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마서 3장21절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에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義)"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율법(律法)" 에 관하여는 여러차례에 걸쳐서 말씀드렸지만... 모세의 때에 애굽의 법 아래에 갇혀서 430년간 종노릇하던 이스라엘(믿는 자의 통칭)이 마침내 애굽을 탈출(출13:9)하게 되었고 그 후 시내 광야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셨던 것이 "율법(律法)" 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의 애굽 탈출의 궁극적인 종착지는 엄연히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안식의 땅 가나안" 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지켜 행할 "하나님 나라 천국법(法)인 율법" 을 40년간 광야에 거할 때에 미리 주셨던 것인 것만큼 반드시 시내 광야를 거쳐가야 하는 과정에서 지켜 행하나, 못지켜 행하나(신8:2~3) 하는 일종의 시험대로써 이는 여기(시내 광야)에서도 못지켜 행하는데 거기(가나안)에 가서 어떻게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는 당연한 논리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6000년이나 지난 오늘날(2024년)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있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온전히 안식할 날(히4:7~11)이 우리에게 남아있으므로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들이 "탈출해야 할 애굽" 은 과연 무엇이며 반드시 거쳐가야 할 "시내 광야" 는 또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제대로 인지하며 자각하고 있어야만이 모세의 때에는 비록 "율법(律法)" 을 지켜 행하지 못함을 인하여 그루터기 씨(사1:8~9)와 같은 고작 여호수아와 몇명만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모두다, 모세조차도(신32:49~52) 광야에서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신31:27~29)으로 없어지고 사라졌지만 이제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사건사고는 말세를 만난 우리 시대의 거울과 경계(고전10:6,11)와 생명의 교훈(롬15:4)이 되었고 이는 똑같은 잘못(실수,오류)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하심이며 그러한 취지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행3:20~22)로 오신 그리스도" 를 통하여 오늘날의 이스라엘인 우리들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제대로 똑바로 믿어 그에게 붙어서, 속하여서, 옷입어서 함께 생명(부활)과 안식(쉼)과 구원(구속)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율법 외에 드러나고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義)" 를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22~24절에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취지나 목적이나 이유는 오직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 믿음의 소망으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고자 하시는 것인데 그러한 성경이 오히려 죄아래에 가두는 꼴이 되었으니... 다시 말해서 세상에 "염불보다 잿밥, 제사보다 젯밥" 하는 말도 있지만 모세의 율법에서 기록하고 있는 제사법(예배드리는 순서,절차,방법..등등)이나 희생 제물의 종류(짐승,곡식,과일,귀금속,헌금..등등)를 통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예법(禮法)과 의식(儀式),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어 나온 장막(교회,성당,예배당,성전..등등)에서의 열심과 충성과 봉사는 잿밥, 젯밥에 불과하며 또한 "하나만 알고 둘(온전,완전)은 모른다." 는 말도 있듯이 이러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하나(초보,일부분)에 불과하지 진짜 율법의 본질이요 핵심은 (십)계명 즉 버리고(절제) 비우고(제어) 죽어야(다스림) 할 5가지 죄악(살인-미움,간음-두 마음,도적질(가스라이팅,거짓말-한 입으로 두 말,탐심-욕심)과 반드시(목숨을 다하여,뜻을 다하여,마음을 다하여) 지켜 행하여야 할 선의(善義) 5가지(하나님섬김,우상배척,거룩,공경,사랑)인데 이 세상에 뜻대로 안된다고 미워하며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며 못마땅하다고 함부로하며 언짢다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또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인하여 상대방을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악독한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니 이러한 죄와 악을 해결하지 못하고서야, 벗어나지 못하고서야 무한반복, 중언부언 올리고 드리는 제사(예배)와 희생 제물(헌금)과 분향(기도)이 어떤 효력(공덕,공력)이 있는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모세의 율법 아래" 에 있는 것이요 하지만 약속하신 자손(갈3:16)인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초보(일부분)에 불과한 모세의 율법을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는 몽학 선생(지도자)들의 인도 아래에 사람들(성도들)을 묶어둘 곳이 필요했고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의 본질이요 핵심인 죄와 악을 이겨내고 벗어나는 길(방법)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 이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와 동일한 마음으로 그 본과 자취(벧전2:21)를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모세의 율법에서 탈출한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에 있게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속한 자, 옷 입은 자가 되리니 그러나 우리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그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여서 대대손손 유전처럼 이러한 망령된 행실(벧전1:18)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고쳐질 수 없는 매마른 광야와 같은 가슴(마음,영혼) 속에서 살고 있음을 인하여 모세의 때의 역사적 사실사건사고가 이제는 거울처럼 보인다면 그 때의 그 세대의 잘못(실수,오류)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아서 이제는 못지켜 행하는 자가 아닌 지켜 행하는 자로서의 궁극적인 종착지인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쉼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3장37~38절에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중요한 것은 "오직 예수" 하듯이 "예수!, 예수!, 예수!" 하는 이름만 외치며 또 그 이름만 믿으면 죄 사함이 될까? 하는 것으로써 이 또한 하나만(초보,일부분)만 알고 둘(온전,완전)은 모르는 처사이니... 다시 말해서 "의(義)" 라고 하는 것이 말만 앞세운다고 하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말로는 누가 못하겠는가? 그 말이 떳떳하고 자신있게 신뢰(믿음)를 얻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부합하는 행동 즉 옳은 행실, 의로운 행실도 반드시 따라야 하리니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얻은 교훈은 죄를 없이(제거)하지 못하고, 악을 없이(버림) 하지 못하고서 모양만 형식만 거룩한 척, 경건한 척, 겸손한 척, 고상한 척하면서 무한 반복, 중언부언 죄 사함의 용서를 구하는 제사(예배)와 희생 제물(헌금)과 분향(기도)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생명,안식,구원)에 들어가지 못하였던 것처럼 본질과 핵심은 죄와 악의 족쇄에서 어떡하든지 벗어나야 하고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탈출했다면 이제는 선(善)과 의(義) 곧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눅10:25~28)으로 행하게 될 때에 그 자체가 살아있는 제사요 희생 제물이요 분향이 되는 것이며 모세의 율법에서 온전하고 완전하게 탈출하여 궁극적인 종착지였던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한 의(義)를 몸소 실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