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복음 20장2절에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에서 "권세(權勢)"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권세" 라 하심은 어떤 일(상황,문제)이나 다른 사람(상대방,남)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움직이며 좌지우지 부리고 지배할 수 있는 힘 또는 그러한 능력을 갖춘 것을 의미하며 우리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어떤 능력 곧 재력이 되었건, 학력이 되었건, 지위(위력)가 되었건 이러한 것을 이용하여 사람들 위에 왕(임금)처럼 군림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 존경해주고 받들어주고 추종해주기를 좋아하며 또한 그 뒤에 좇아오는 영향력을 통하여 줄 세우고 뒤 봐주고 눈 감아주면서 칼자루를 휘두르듯 휘두르기를 좋아하니 중요한 것은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라는 말처럼 세상에서 주어지는 이러한 권세는 자신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성공,성취)이 가장 큰 목적이므로 자신의 뜻대로 안되면 잘라버리고 마음에 안들면 꺾어버리고 못마땅해지면 밟아버리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뜻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가장 큰 폐단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세" 는 하늘의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택하신 종 곧 그리스도에게 큰 소리로 다투지도(사42:1~3), 들레지도(다그침) 말며 꺾지도, 끄지도(마12:20) 말기를 주문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종이라면 그러지 말아야 하리니 그런즉 구분하고 구별하고 분별하여서 더는 어그러지고 잘못된 "권세" 에 휘둘리거나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오늘 이 "권세" 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이유로써..... 요한복음 17장2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시면서 8절에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 하심은 하나님처럼 그 상좌, 보좌에 앉아서 "내가 하나님이니 내 말이 곧 법이다." 하는 구태의연한 구시대적 발상의 일로(一路)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요1:1)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쳐서 사람들 스스로가 말씀 위에 설 수 있도록, 서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니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께로 이러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 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빌2:6~8)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 즉 가장 낮은 말석에 앉아서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닌 섬기는 자(막10:45)가 되셨으며 이렇게 하심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의 뜻이요 말씀의 도(道)이며 또한 이것이 말씀의 권세인데 어느 누가 무슨 자격으로 섬김을 받고 우러러 떠받듦을 받으며 추종함을 받고 많은 사람들(성도,자녀) 위에 군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말씀은 말(설교,강의)에 있지 않으니 말로는 누가 못하겠는가?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기에 앞서서 자기 자신이 말씀의 뜻대로 먼저 몸소 실천(롬2:21)하여 본보기가 되었을 때에 그 말씀에 대한 신뢰와 떳떳함 즉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며 그리고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그 한 구절 한 구절의 의미와 뜻을 헤아리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짝(사34:16)이 적게는 한 개, 많게 여러개가 있어서 반드시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서 그 한 구절 자체에만 꽂혀서 내밷은 말씀을 꼭 자신의 말이요 또 그 말이 곧 법인양 그 말씀 한 구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호리고 꾀어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휘두르고 부린다면 이는 하나님을 모독(롬2:22~24)하고 욕보여서 사람들(자녀,성도,백성)로 하여금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을 완전히 차단하거나 낭떠러지(멸망,파멸,사망)로 떨어지게 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성령을 거역하고 거스르는 자(마12:31)" 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17~18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체면을 빼면 시체", "자존심을 빼면 시체" 하듯이 살아 온 날 수(나이) 만큼이나, 겪어 온 짬바(경험) 만큼이나 이것이 무슨 무기(방패) 또는 능력 쯤이나 되는 것 마냥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훼방(보복,복수)하며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니 이러한 것을 목숨처럼 여기고서야 어찌 섬기라고 하는, 겸손하게 낮추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행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말씀으로 드러내고 나타내셨기 때문에 모든 권세는 말씀에서 비롯되어 나오는 것으로써 죄와 악을 버리지 못한다면, 비우지 못한다면, 죽이지 못한다면 이는 그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하여 철저히 만들어낸 자기 자신의 권세이지 절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권세가 아니며 하나님께로 나오는 권세는 오직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의 말씀 곧 그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되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신 뜻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사랑(이해,존중,배려,양보)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체면을, 자존심을, 나이를, 경험을 앞세우거나 내세워서는 안되며 또한 계명을 위하여 버리고 비우고 죽일 줄 알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 있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 권세를 받게 되리니 잠언서 18장19~21절에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하여 배가 부르게 되며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하시는 것처럼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이 사람을 즉 상대방(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빌2:3~5)으로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모르고서야 어찌 평화(화평,화목,평강,화기애애)를 바랄 수 있으며 말만 번지르르 앞세우고서야 어찌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좋은 날(벧전3:10~11)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 나라 천국은 말에 있지 않으니 말은 선한 뜻으로 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이나 처지나 상황에 의해서 받아들이기에 따라 비수가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항상 실수(약3:2)가 있기 마련이므로 좋은 결과(열매)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말보다는 그져 잠잠히, 묵묵히 "사랑(이해,존중,배려,양보)하라." 하신 계명대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그러할 때에 그 열매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계시록 20장6절에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세상에서 세상적으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었거나 생겼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일 당장 그 사람의 생명을 찾으신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주고자 하시는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는 어느날 갑자기 도끼배 방망이처럼 뚝딱 생기는 것도 아니요 마술처럼 요술처럼 뾰로롱 나타나는 것도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맏아들이시라도 앞서서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으려고, 악에게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6~11)" 으로 부활에 참예하신 구원의 근원(히5:7~9)으로서의 본과 자취를 보이심으로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전15:23), 속한 자(계14:5),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갈3:27)가 되게 하여서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게 하시고 오히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말씀으로 살리는 권세 즉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을 약속(예언)하셨으니 지켜 행하여야 할 계명이 버리고 비우고 죽이지 않고서는 지켜 행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그 마음을 상석 곧 하나님의 상좌, 보좌에 두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동안 목숨처럼 여겨서 버릴 수 없었던 체면을 버려야 하고 비울 수 없었던 자존심을 비워야 하고 죽일 수 없었던 사나운 심성을 죽이지 못한다면 여전히 죄 아래 갇히고 그 사슬에 매여서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호리고 꾀어 자신의 입맛대로, 기분대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르듯 휘두려며 부리면서 자신의 유익과 이익과 배만 채우는데 활용하고 이용하여 사람들(성도,자녀,백성)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과연 악랄함의 그 끝이 어딘지조차 알기 어려운 악질 중에 악질의 하나님을 모독하고 욕보인 자로 드러나고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