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복음 22장48절에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 에서 "팔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팔다." 라 하심은 "권리금" 하듯이 어떤 물건이나 건물... 등등등의 그 권리에 관하여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나 그것이 정당한 방법이나 옳은 뜻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면 꼭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이 도둑질이 아니라 상대편이 알지 못하게 교묘히 속여 부당한 이득이나 유익을 취하는 것 역시 도둑질을 하는 도둑이요 강도요 절도가 된다는 것을 잡아내셔야 하며.....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복음 22장48절 이하 23장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룟인 유다는 은 삼십 냥에 그리스도를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과 유대 총독 빌라도를 비롯하여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팔아 넘겼고 그로 인한 영향력은 안그래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밉고 싫었는데 그 여론과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희롱(63절)하고 침 밷고 때리며 맹수처럼들 사나워져서 비방하여 욕(65절)하며 못마땅하고 언짢은 마음에 함부로(무시,업신여김)하며 급기야는 십자가(유대에서 가장 극한 형벌)에 못 박기를 한 목소리로 외치기에 이르렀니..... 가족 같고 형제(막3:35) 같고 친구 같았던 제자였던 가룟인 유다가 팔아 넘기는 것에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라면 상당한 배신감이나 당혹감이 있었겠지만 그러나 팔아넘긴 유다와 팔아 넘김을 받은 그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누가복음 22장52~53절에서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일절 서운 내지는 섭섭한 개인의 감정이나 원망 내지는 분노의 기분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입각한, 하나님의 말씀의 메뉴얼을 바탕으로 한 덤덤히 갈 길, 하실 일들에 관하여 말씀하셨으니..... 다시 말해서 "어두움의 권세(요일2:8~10)" 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할 권리나 이유는 없지만, 이유가 있다면야 그 마음이 항상 상석(上席)에 있음을 인하여 상대방을 투기(시기,질투)하게 되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인함이며 또 밉고 원망스러운 마음에 비방(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훼방(보복,복수,앙갚음)하게 되며 매사에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고 갑질하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대로 행하게 되기 때문에 어찌 그것이 비단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에게 국한된 말씀일까? 하는 것으로써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처해 있는 곳(가정,학교,직장,모임,단체,동아리,동호회... 등등등)에서 손에 검과 몽치를 들지 않았을 뿐이지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모질고 독한 비수같은 말로 상대방을 짜르고 공격하게 되며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지면 고약한 심보를 통한 몽치같은 행동으로 상대방을 때려눕혀 밟기도 하였니 "은 삼십 냥" 은 명분에 불과할 뿐 진짜 팔아넘긴 것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부여하신 자비롭고 따뜻하고 너그러운 "선한 양심(벧전3:21)" 이었음을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저마다의 자신을 들여다 보게 하셨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창세기 50장19~20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하시는 것처럼 이 말씀은 창세기 37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야곱(이스라엘)에게는 12아들이 있었는데 야곱은 그 중에 막내였던 요셉을 가장 이뻐하였고 그러나 형제들은 아비의 요셉 사랑함을 보고 시기하여 미워하며 불평하게 되었고 결국엔 동생 요셉을 죽이자는 작당모의를 하던 끝에 은 이십에 애굽으로 팔아 넘기기에 이르렀으니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일들과 많이 닮아 있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시간(세월)만 흘렀을 뿐, 공간(장소)만 바뀌었을 뿐 사람 살아가는 모습(자세)은 다 똑같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이요 친구 같은 형들이 돈(은 이십) 받고 팔아 넘겼다는 그 배신감과 당혹감은 그 원한만으로도 얼마든지 보복하고 복수하고 앙갚음을 하려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 사람의 모습인데 그러나 양쪽 다 이런 똑같은 독하고 악한 마음을 먹고서야 어찌 좋은 날(벧후3:10~11), 유쾌한 날(행3:19)의 내세를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을까? 양쪽 다 망하는 방법일 뿐..... 요셉은 애굽의 총리까지 되어서 아비를 비롯한 형들을 살리고 보호할 궁리를 하였으니 이렇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됐고 나쁘고 악한 마음,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변하여 선하고 너그럽고 좋은 마음, 곧고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심성으로 바뀔 줄 아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주신 선물(은혜)과도 같은 "선한 양심" 으로서 그러한 마음이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에 이르는 재앙으로부터 건져내어 보호하는 "구원" 으로 연결되는 것이며 다만 온전하고 완전하게 "선한 양심" 으로 바뀌고 변화되기까지는 노력 곧 십자가의 길(고난,죽으심)을 걸어야 하며 그 본보기를 몸소 실천하여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 로서 그 본과 자취(벧전2:21)를 좇아서 따라올 줄 아는 자, 지켜 행할 줄 아는 자들로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자" 로서의 자격과 명분을 갖춘 아들이요 제사장이요 나라(벧전2:9)로 삼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빅픽쳐(큰 그림)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9장16~21절에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말씀은 4복음서(막10:17~21,눅18:18~22)에서 다 기록하고 있어서 종합해서 보자면 우리 믿는 사람(이스라엘)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 믿음의 소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구원(벧전1:9)" 을 얻고자 함이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목표이며 결국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던 율법의 (십)계명을 지켜 행하는 일이며 또한 계명에서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시는 이유는 결국 그 최고한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 하심을 정성과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온전하고 완전하게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함이고 또한 우리 사람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 할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과 못됐고 나쁘고 악한 양심을 팔아서 선한 양심으로 바뀌고 변화되어야 하지만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잘 하는데 정작 마주한 문제(사건,사고)나 상황(입장,처지) 앞에서는 이해하기 보다는 마음에 안드는 것에 미워하고 분노하게 되며 존중하기 보다는 못마땅함에 비방하고 함부로하게 되며 배려하고 양보하기 보다는 언짢음에 갑질하는 악한 양심을 좇아서 행하기에 바빴으니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것에 가난하였었는지를 꼬집어서 하신 말씀으로써 우리 사람은 언제나 선하기만 하고 너그럽기만 하고 친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분(기준,잣대)에 따라, 어떤 상황(유익,이익)에 따라 먹이 앞에 시퍼런 이빨을 드러낸 사나운 맹수처럼 돌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마냥 선한 양심을 소유한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에게 완전하고 온전(마5:48)하기를 요구하고 계시고 그 방법과 메뉴얼을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기록하여 주셨으며 나아가 이를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그리스도(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를 드러내고 나타내심으로 핑계댈 수 없음은 목구멍 앞까지 밥 숟가락을 들었고 물가까지 끌고는 왔지만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던 것은 우리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초하고 자취하여 애써서 멸망과 파멸과 사망의 길을 택하여 걸었으니..... 이제라도 알았다면, 깨달았다면 빨리 악한 양심을 팔아서(바뀌고 변화됨) 선한 양심을 사야(취함) 하며 그러한 사람에게 하늘의 보화 즉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