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마서 4장18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며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에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믿음"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6000년 전 창세기(17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을 사도 바울이 다시 소환하고 재조명하여 로마서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유와 목적은 끝나버린 역사적인 어떤 사실사건사고를 전하고자 하는 역사책이 아니기 때문이며 다만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한 아브라함이 당하였던 일들에 빗대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에 우리들의 믿음의 어떠해야 함을 에둘러서 표현하여 기록하신 말씀이므로 절대로 아브라함에게 국한된 말씀이 아니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믿음" 이라 하심은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바로 앞 구절 17절에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 이심을 이미 6000전에 믿은 것이니 다시 말해서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부활" 은 죽은 자를 다시 살렸으니 또다시 죽는 일 즉 둘째 사망(계20:6)이 없이 하나님과 아들인 그리스도를 방불케(히7:3)하는 쭈욱 영원무궁한, 무한한 생명 가운데 있게 된다는 의미이며 이를 고린도전서 15장(23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다." 라 하심은 우리 사람이 제아무리 날고 기고 뛰어도 얻을 수 없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온전한 천국(하나님 나라)" 으로써 왜냐하면 천국에는 멸망하고 파멸하며 썩고 죽는 사망하는 일(고전15:50)이 없기 때문이며 그런데 썩고 죽는 "사망" 이 활시위를 당기고 정조준(고전15:55~56)하여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람의 "죄와 악" 이고 이 죄와 악을 인하여 우리 사람의 모든 파란만장한 질풍노도 즉 질병(염증,암,바이러스..등등) 사고(교통사고,붕괴사고,전쟁사고,사기공갈협박조작사고,살인사고..등등) 재해(인재,지진,홍수,폭염,혹한..등등)가 시작되므로 우선은 서로 치고(미워함) 박고(분노함) 물고(비방) 헐뜯고(함부로함) 짓밟아 버리고 피(갑질) 터지는 전쟁의 죄악을 이겨내고 벗어나야 하며 죄와 악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더 이상 미워할 일이 없으니 평안할 것이요 분노할 일이 없으니 화목할 것이요 비방할 일이 없으니 화기애애할 것이요 함부로하는 일이 없으니 기쁘고 즐거울 것이요 짓밟을 일이 없으니 감사할 것이요 갑질하는 일이 없으니 행복할 것이니 이것이 새롭게 거듭나는 것(요3:3~5)이요 비로소 온전한 천국이 보이게 되리니 하지만 현실은 각종 근심걱정염려에, 불안초조조급함에, 우울두려움스트레스 곧 지옥 같은 속에서 잠깐잠깐 찾아오는 평안화목화평을 누리고 있고 간간히 얻어지는 기쁨즐거움감사행복을 마주하고서야 "온전한 천국" 이라 말할 수 없으니 여기(땅,세상)에서도 얻지 못하는 천국을 거기(하늘,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결단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에만, 혀로만, 입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후손 즉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에 관하여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루신 말씀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창세기 21장~22장이며 중요한 것은 갈라디아서 3장16절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그러하여 당하였던 역사적인 사실사건사고만을 알리고자 하심도 아니요 또 이를 전하고 가르치고자 하심도 아니라 그렇다면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약속,언약)서가 아닌 여느 역사책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니 "이삭" 에 빗대어 비유(호12:10)하여 참 형상(실물,실체)인 "그리스도" 를 말하고자 하심이며 그런즉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희생 번제물로 바치려 칼로 잡아 죽이려고 할 그 찰나의 때(창22:5~18)에 멈추어 세우신 것이며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부활" 은 육신(몸,신체)을 죽이거나 죽는 것이 아닌 참 형상(실물,실체)인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마음 속에 숨기며 감추고 있던 "죄와 악" 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고 죽는 일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6~11)" 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심으로써 드러내고 나타내며 이루셨고 온전하고 완전하게 이루시고 끝(롬9:28)내시기 위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 24장21~22절에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신 후에야 부활(고전15:17~20)에 참여하셨고 하나님 우편에서 쉼 곧 