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가복음 4장2절에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 13절에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찐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 에서 "비유(比喩)"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비유(比喩)" 라 하심은 직구(直球)를 날리는 것 즉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사물(물건,물질..등등)이나 만물(동물,식물,자연 이치..등등)에 빗대어서 에둘러 표현하여 말하는 것을 의미하여서 이렇듯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하심과 계획하신 약속(언약)의 말씀들을 가르치실 때에 "비유(比喩)" 로 하신 까닭은... 첫 번째로 마태복음 13장34~35절에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선지자의 말씀 곧 시편78편2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감취어져 있던 뜻하심과 계획하신 것들을 하나님께서 "비유(比喩)" 로 드러내며 나타내라고 하셨기 때문에 "비유(比喩)" 로 알리고 전하며 가르치는 것이라고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 내용으로써 중요한 것은 그 시대 그 세대 그 당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인 이스라엘(성도들)에게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는 지도자 즉 율법사, 대제사장, 바리새인(율법학자), 사두개인, 서기관... 등등등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그러나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지도자는 오직 "비유(比喩)로 알리고 전하며 가르칠 줄 아는 목자" 였으며 또 그 일을 이루어 주는 자가 그 시대에 요구하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좋은 곧 선한 목자(요10:11~15)가 되는 것이며 그런즉 그 일을 예수께서 이루어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행2:36)가 되시는 것이니 하지만 때와 시기(눅12:54~57)를 분변하지 못하고 또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지도자들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까 결국 소와 양(희생 제물,헌금)과 비둘기(성령)를 갖고 양심을 팔아서 자기 배(유익,이익,성공..등등)만 불리는 장사꾼(요2:14~16)으로, 또는 사람들(성도들)의 마음을 호리고 꾀어(도적질) 부추겨서 재물(재력,위력,권위..등등)만 쌓은 절도강도(요10:1)로 전락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러나 또한 요한복음 16장25절에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하시는 것처럼 언제까지나 "비유(比喩), 비사(比辭)" 로만 말할 수 없고 설교할 수 없고 강연할 수는 노릇이기 때문에 때가 되면 빗대어 비유하여 에둘러서 하신 말씀 곧 비사(比辭)들을, "비유(比喩)" 라고 하는 하나(초보,부분)만 알고 둘(온전,완전)은 몰랐던 것들을 이제는 풀어서 밝히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직구로, 직설화법으로 알리고 전하며 가르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또한 그것이 그 때 그 시대 그 당대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요구하시는 좋은 곧 선한 목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눈이 없어지고 깨닫는 마음이 없어진 오늘날의 이스라엘(믿는 자들을 일컫는 통칭)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성도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목사,전도사,선교사,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들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되니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며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니까 결국 그동안 해 오던대로 전하고 알리며 가르치고 있는 일이 사명이요 소명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성도들)의 발목을 잡는 장사꾼이 되 그리스도의 발꿈치(요13:18)를 드는(배반하는) 절도강도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안타까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두 번째로 마태복음 13장13~15절에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집(건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 집 마련" 은 모든 사람들의 평생 꿈인 것처럼 사람의 영혼(심령,마음)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몸,신체)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하나님 역시 영(성령)이시므로 우리 사람을 집으로 거처(요14:23)를 삼아 함께 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궁극적인 최종의 끝(롬9:28)이기 때문에 사람의 그 심령(슥12:1)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으로 행하기에 솔직하고 깨끗 즉 정직(전7:29)하게 지으셨지만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그러한 마음과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상전 같이, 벼슬 같이 높아지고자 하는 한 가닥 욕심을 인하여, 또 그 한 가닥 욕심은 사람으로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의 완악하고 악독한 한 성깔을 만들었으며 하지만 한 가닥의 욕심과 한 가락하는 한 성깔은 진짜 보석과 같은 사랑(너그러움,온유함,용납,착함..등등)을 보는 눈을 가려서 못 보게 만들었고 진짜 진주와 같은 교훈(조언,충고,책망..등등)을 듣는 귀가 없어서 못 듣게 만들었으며 하지만 어떤 부모(아버지 하나님)가 자식(자녀)이 잘못되기를 바래서 궁지로 몰며 낭떠러지로 이끌까?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기분 나쁘지 않게 직구가 아닌 빗대어 비유하여 에둘러서 표현하여 말씀하셨는데도 깨닫지 못하게 되니 더욱더 완고(옹고집,똥고집)해지고 완악(사나움)해지며 악독해지는 악순환만 있게 되고 이를 인하여 사람 스스로가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의 소용돌이를 자초하였으니 어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으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집(거처)으로 삼을 수 있으며 또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어찌 옷처럼 덧입을 수(고후5:1~5) 있을까? 하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8장8~9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 15절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8:11)이요 말씀이 떨어지는 땅(흙,밭)은 사람의 마음으로써 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극상품 씨라고 할지라도 그 마음밭이 딱딱(모질고 야멸참)하다면 씨알도 안먹히니(안들어가니) 나물로 나무로 자랄 수 없을뿐더러 열매(추수)도 맺을 수 없게 되며 또 그 흙이 돌이나 자갈(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신의)과 같다면 고비때마다 있게 될 시험(욕심,성공,한 방..등등)에 가로막혀서 쉽게 저버리게 되며 또한 어째어째 씨가 떨어져 나물이 되고 나무가 되었어도 자라고 보니 가시밭이었다면 살면서 닥쳐오는 시련(슬픔,아픔,두려움,외로움..등등)이나 염려(근심,초조,조급,우울..등등)로 인하여 이 역시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며 다만 순화하고 승화시키려고 노력하여서 착하고 좋은(너그럽고 따뜻함) 마음으로 바뀌고 변화된 좋은 땅이 된다면 당연히 씨알 굵은 열매로 자라서 추수 때(마지막 때)에 결실 곧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가게 되리니 이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이 비유조차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알지(깨닫지) 못한다면 다른 그 어떤 비유로 된 말씀들을 이해하며 이해하여 실행으로, 실천으로 옮길까? 하는 것으로써 결국 한 가닥 욕심과 한 가락 성깔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을 겪어야만이 좋은 땅이 될 수 있고 보는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도 생길 수 있으며 이로써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서 일깨우고 돌이켜 고쳐 행하게 되어 그 일련의 선순환된 모든 선한 양심(벧전3:21)들이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찾아가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