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레미야 3장14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의 남편임이나라." 에서 "남편(男便)"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남자가 되었건 여자가 되었건 그냥 "사람(갈3:28)" 이라는 관점에서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을 땅에 있는 우리 사람(아내)에게 장가드는 "남편(호2:16~19)" 으로, 또는 비록 육신(肉身)을 낳아주신 땅에 있는 아버지가 계시지만 영혼 곧 심령(슥12:1)을 낳으신 영(靈)의 세계에 있는 하나님을 "아버지(엡6:23)" 로, 그리고 아버지 혼자서는 절대로 자식을 낳고 기를 수 없기 때문에 부모 즉 때로는 세상에 있는 우리 사람의 심령을 양육(사1:2)하신 하나님을 "어머니(갈4:24~26)" 에 빗대어 비유하여 에둘러서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남편" 이라 하심은 결혼한 남자를 그 아내가 일컫는 말로써 또 어디에는 "신랑(사62:5)" 이라고도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리 사람을 아내(신부)에 빗대어 말씀하셨기 때문이며 중요한 것은 "남편(신랑)이신 하나님" 을 통하여 과연 말씀하시고자 함이 무언인지 하는 것이며 또 그 본질을 아는 것이 "남편(신랑)" 에 관하여 기록하신 목적이므로 예레미야 3장1절에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 하시면서 8절에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 10절에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뿐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어떤 사람(남편)이 사랑해서 결혼한 자기 아내를 버리겠는가? 오직 바람을 피우거나 외도를 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남의 아내가 되어 임신까지 하게 된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용납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놔주어야 함을, 버려야 함을 기록하신 말씀으로써 그러나 세상이 아닌 하늘의 하나님 나라(천국)에 계신 "남편(신랑)되시는 하나님" 은 세상에서처럼 버리고자, 내치고자 하심이 아니라 이혼서까지 주는 극처방(렘3:12)을 하여서라도 돌아오게 하시려는 의도이고 그마만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은 것은, 돌이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람(아내,신부)" 이니 과연 무엇이, 어떤 것이 그리 좋아서 바람을 피우고 외도를 하며 잉태(임신)까지 하여서 돌아오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욕심(렘3:5)" 이었고 하나님이 아닌 "욕심" 을 남편으로 맞아서 죄와 악을 잉태하고 또 잉태하는 간음(음행,행음)을 시대시대마다 세대세대마다 행하여 왔음을 알리고자 하시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 욕심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물욕, 성욕, 식욕, 탐욕, 성취욕, 쟁취욕... 등등등 그러나 이 모든 욕심을 더욱더 부추기는 음녀(계17:5)와 같은 "욕심" 이 있었으니 바로 하나님처럼 사람이 그 마음을 항상 상석(上席)에 두고서, 보좌에 떡하니 앉아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쥐고서 흔들고 싶어하는 "심욕(心慾)" 으로써 이러한 마음은 뜻대로 안되게 되면 쉽게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낳게되고 마음에 안들게 되면 사소하게 여기면서 비방(흉보고 욕함)하는 마음을 낳게 되고 못마땅해지면 거침없이 함부로(무시,업신여김)하는 마음을 낳게 되고 언짢아지면 사나운 맹수처럼 물고 뜯고 싸우며 갑질하는 마음을 낳게 되니 낳고 낳고 또 낳고 이러한 (간)음녀가 어디에 있겠는가마는 우리 사람이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마음으로는 "남편(신랑)이신 하나님" 을 두고서 "욕심" 을 남편으로 삼아 바람을 피우고 외도를 저질렀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죄와 악을 잉태하고 또 잉태하는 간음녀였음을 알리고자 하시는 것이니 우리 사람의 남편(신랑)은 과연 하나님일까? 욕심일까? 만약에 하나님을 남편으로 맞았다면 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2절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 6~7절에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하시면서 11~12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시대시대마다 그 세대세대마다 모세와 같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목사,전도사,선교사,신부님,수녀님)를 세우신 것은 거들먹거리면서 상좌나 상석에 앉아서 우러러 받듦을 받거나 군림하여 섬김을 받거나 다들 고개를 숙여 존경을 표하게 하거나 또 그 쥐고 있는 칼자루로 마구마구 휘두르게 하려고 세우신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가장 낮은 말석(눅14:10)에 있어서 섬기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며 섬기는 자의 모습(태도)는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여 존중하며 관용으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 에 있기 때문에 이는 나 자신의 기분(입장,처지,상황,기준)에 따라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 사항" 이 아니라 무조건(뜻을 다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마음을 다하여) 목에 칼이 들어와도(목숨을 다하여) 지켜 행하여야 하는 "의무 사항" 이니 그렇다면 모세의 자리에 앉은 것이 비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뿐이겠는가? 