안식(히4:8~11)을 얻으셨으며 구원의 근원(히5:7~9)이 되셨으며 그러한 그리스도와 동일한 많은 아들(히2:1)을 얻고자, 찾고자 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이니 하지만 반드시 환난 후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기 때문에 노아의 때에 환난이었던 홍수 후에 죄악으로 말미암아 홍수로 다 죽어버리고 겨우 구원을 얻은 노아와 몇 명(벧전3:20~21), 모세의 때에 환난이었던 430년간 종노릇 하던 애굽에서 탈출하여 시내 광야를 지나 안식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470년이 걸렸으니 100세 수명으로 따져도 몇 번을 나고 죽고, 나고 죽고하면서 실상 우리 자신이 그 시대에 있었다면 생명과 안식과 구원은 물 건너 갔으며 실질적으로 모세조차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범죄함을 인하여 다 광야에서 죽고 구원을 얻은 여호수아와 몇 명,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유다)에 닥친 환난은 이스라엘의 악독함을 인하여 이방(바벨론) 족속에게 70년 동안(렘25:11) 포로로 잡히고 식민지가 되어 노예 생활을 하였으니 그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퍽퍽하며 자기 자신은 돌볼 겨를 없이 노쇠하고 쇠약해져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세월)이며 결국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또 살아가는 모든 일이 죄와 악의 피로 물든 전쟁 같은 것이 다 환난이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니 이런 환난이 없는 것이며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으며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우리 사람의 죄와 악이 있었으니..... 다시 말해서 우리 사람의 이 육신(몸,신체)은 영혼(심령,마음)을 보호하고 지키는 집(고전3:16)과 같고 영혼(심령,마음)이 시키고 명령하는대로 움직이는 출력체(로보트,컴퓨터,프린터..등등)와 같아서 그러니 범죄하고 악독을 행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육신(몸,신체)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혼" 에 있기 때문에 사람의 범죄함을 인하여, 악독을 행함을 인하여 죽게 되는 것은 "영혼(겔18:20)" 이 되는 것이며 그러한 영혼이 죽으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고 자동적으로 영혼이 살고 있던 그 집(육신,몸,신체) 역시 폐가(썩고 죽음)가 되는 것은 상식이요 이치이므로 영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보존하고 건강 관리하고 지켜야 할 것은 사람의 육신(몸,신체)이 있어야 그 영혼(심령,마음)도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신 하나님과 거처(요14:23)를 함께(임마누엘) 할 수 있으며 그런즉 우리 사람의 몸과 영혼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고후5:1~5)가 되며 비로소 온전한 하나님 나라, 천국이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7장21~24절에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사실 우리 사람 즉 현인류(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출현한 이래로 치고 박고 물고 헐뜯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기 자신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성공,성취,쟁취)과 욕심(식욕,성욕,물욕,과시욕..등등)을 인하여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존중하거나 배려하거나 양보하지 못하고 다만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함부로하며 못마땅하면 짓밟아버리고 갑질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이중다중인격으로 돌변하였던 사람의 마음(영혼,심령)의 짐승 같은 아니 괴물 같은 민낯이 있었고 심하면 살인까지도 행하게 되니 아직도 지금도 여전히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마음에서 죄와 악을 원천봉쇄하지 않는 이상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열 번 되고 열 번이 백 번, 천 번, 만 번 무뎌지고 둔해지고 무감각해져서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악(롬1:29~31)임에도 가책없이, 거침없이 사소하게 여기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실상은 절대로 하나님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바랄 수 없는 것이며 그러나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있는 믿음" 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자들을 빙자비유하여 수많은 에피소드(사실사건사고)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참 형상이 바로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노력과 수고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며 이제는 이를 누군가는 제대로 똑바로 확실하게 알리고 전하고 가르쳐야 할 시와 날과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