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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누가복음 22장19절)

교훈 안에 2023. 7. 3. 16:45

오늘은 누가복음 22장19절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에서 "기념(紀念)" 에 대하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기념" 이라 하심은 어떤 의미있는 일이나 기억에 남는 어떤 상황을 잊지 않고 되새기는 것을 의미하며 또 거기에 어떤 형식(예식,의식)과 절차(순서,주보)를 갖추게 되면 "기념식(紀念式)" 이 되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하여서 이혼을 못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기념식 곧 성찬식" 을 거룩하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드렸다고 하여서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그리스도를 똑바로 믿는 척도가 될 수는 없으니 이는 그저 예법, 예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또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외모(외적)는 거룩하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보일지언정 드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심령,영혼)과 생각은 전혀 다른 엉뚱 곳에 가 있을 수 있는 반전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며 더욱이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바로 앞 구절 15~16절에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기념은 어디까지나 기념이지 그것이 믿음의 전부가 될 수도 없고 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면 즉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게 된다면 진짜배기(참 형상,실물,실체)가 왔고 참 뜻이 있는데 아직도 겉껍데기만 부여잡고서 먹고 마시고 있는 꼴이 되기 때문에 믿음의 결국과 믿음의 소망은 어디까지나 생명과 안식과 구원(벧전1:9)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위한 믿음이고 어떤 것을 위한 믿음인지를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살펴보아야 하리니.....

다시 말해서 "유월절" 은 모세의 때에 430년 간 애굽에 종노릇하던 데서 탈출하여 생명과 안식과 구원(출12:27)의 상징인 "가나안(히4:8~9)" 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과 명분을 갖추게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규례(출12:3~14)로써 그 유월절이 오늘날 "성찬 예식(의식)" 으로 보시면 맞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 때에 먹고 뿌렸던 어린 양의 피와 살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행3:20~22)로 드러나고 나타나신 그리스도이시고 그 피와 살은 그 알리고 전하시고 이르시고 가르치신 말씀이므로 그의 피와 살 즉 우리 믿는 자들이 종노릇하는 것에서 탈출하게 해 줄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 곧 그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으로써 애굽의 법 아래에서 430년 동안 살다가 탈출하여서 홍해를 건너 시내 광야로 들어섰을 때에는 사실상 법이 없는 무법(無法)한 상태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그러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율법과 그 (십)계명들을 주신 것이며 그러나 율법의 계명대로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애굽의 법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던 것을 씻어내고 닦아낼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으며 그런데 7일이면 시내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자그마치 40년이나 광야에서 헤맬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마음만 바꾸어 먹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어떻게 보면 사람의 이러저러한 미련(후회,원망... 등등등) 때문에, 욕심(체면,자존심,심술... 등등등) 때문에 마음을 바꾸어 먹기가 아주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므로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과정인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장23~27절에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또한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장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모세의 율법과 그 율법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율법과 율법의 계명은 나와 상관이 없고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며 또 그렇게 알리고 전하며 가르쳐 왔지만 모세와 그 율법은 모형과 그림자(히10:1) 곧 일부분(초보)에 불과하고 그 참 형상(실물,실체)인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범하기는, 악을 행하기는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히5:1~3) 아론의 반차를 따라 난 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댁의 반차을 좇아 난 제사장으로 오셨으니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야 어찌 그리스도의 완전한(히6:1~2) 데 즉 완성된 율법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여서 모든 예법과 예식(의식) 곧 새벽 예배, 수요 예배, 금요 철야예배, 주일 예배, 부흥집회 성회...등등등을 비롯한 부활절, 추수 감사절, 성탄절 예배들은 모세의 율법에서 기록하고 있는 예법과 예식에 기인하고 있고 율법 아래에 있으니 왜냐하면 율법 자체가 사람이 자꾸만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죄(갈3:19)를 범하고 악을 행하기 때문에 그 죄를 깨닫게(롬3:20) 하시려고 주신 것이며 지금 현재 우리가 이러한 각종 예식, 의식을 통하여 "내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는 신앙 고백, 고백(고해) 성사와 같은 죄 사함의 기도(주 기도문)를 빠짐없이 하고 있는 예배이기 때문이며 그러나 말로 중언부언 주문을 외듯이 외운다고 내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무한 반복 시를 읊듯 읊는다고 악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더군다나 마음과 생각에서 비롯된 죄와 악이 희생 제물(헌금) 몇 푼에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모형과 그림자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몸소 어린 양으로서의 피와 살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여 주셨으니 그런즉 "어린 양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신다." 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곧 그 교훈의 말씀을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본보기(벧전2:21)를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함이 곧 모세의 율법과 그 (십)계명을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이 아닌 언행일치로써의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정직함(전7:29)과 깨끗함(벧전3:21)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6장17~18절에서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모세의 때에 430년 간 애굽에 종노릇 했던 역사적 사실(사건)을 기록하시고 거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매개체로써 "어린 양의 피와 살" 에 관하여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기록하여 주신 것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고자 하시는 역사책이 아니라 죄와 악에 종노릇하고 있었던 우리 사람 자신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하려 하시는 경계(고전10:11)와 교훈(롬15:4)의 말씀임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종이(성경책)로만 남아있던 보물섬(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방법과 길을 그리스도께서 실질적이고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몸소 보여주신 것이 다름 아닌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죽이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을 만천하에 알리셨고 가르쳐 주셨고 이것이 우리가 진정 먹고 마셔야 할 어린 양의 피와 살이지만 우리 사람은 여전히 눈 앞에 두고서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어서 엉뚱한 방법(성찬 예식)으로 기념만 하고 있으니 이제는 기념하는 때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부딪혀서 먹고 마셔야 하는 참 것(참 형상,실물,실체)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로써 죄 없이 함(히10:16~18) 즉 죄 사함을 얻을 수 있고 죄 사함이 있어야, 얻어야만이 구원이 있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