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마서 3장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에서 "하나님의 영광"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영광(英光)" 이라 하심은 아름답고 빛날만한 가치와 명예를 의미하여서 하나님께 있어서 아름답고 빛나는 가치의 영광은 창세기 21장32절에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밑도 끝도 없는, 시작도 마지막도 없는 시간 속에 존재하고 계시며 우리는 이를 "영원무궁한 생명, 무한한 생명 곧 영생(永生)" 이며 이것이 "하나님" 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영광이으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을 지나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고 가나안 남쪽 지방인 브엘세바(현재는 베르세바)에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자손(이삭,야곱) 곧 삼대가 살게 되었으니 굳이 모든 것이 익숙한 고향 갈대아를 떠나서 실향민이 되어 낯설고 얼굴선 가나안에 와서 정착하게 된 이유는 오직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 영생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서 행하였던 행동이며 여기에서 에셀나무(썩지 않고 장수하는 나무)를 심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저 "하나님!, 하나님!", "주여!, 주여!" 하면서 진짜 이름만을 외치고 부르짖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이름 속에 담긴 사상과 이념을 좇아서 행하였다는 것을 뜻하며 그 이름 속에 담긴 사상과 이념은 오직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무한한 생명의 가치 즉 "영생" 으로써 그 생명으로 걸어 나가기 위한 실질적이고 본질적이며 현실적인 행실을 아브라함은 행동에 옮겼다는 것을 의미하니..... 중요한 것은 아담의 때에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영원무궁한, 무한한 생명의 가치의 영광을 얻게하기 위하여 명령하신 것이 있었으니 동산에 있던 모든 나무들과 함께 있었던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게하신 것" 이 바로 그것이며 하지만 아담은 욕심에 눈 먼 소경이 되어 그 좋은 것을 알지(깨닫지) 못하여 버려두고 그 옆에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으니 나무는 "사람(예레미야 5장14절)" 이요 나무의 열매는 나무가 사람이니까 열매는 "그 사람의 사상과 이념" 을 의미하며 따 먹었다는 것은 그 사상과 이념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하여서 우리 사람은 어떠한 사상과 이념을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어떻게 마음에 정립시키며 확립시키느냐에 따라서 행동(삶)의 방향도 천차만별로 당연히 달라질 것이며 그런즉 그 사상과 이념이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에 관한 것이라면 그 받을 영광 역시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무한한 차원의 하나님의 생명" 이 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밑도 끝도 없는, 시작도 마지막도 없는 생명으로 걸어 나아가게 하는 실질적, 본질적, 현실적인 행실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실천에 옮겨야 되며 이는 노아의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좇아 방주로, 모세의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 가나안으로 여정을 떠난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써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와 생명의 교훈들이 되어서 과연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생명나무의 열매는 무엇이고 우리가 찾아야 할 방주는 또 어떤 것이며 우리가 들어가야 할 가나안은 무엇인지에 관한 모티브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8장18~21절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산전수전공중전" 하는 것처럼 책 한 두권은 쓸 법한 고생된 사연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또 영화와 같은 드라마틱한 굴곡진 인생의 터널을 지나가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러한 의미의 "현재의 고난" 을 말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죄 있는 우리 사람과 동일한 모양(롬8:3), 죄의 종의 형체(빌2:7~8)를 입고서 태어났지만 우리 사람과 달랐던 것은 거기에 종과 노예가 되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하며 또 언짢아지면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죄대로 악대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버리고(절제)고 비우고(제어) 죽이는(다스림) 수고와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셨으며 이로써 마침내 다시 사는 부활 곧 영원무궁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며 우리 또한 믿는다면, 사랑한다면 그 본과 자취(벧전2:21)와 흔적(갈6:17)을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할 줄 아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게 되는, 속하게 되는, 옷입게 되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현재의 고난" 이며 이는 만물의 영장(靈長)인 사람(인간,인류)을 인하여 비록 말은 못하지만 본의아니게 썩어짐에 종노릇 하고 있는 피조물(동물,식물,자연..등등) 또한 해방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또 사망에 종노릇하고는 있지만 (영원한)생명을 갈망하고 있는 모두가 함께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에서 벗어나 자유하여 하나님의 영광 곧 영원무궁하고 무한한 시간 곧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아름답고 빛나는 가치의 영광인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죄와 악(사59:1~2)" 이기 때문에 죄와 악을 이겨내고 뛰어넘어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며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실질적이고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과 방법대로 행할 수 있게,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24~25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하시면서 43절에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한 알의 밀" 이라 함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누가복음 8장11절)" 를 의미하며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씨앗, 밀알이라 할지라도 땅(흙,밭)이 좋지 않으면 절대로 싹이 날 수 없으며 싹을 못 튀우니 나물이나 나무로 자랄 수 없고 나무로 자라지 못하니 당연히 좋은 열매(결과물)도 맺지 못하리니... 다시 말해서 세상이 야박하고 척박하다고 하여 똑같이 모질고 야멸차져서 꼬이고 부정적이 사나운 심성에서 비롯된 가시 돋힌 말과 행동으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짓밟아버리는 갑질을 하면서 산다면 거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엉겅퀴(히6:7~8)나 또는 세상 근심걱정염려로 인한 조급함, 초조함 뿐이므로 전제조건은 착하고 좋은 마음(눅8:15)이어야 하며 또한 생명이 다 생명이 아니라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을 알고 있는 시한부 생명(100세), 하루살이 같은 생명, 질병(염증,암,바이러스..등등)이나 사고(붕괴사고,교통사고,전쟁사고..등등)나 자연 재해(홍수,쓰나미,지진,혹한,폭염..등등)를 인하여 갑자기 개죽음을 당하는 파리목숨 같은 생명을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최소한 1000년(계20:6) 이상은 살수 있어야, 살아 있어야 신령(神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생명이라 말할 수 있으리니.....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과연 지금까지 어떠한 생명을 위하여 이 세상을 살아왔는가? 하는 것으써 죽기를 무서워는 하지만 진짜 살기를 원하며 바란다면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생명의 몸짓(행동,행실) 즉 죄와 악에서 떠나야 하며 또한 떠나고 벗어났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의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질적, 본질적, 현실적인 생명의 몸짓 즉 선(善)과 의(義)대로 행하여야 하리니 그것은 오직 서로가 서로를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섬기며 배려하여 양보하는 "사랑(고전13:4~7)" 에 있으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 바로 율법의 계명(출20장,신5장)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사상과 이념이며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고와 노력 곧 "고난" 이 따르기 때문에 쉽고 편한 길 즉 갖고 있는 재력이나 학력이나 위력이나 나이 많음이나 성별의 우월성에 의지하여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면서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면서 함부로하며 못마땅하면 갑질하면서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대로 행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죄악의 사상(사59:7)이며 이것이 흔하디 흔한 사람의 영광으로써 이제는 말만 뻔지르르 늘어놓거나 앞세울 것이 아니라 믿는다면, 사랑한다면 행동으로 보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는 세상 끝(롬9:28), 마지막 때이며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으며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하는 진정한 해답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