성경 66권은 다른 사람(상대방)에게 손가락질(정죄,비난)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하시려고, 비춰보게 하시려고 주셨으므로 우리 자신이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또 그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여서 대대손손 유전처럼 이러한 망령된 행실(벧전1:18)의 욕심(약1:15)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하였으며 그 결실로써 뜻대로 안되면 잘라버리고 마음에 안들면 꺾어버리고 못마땅하면 밟아버리는 죄와 악을 잉태하고 낳았으니 하나님께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사59:1~2)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사람 스스로가 멸망과 파멸과 사망의 재앙을 자초(사3:8~9)한 것이며 결국 "참된 지도자의 자리(위치,지위), 참 목자, 온전한 제사장의 모습" 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시려고 "그리스도" 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靈)적인 남편(신랑)이라 몰라봐서 그런가하여 보이는 사람 즉 육(肉)적인 신랑(마25:1~13)을 드러내고 나타내신 것이며 결국 사람의 모든 죄와 악의 원천은 상좌(보좌)나 상석에 앉아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칼자루를 휘두르면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욕심" 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육체의 정욕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갈5:19~24)" 이며 죽으심이 없이는 절대로 결단코 부활(생명,안식,구원)은 없으므로 "정말 못났다." 하는 것처럼 정말로 못나고 못난 우리 사람이지만 그 지으심의 목적이 깨트려버림이 아니라 귀히 쓰기 위해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롬9:21~24)이신 하나님이시므로 또한 한 번이 어렵지 한 번이 두 번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되고 열 번이 백 번, 천 번, 만 번 이제는 감각마저 둔해지고 무뎌져서 마비되어 수도 없이 하나님이 아닌 욕심을 남편으로 삼아 죄와 악을 잉태하고 또 낳는 간음녀로서의 방탕에 방임(엡4:19)하여 사실상 구제불능인 우리 사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신랑)" 으로서 돌이켜 고쳐서라도(회개) 받아들이고자, 두 팔 벌려 품어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마음)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호세아 2장2절에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하시면서 16~17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성경 66권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일점 일획(마5:18)이라도 반드시 다 이루실 약속(언약)의 말씀이지만 특별히 "그 날에~ " 라고 더욱더 강조하여 기록하신 것은 틀림이 없음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으로써 한 우물(입)에서 쓴물(죄악)과 단물(사랑)을 동시에 낼 수 없고 한 집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한 몸에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한결같이 항상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통하여 무한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열어두시고 멸망과 파멸과 사망으로부터 보호하심을 받게 해주셨지만 그 길을 이탈하여 사고를 자초한 것은 우리 사람 스스로였으며 또한 그러한 남편이신 하나님을 버려두고서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누구랄 것 없이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러저러한(체면,자존심, 재력,학력,지위,나이 많음,성별의 우월성... 등등등) 능력(힘)을 빌미로 상석, 상좌, 보좌에 가만히 앉아서 상대방을 뜻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은 욕심을 남편으로 삼아서 두 마음을 품는 음란과 음행을 수없이 저질르는 "(간)음녀" 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었음을 알게(깨닫게) 하여서 이를 버리고 비우고 죽이게 하시려고 성경 66권을 우리 사람에게 주신 것이며 이로써 지금까지는 바알 즉 "주여, 주님" 하는 "창조의 주인으로서의 하나님" 이셨지만 욕심을 버리고 죄와 악의 종에서 벗어난다면, 돌이켜서 돌아온다면 동등한 입장(빌2:6~8)의 "참된 남편" 으로서 우리 사람에게 장가들 것을 약속(언약)하신 말씀이시며 죄와 악을 잉태하고 또 낳게 했던 남편 곧 "욕심(육체의 정욕)" 에서 떠나고 벗어나기 위한 노력(십자가의 고난,죽으심)을 통하여 앞서서 먼저 헵시바, 쁄라(사62:4~5)가 되신 "그리스도" 를 롤모델로써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은 두 번째 다시 오실 때에는 우리들로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속한 자,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 즉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같은 많은 아들을 얻고자 하심이며 그들로 하나님께서 참된 신부(아내)로 맞이하여 비로소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한 몸(엡5:31~32)이루고자 하시는 것이니 사랑이 곧 하나님이요 생명이 곧 하나님이며 구원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이며 신부(아내)가 입어야 할 웨딩드레스(세마포)는 오직 옳은 행실(계19:7~8)이며 옳은 행실은 반드시 최고한 계명인 "사랑" 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사랑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죄와 악을 잉태하고 또 낳게 하였던 "욕심" 이라는 남편을 반드시 버리고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