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마서 3장5~6절에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에서 "우리 사람의 불의(不義)" 와 "하나님의 의(義)"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불의" 라 하심은 "불공정, 불평등, 불합리" 하는 것처럼 옳지 않는 것, 옳지 않은 행실을 의미하여서 우리 사람은 자신이 살아 온 환경이나 배경에 의해서 그 가치관이나 관점, 성향(성격)이나 신념도 형성이 되어지기 때문에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함에 있어서 다분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고 또 그것이 내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성공,성취)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더더욱 "내로남불" 하듯이 때로는 불의한 것도 정의(공평,공정,합리)가 되기도 하고 공의로운 것도 불의가 되기도 하니 사람의 생각(가치관,기준,신념..등등)이나 상황(유익,이익)에 따라서 그 기준이 왔다갔다, 오락가락, 이랬다저랬다가 된다면 그것을 어찌 공의, 정의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야고보서 3장6~8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하시는 것처럼 사람보다 간사(궤휼)한 것이 없는 이유는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우리 사람은 한 입으로 보이는 앞에서는 선하고 너그럽고 따뜻하며 의로운 말을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뒤에서는 복수(보복,훼방)을 꿈꾸면서 못됐고 나쁘고 악독한 말을 하는 즉 전혀 다를 수 있는.. "두 말" 을 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 비록 한 몸이지만 보이는 앞에서 보여지는 겸손하고 순한 마음과 숨기고 있다가 후에 기회를 봐서 상대방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꼬이고 사나운 마음 즉 "두 마음" 을 얼마든지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니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 사람을 선하고 순하고 의로운 생명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악하고 독하고 불의한 존재라고 해야 맞을까? 결코 선하고 순하고 의롭다고만 말할 수 없으니 악하고 독하고 불의한 존재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며 그러나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먹칠된 명성을 회복시키며 원상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6000년을 걸처서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주신 것이며 뿐만아니라 또 그러한 사람의 모든 불의(미움,원망,분노,비방,훼방,함부로 함,갑질,짓밟아버림..등등)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길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을 드러내고 나타내 주셨으며 이제는 이렇게든 저렇게든 이 모든 것의 결말(알곡,쭉정이)을 거두어 들이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이므로 우리 자신이 정말로 열심내어 해야 할이 무엇인지, 또 준비해야 할 마음의 모습(자세)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2:19~21절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교회(성당,예배당,성전)를 다니고 열심(예배,헌금)으로 충성봉사를 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면(롬10:13), 주의 이름을 믿으면(행16:31) 무조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초보요 일부분만 아는 것으로써 "믿습니다. 주여 주여!!" 부르짖고 외치며 또 믿고 있다면 가장 먼저 뜻대로 안된다고 미워하고 비방하며 마음에 안든다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며 못마땅하다고 짓밟아버리는 모든 불의에서 떠나야 하며 또 이런 것을 버리고 비우고 죽여서 깨끗케 하여야 주인(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귀한 그릇(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난 참된 제사장)이 되며 이를 위하여 우리들을 부르신 것이니 로마서 6장13절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시는 것처럼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안된다고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욕심껏 휘두르지 못한다고 손짓(손가락질이나 비방이나 마녀사냥..등등), 발짓(짓밟아버림), 눈짓(눈총이나 째려 봄), 말짓(보복이나 복수나 훼방)으로 상대방을 힘들게 어렵게 곤란하게 괴롭게 만든다면 이는 시들시들 병들게(주눅들게, 눈치보게, 의기소침) 만드는 것으로써 이것이 총이나 폭탄 수준의 무기(병기)와 다름이 없으며 이렇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지으신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의 덕(공덕,공력)을 끼치고 세우며 선전(벧전2:9)하게 하려 하여 지으셨으며 이러한 사람의 마음(기도)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며 이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치유하고 치료하는 의의 병기로 지으셨으니 고린도전서 6장6~9절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세상 사람들도 이 지구상의 "사랑과 평화" 를 외치며 구호단체도 만들고 또 위해서 나름 애쓰고 노력도 하지만 인류가 있은 이래로 평화는 커녕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이는 여전히 사람 자신 내 속이 시끄럽고서야 어찌 "평화" 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또한 세상만사 술술 잘 풀리며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잘 되고 잘 해결되면야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마는 내 마음 같지 않고 뜻대로도 잘 안되고 못마땅한 것이 많기 때문에 그 원인과 발단을 사람 자신 내 속에 찾아야 하고 역추적하여 들여다볼 줄 알아야만이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 으로 행하게 될텐데 이해는 커녕 남(상대방)을 하면서 미워하고 원망하기 바쁘며 존중하기는 커녕 분노하고 비방하기 바쁘며 또한 배려하고 양보하기는 커녕 남(상대방) 핑계를 대면서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송사(변호,변론)를 하니 이것이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그 취지(정직)와 목적(솔직)을 망각하여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불의" 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10장2~3절에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의(공의,정의,공평,공정..등등)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을 통하여 믿고 안믿고를 떠나서 온 세상에 드러내고 나타내셨으며 그 고난과 죽으심의 근본 바탕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욕심)내지 말라 하신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 하는 율법의 (십)계명 중에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으로써 이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완성(롬13:8~10)한 연후에야 비로소 하라, 하라, 하라 하시는 섬김(겸손)과 공경(존중)과 사랑(이해)을 지켜 행할 수 있고 이로써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의(義)이지만 우리 사람은 이를 등 뒤로 던져 버리거나 잊어버리고 사람 자신의 이러(체면) 저러(자존심) 그러(성공,성취)한 삶(육신,몸)의 목표에 떠밀려서 사람의 의(재력,학력,지위,나이 많음,성별의 우월성..등등)를 위한 한낱 방패(바람막이,간판)나 들러리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였으니 이제는 모르면 모를까 알고 난 후에는 핑계할 수 없고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여 바로 잡아야만이 진정 믿음의 소망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살후1:5~7)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