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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다...(예레미야 29장7절)

교훈 안에 2024. 9. 21. 06:50

오늘은 예레미야 29장7절에 "내가 너희를 쫓아 보낸 그 성에 평안이 임하도록 기도하고 너희가 살고 있는 성을 위해 여호와께 기도하여라. 그 성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다." 에서 "평안(平安)"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기도"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주문을 외우듯이 중언부언, 무한반복 읊으며 또 누구나 다 들리도록 큰소리 내어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간절함에서 나와서 그대로 행하려는 몸부림의 행실이 진정한 기도이니... "평안(平安)" 이라 하심은 아무런 걱정걱정염려불안함이 없이, 조급초조조바심이 없이, 불평짜증스트레스가 없이 그저 잔잔하기만한 호수처럼 평온하고 편안한 상태를 의미하고 동일한 맥락에 "화평, 평강, 화목... 등등등" 도 있으며 그러나 우리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정이 되었건, 직장이 되었건, 학교가 되었건, 어떤 모임(단체,동아리,동호회..등등)이 되었건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어디가 되었건 이러한 속 시끄러운, 머리 아픈, 우울한 일이 어찌 없을 수 있을까?, 어찌 마냥 평안할 수만 있을까? 이것이 우리 사람 개개인에게 매일매일 항상 있는 환난이며 그 환난이 모이고 모이게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립, 갈등, 분란, 분쟁, 보복, 복수로 연결되게 되며 또 이것이 나라와 나라 관계의 문제라면 테러, 전쟁이 되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듯이 "평안이 임하도록 기도하고 또 그리해야 평안할 것이다." 라고 기록하시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 66권 중 다른 곳 어딘가에서 "평안할 수 있는 방법이나 메뉴얼" 역시 기록해 놓으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또 마태복음 5장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시면서 16절에 "이같이 사람 앞에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 머물고 있는 곳에서 두루두루 화목하고 화평하게 하기 위해서는, 걱정조급불평이 없게 되기 위해서는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곤란하게 하고 어렵게 만들며 힘들게 하는 이러한 거치는 것들(고전8:9), 넘어지게 하는 것들(시62:3), 실족하게 하는 것들(눅17:1~2)을 두지 않도록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최선이요 최상이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는 교훈의 말도 있듯이 어느 한 쪽이라도, 하나님을 믿는다면 애써야 하리니 이러한 수고조차도 하지 않으면서 절대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전하심(마5:48)과 같이 우리 사람도 온전하고 완전해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의무사항이며 하지만 또 나 자신의 주변을 평안하게 하기 위하여, 화목화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때로는 상대방을 하염없이 이해도 해줘야 하고 존중도 해주어야 하며 배려양보도 해야 하며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 한없이 약하게,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뭘 몰라서 당하는 바보스러움이 아니라 알면서도 평안을 위해, 화목화평을 위해서 당해주고 넘어가주는 참된 선행(벧전3:16)이며 이것이 제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리는, 전하는, 전파하는, 전도하는, 영광을 돌리는 참된 모습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런데 누가복음 12장51~53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이것이 어찌 가정에서만의 문제일까? 직장에서, 학교에서, 어떤 모임에서도 다 마찬가지이며 그리고 사람이 그 마음 속에 온전히 평화롭고 평안하고 평온하며 화평한지를 무엇으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고행, 수행, 명상을 한답시고 속세(세상)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는 곳에 있으면서 사람들과 부딪혀 보지 않는다면, 속 시끄러운 일들을 겪어보지 않는다면, 머리 깨지는 일들을 당해보지 않는다면 그 마음 속에 악독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지, 평안함이 들어있는지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게 되며 그래서 이러한 고행, 수행, 명상 방법은 그 순간만큼은 잔잔한 호수 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임시방편은 될지언정 이 지구 밖을 떠나지 않는 이상 항상 불완전한, 미완성된 모습으로 남아서 이랬다저랬다, 오락가락, 왔다갔다 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며 다 떠나 있는 것은 그저 이보다 더 큰 신선놀음이 없는 것이며 이보다 더 큰 특혜는 없는 것이니 부딪혀 보면서 싸워 이겨내야 진정한 내 것의 화평이 되는 것이고 겪어보면서 다스릴 줄 알아야 참된 평강이 되는 것이며 당해보면서 인내할 줄 알아야 온전한 내 것의 평안이 되리니 요한복음 16장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회당이나, 성전이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고 이르신 말씀은 오직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에 관한 것들이며 또한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고 이르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보이심으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된 모양,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죄의 종의 형체들을 버리고 비우고 죽으심의 본보기를 앞서서 행하심으로 비로소 마침내 벗어나고 이겨내신 후에 있을 화평과 평온과 평강과 평안을 드러내고 나타내 보이셨으니 이기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경주(달리기,마라톤..등등)나 시험(모의,중간,수능..등등)이나 경연(수학,영어,과학..등등) 이 아니라 우리 사람으로 평안하지 못하도록 만들며 또 항상 걱정, 조급, 불평이 있게 하는 죄되고 악한 것들로부터의 싸움(엡6:12)에서 이기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싸워 이기셨는데 우리라고 왜 못할까? 하는 것으로써 당당하게, 자신있게, 담담하게 싸울 수 있는, 이길 수 있는 이유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3장9~11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하시는 것처럼 어린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서로 놀다가 놀림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기분 나쁜 일을 겪거나 때로는 얻어터지더라도 상대방이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다 잊어버리고서 용서하고 용납을 해주지만 어른이 되면 앙심을 품게 되고 뒤끝이 있게 되며 비겁비열하게 되어 앙갚음을, 보복복수를 생각(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하니 누가 더 어른스럽다고 해야 할까? 하는 것으로써 몰라서 당하기만 하는 어리석고 바보스러움이 아니라 알면서 당해주는 지혜로운 어린 아이(막10:15,고전14:20)와 같이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 천국의 유업(생명,안식,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며 앞으로 있을 좋은 날 곧 평화롭고 평강하고 평온하며 평안한 날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리니 근심걱정염려불안으로, 조급초조조바심으로, 불평짜증스트레스가 있는 하루하루의 삶은 지옥같기 때문이며 그런 지옥 같은 생활에서는 단 하루도 있기 싫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피해서 떠나서 있는 것은 이러한 불안두려움우울함을 끌어안고 떠안고 사는 것 뿐이므로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부딪혀봐서, 겪어봐서, 당해봐서 싸워 이겨야 할, 이겨내야 할 피할 수 없는 관문이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겪으시고 당하시고 부딪힌 것에 비하면 무거운 것이 아닌(요일5:3) 가벼운 수고이며 넘어서면 이제는 어떠한 것에 흔들리지 않는, 넘어지지 않는,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요 성(마7:24~25)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