공,성취)에 따라서 그 미워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며 또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의 기준은 오직 최고한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심에 있기 때문에 교만한 눈으로 함부로하고 갑질하고서야 어찌 "사랑한다." 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상대방이 없는 뒤에서는 있지도 않는 것까지 덧붙여서 흉보고 욕하는 비방을 하면서 "사랑한다." 하면 거짓된 혀가 되는 것이며 또 이만저만한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할 수 없음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이며 그리고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을 호리고 꾀고 속이면서 "사랑한다." 고 절대로 말할 수 없으니 이 자체로 이미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음으로 사건 사고의 재앙에 무방비 상태에 있게 되며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재해나 질병 앞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엎어지게 되며 이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이므로 오직 우리 사람을 보호하는 보호막은 하나님의 계명(갈5:14~15)대로 지켜 행할 때에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패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에 서게 하리니 베드로전서 3장8~11절에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사랑하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의 죄와 악으로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눈을 촉범하여 분노와 노여움을 일으킨 분노 유발자들이지만 이로써 멸망과 파멸과 사망에 이르게 하려하심이 목적이 아니라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어서 더러운 죄와 악을 깨끗이 씻게하려 하심이요 경계로 삼아서 조심하고 근신하고 깨어있게 하려 하심이요 생명의 교훈으로 삼아서 부디 패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 곧 구원을 얻게하려 하여 기록하신 약속의 말씀으로써 이것이 "진리의 성령 보혜사" 이지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다 똑같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