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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교훈 안에 2024. 4. 16. 16:36

오늘은 로마서 3장10~12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에서 "의인(義人)" 즉 "선(善)을 행하는 자"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편 53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기록하신 말씀으로써 시편은 까마득한 30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다시 인용하여 로마서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한 세대(전1:4~11)는 가고 또 다른 한 세대가 오기를 여러번 반복하였지만 사람(인생)의 하는 행동과 말의 됨됨이가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시간(세월)만 흘렀을 뿐, 공간(장소)만 바뀌었을 뿐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이 세상에, 우리 주변에 법 없이도 살 만한 착하고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인" 은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 도 없다고 기록하신 것은 우리 사람의 수명(생명)이 2000년, 3000년도 아닌 200년, 300년도 아닌 고작 100세에 불과하여 그래도 1000년 정도는 살아야 우리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의도나 취지나 목적을 좀 헤아리고 깨달아서 알아 행동하고 말도 할텐데 100년은 뭔가를 좀 알듯 말듯 아리송 상태에서 꾀만 늘고 능구렁이가 다 되어서 죽음(사망)을 맞게 되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반어법으로 하시는 약속(언약)의 말씀으로써 "의(義)와 선(善)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서 돌이켜 고쳐 행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의중이 담긴 말씀이며 또한 돌이켜서 고쳐 행하여야만이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하나님 나라 천국의 참된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하심이 시편을 비롯하여 로마서 3장에서 재차 기록하신 이유이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인" 즉 "선을 행하는 자" 가 어떠한 사람이고 어떻해야 하여야 하는지를 오늘 이 시간 살펴보고자 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기준,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의(義)와 선(善)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義)와 선(善)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고린도전서 13장3~6절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 하시는 것처럼 먼저 "진리(眞理)" 라 하심은 변치 않는, 변함이 없는 세상 이치를 의미하여서 중요한 것은 그러나 그것이 제아무리 "진리(眞理)" 라 할지라도, "진리의 말씀" 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이런(재력,권력,위력..등등)저런(입장,처지,상황..등등)그런(성공,성취,쟁취..등등) 이유와 목적에 의해서 변질이 되게 된다면 그것을 어찌 "진리(眞理)"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몸을 불사를 정도로 남(다른 사람)을 구제하고 도와주고 내어줄줄 안다면 "사랑" 이 없이 가능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본적으로 우리 사람은 자기자신의 어떤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성공,성취) 앞에 있으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고 이로 말미암아 보이는 앞에서와 보이지 않는 뒤에서의 모습(자세,태도)을 얼마든지 동전 뒤짚듯 뒤집을 수 있는 여지(가능성)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충분히 있으므로 마냥 순수하고 순전하고 신실(믿음직스럽고 착실)하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이며 그런즉 이렇한 것을 "사랑" 이라 말하지 않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할 일" 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며 하지만 이조차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사회에서는 높이 평가 받고 있은 "사랑의 일" 이라 생각하지만.....

"사랑" 은 뭐 그리 거창하거나 어렵거나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살면서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어떤 모임(단체,동아리,동호회..등등)에서든, 이웃에서든, 주변에서든... 또 나이가 많건적건, 학력이 높건낮건, 재력이 많건적건, 지위가 높건낮건... 사람 개개인의 마음을 말석(末席,눅14:10)에 두어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예의 있게 서로가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데서 비롯되고 시작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 마음이 상석(上席,잠25:7)에 두고 있음을 인하여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어하는 욕심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고 부단히 애쓰고 노력(훈련,연습)을 해야 하리니 그렇지 않으면 뜻대로 안될 때마다 헤아려 이해하기는 커녕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며 마음에 안들면 존중하기는 커녕 비방(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훼방(상대방이 잘못되기를 바람)하게 되며 못마땅해지면 배려하기는 커녕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게 되며 언짢아지면 양보하기는 커녕 갑질하기 바쁘게 되므로 이러한 죄와 악에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멸망과 파멸과 사망의 재앙에서 구해 주실 귀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인(義人)" 즉 "선(善)을 행하는 자" 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이러저러그러한 이유에 가로 막혀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 앞에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즉 살기 위해서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눅10:25~28)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의무 사항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61장1~3절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자신에게 처한 많은 고생과 어려움과 외로움과 아픔을 비롯한 우울하고 두렵고 무서운 근심걱적염려로 인하여 조급하고 초조하고 조마조마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어서 책 한 두권은 쓸법한 슬픈 사연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의 중심에는 뜻대로 안된다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며 못마땅하다고 함부로하고 갑질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죄와 악의 갇힌데서 벗어나야 하며 비로소 서로가 서로의 상한 마음을 고칠 수 있으며 또한 이래저래 물고 뜯고 치고 박고 때리고 싸우고 피터지는 전쟁의 포로에서 놓여야 비로소 날아다는 새처럼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리니 그러기 위해서는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반드시 겪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 앞서서 몸소 실천하는 본보기를 보이셨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속하여서, 옷 입어서 그 본과 자취를 좇아 따라 지켜 행하는 자들을 찾고자, 얻고자 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이며 마침내 "의인(義人)" 즉 "선(善)을 행하는 자" 가 되어 의의 나무 곧 하나님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들로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장자들(히12:22~24)이 되리니 누가복음 6장43~45절에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먹고 사는 일 즉 재력, 학력, 권력, 지위, 성공... 등등이 인생 최대의 숙제이고 이를 위하여 그것이 제아무리 진리(眞理)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유익(입장,처지,상황)이나 이익(성취,쟁취)이나 기분(성향,가치관,신념)을 위하여 얼마든지 말발(언변)이나 착하고 의롭게 보이는 행실로 변질시킬 수 있고 또 여차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힘(재력,학력,위력,나이 많음,성별의 우월성..등등)에 의지하여 상대방을 호리고 꾀어서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순수하고 순전하고 신실하게 바뀌고 변화되도록, 그 마음을 말석에 두어 낮아지도록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노력을 기울려야 하리니 앞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본보기를 보이심은 "오직 예수" 하듯이 오직 이 길(방법) 외에는 "의인(義人)" 즉 "선(善)을 행하는 자" 가 될 수 없기 때문이며 이 길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의 소망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