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가복음 8장35~36절에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 "목숨"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목숨" 이라 함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동물,식물,곤충,박테리아..등등)로 하여금 살아 숨 쉬게 하는 힘을 의미하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 "목숨" 이 붙어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힘은 가장 먼저 "먹는 것(음식)" 이 되고 그 다음이 "번식(번성)" 이며 거기에 특별히 우리 사람(인간,현인류)은 얼마나 더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으며 열심히 일하고 일 한만큼 얼마나 더 즐기며 노는가? 하는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집,자가,빌딩..등등)과 무엇보다 먼 거기를 자유자재로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차(대중 교통,항공,항만,자차..등등)와 또 살아오면서 환경적, 시대적인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어떤 신념, 신의, 철학, 가치관... 등등등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것이 누가 되었건, 어디가 되었건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끊임없는 욕심(욕망,야망) 즉 나름의 쟁취욕(재력,학력,권력,위력,성공..등등)을 통한 스팩과 명예와 체면과 자존심이 빠지면 시체이고 또한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전쟁 같은 경쟁, 밥그릇 싸움을 해야 하며 또 그러한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서 때로는 줄 세우면 줄도 서야 하고 또 때로는 서로가 눈도 감아주고 뒤도 봐 줘야 하며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므로 행여나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게 되면 상대방을 짓밟고서라도, 사기공갈협조작을 통한 남의 등쳐먹고서라도,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악을 행하고서라도 이루려고 하는 비정상적이고 잘못된 방법까지 동원하게 되니 이것이 현인류에게서 없어서는 안될 "목숨" 과 같은 것이며 이를 위해서 또 목숨을 걸고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러한 것들이 살아가면서 하나 하나 갖추어지면 정말 온 천하를 얻은 것과 같은, 세상이 내 것인 것 마냥 행복해지게 되고 낙(樂)으로 여기니.....
그러나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기대하시고 요구하시는 "목숨" 이라 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소망인 "생명(고전15:13~15)과 안식(히4:8~11)과 구원(벧전1:9~11)" 에 있으며 이러한 "목숨" 얻기 위하여 그 무엇보다 경쟁하듯 열심으로 노력하고 애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며 그래서 이 "목숨" 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온전한 방법 기준과 메뉴얼을 6000년이라고 하는 세월(시간)과 이스라엘(장소)이라고 하는 사람(인물)과 또 이러저러한 에피소드(사실사건사고)에 빗대어 비유하여 말씀 속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며 이로써 이러한 "목숨" 을 얻지 못하고 잃고서 온 천하(집,차,명예,체면,자존심,쟁취욕,성취..등등) 얻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는 것이니 누가복음 12장22~29절에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말씀은 마태복음 6장25~34절에서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으니 시간이 되시면 다 읽어보시면 좋으시리라... 우리 사람이 사지(신체,몸)가 멀쩡하면 어디에 가서 밥 빌어 먹지 못할까? 또 건강(정신적,육체적)에 관한 확실한 개념(운동,규칙적이고 올바른 식사 습관,충분한 수면,긍정적 마인드..등등)만 있다면 어디에 내놓은들 자기 앞가림은 못할까? 하지만 우리 사람은 이런 것만으로는 뒤쳐지는 것 같아서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더 많이 얻기 위해, 더 잘 되기 위해 할 수만 있다면 오용하고 남용하며 편법과 탈법과 위법을 써서라도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대담함으로 열심과 충성으로 노력하고 애쓰고 수고하고 있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도서 12장 전장을 할애하여 솔로몬을 통한 사람의 완벽한 모든 부귀영화(전2:4~10)를 누리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무엇가를 갈망하는 끝이 없는 갈증 속에서 그 헛되고 헛됨(전9:11~12)에 관하여 기록하시면서 아무런 수고와 노력도 하지 않는데도 아름답고 고귀하게 자라나는 백합화와 비교하여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하지만 그러한 백합화보다도 못한 솔로몬 곧 사람의 모습을 알리고자 하시는 것이며 또한 이제는 체워도 채워지지 않는, 부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족함이 없이 항상 다고 다고 하는 거머리(잠30:15~16)와 같은 "목숨" 에서 벗어나기를 전하고자 하시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 바꾸어 말하자면 그 바로 앞 구절 34절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우리 사람은 집(자가)이 되었건 차(자차)가 되었건, 어떤 신념(신의,철학)이 되었건 쟁취욕(재력,학력,위력..등등)이 되었건 어떤 스팩이나 자존심이 되었건 저마다 "취향 저격" 하듯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나름의 꽂혀서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과 목숨처럼 느끼는 포인트가 다 다르며 하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어 좇아서 행하려 한다면 가장 우선시 해야 할 "목숨" 은 단연 "생명과 안식과 구원" 이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목숨처럼 여기는 세상의 낙(樂)들을 버리고 비우고 죽일 준비와 각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하리니 왜냐하면 채워지지 않는, 끝이 없는, 만족함이 없는 세상의 낙(樂)은 식은 죽 먹기처럼 아주 쉬운 것이 아니라 이를 쟁취하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치고 박고 물고 뜯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과 같은 죄와 악을 행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며 또한 그러한 죄와 악이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벽)을 쌓아 갈라지게 만들고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으로써 그런즉 요한일서 3장11~16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비록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 하며 언짢아지면 갑질하는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 있는 모양(롬8:3), 죄의 종이 형체(빌2:7~9)를 입고 나셨으며 죄악의 모양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이러저러한 욕심(약1:15) 역시 목숨처럼 여겼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나 이러한 목숨들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즉 그러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시며 고난을 겪으신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소망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침밷고 때리고 업신여기며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똑같이 되어서 죄대로 악대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 곧 선(善)대로, 의(義)대로 행하였으니 그리스도께서 이를 앞서서 실천하는 본보기를 보이심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가인(아담의 아들) 같이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 쟁취하고 성취하기 위하여 본의 아니게 버리지(절제) 못하고 비우지(제어) 못하고 다스리지(죽임) 못하여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세상의 목숨들을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어서 이제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목숨을 얻게 하려 하심이요 이 최고한 계명을 알려주고 전하여주고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6000년 동안 "이스라엘" 이라고 하는 무대와 "유대인들" 이라고 하는 셀 수 없는 출연자와 수많은 에피소드(역사적인 사실사건사고)를 말씀 속에서 기록해 주신 것이며 결국 유대인들이라고 별 수 없고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목숨을 걸고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수치와 부끄러움의 대명사가 될 뿐 죄와 악을 목숨처럼 여기지 않는다면 반드시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