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레미야 31장38~40절에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을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모퉁이 문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것이라. 측량줄이 곧게 가렙 산에 이르고 고아 방면으로 돌아 기드론 시내에 이르리니 다 여호와의 성지가 되고 영영히 다시는 뽑히거나 전복되지 아니하리라." 에서 "측량줄"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등장하고 있는 지명 곧 하나넬, 가렙 산, 고아, 기드론... 등등등은 그 앞 구절(31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모두 이스라엘 집과 유다(예루살렘성) 집에 있는 곳이며 이곳이 하나님의 성지가 되어 영영히 다시 뽑히거나 전복되지 않을 것에 관하여 미리 말씀하신 약속(예언,언약)의 말씀으로써 하지만 누가복음 21장5~6절에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예레미야의 이 약속의 말씀이 있은 그로부터 약 600년 정도가 흐른 후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과 그 뜻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실 때에는 오히려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무너질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실질적으로 2000년이나 흐른 오늘날까지 담장 한 벽(통곡의 벽)만 남아있고 다 무너져 있으니... 이는 결론적으로 그 곳이 그 곳이 아니라는 것이며 또 그것이 그게 아니라 그 이면(다른 면, 뒷 면)에 속 뜻,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다면 "측량줄" 역시 건물(집,성전,빌딩)을 지을 때 사용하는 그 "측량줄" 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잡아내셔야 하리니 이유나 목적이나 취지야 어떻든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집,성전)은 소모품으로써 오래써서 때가 되면 무너뜨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로 "영영히 다시는 뽑히지 않거나 전복되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말씀과 부합하지도, 성립이 되지도 않으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의 성지(성전)" 가 정확하고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과연 무엇인지를 똑바로 알아야 그래야 "측량줄" 도 설명이 되기 때문에 사도행전 7장48~50절에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하시는 것처럼 이 말씀은 구약의 이사야 66장1~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신약의 사도행전에서 또 다시 하시는 말씀으로써 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약속은 동일(벧후3:7)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심과 동시에 사람이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말씀이므로 여러 번 반복하여 다시 말씀(욥33:14~17)하시는 것이니...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교회,성당,성전,예배당,사원..등등)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은 하늘을 보좌(의자)로 삼아 땅에 발을 디디고 계실 정도로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같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교회,성전) 뿐만 아니라 없는 곳이 없으시고 안계시는 곳이 없으시기 때문에 이제는 굳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교회(성당,예배당,성전,사원..등등)만을 고집하는 것은 이제 맞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집 곧 우리 사람을 집으로, 성전(고전3:16)으로 삼아서 함께 하고자 하시는 것이므로 영원무궁한, 무한한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거처(요14:23)로 삼는다면, 우리 사람이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옷처럼 덧입게(고후5:1~5) 된다면 비로소 영영히 다시는 뽑히지 않고 전복되지 않는 하나님의 성지(성전)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측량줄" 이라 하심은 건물을 지을 때에 정확한 규격으로 짓기 위한 도구로써 오늘날의 "줄자" 와 같은 개념으로 이 외에도 어떤 것을 이리 재어 보고 저리 재어 볼 수 있는 도구로는 "다림줄(수직의 정확도를 알기 위해 추를 달아 늘어뜨린 줄)" 이 있으며 삼을 꼬아 만든 "삼줄" 이 있고 "저울 추", "측량하는 장대" 등이 있으니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러한 "측량줄" 과 같은 도구들에 관하여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늘의 모형대로 지으라고 명하신 장막(회막,성막-행7:44), 솔로몬의 때에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늘을 본 떠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에 사용을 했기 때문이며 그 장막이나 성전이 오늘날의 교회(성당,사원)이며 하지만 앞에 서론에서 살펴본 바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장막이나 성전이나 교회(성당,사원)를 말하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러한 것은 모두 이상(異狀) 곧 그러한 것에 빗대어 비유(어떤 사물에 빗대어 참 형상의 본질을 알리는 것)로 에둘러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글자(문자) 그대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또한 지도자들(목사,전도사,선교사,교황,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이 글자(문자) 그대로 곧이 곧대로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취지)을 한참이나 오해하고 와해하고 왜곡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 사람 자신의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재력,성공,성취)이나 편의(욕심)에 따라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용하여 내걸고서 오용하고 남용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은 어느 누구나 전부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불완전한 미완성의 존재이기는 마찬가지이며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고 자기 코가 석 자이는 마찬가지이므로 누가 누구를 인도하고 안내하고 구원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이제는 백성들(성도)이라고 하여서 가만히 기다리며 듣고만, 배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반드시 참 형상(참 뜻,실물,실상..등등)을 찾아야 하고 깨달아 알아야 하며 우리 자신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달린 문제를 똑같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는 불완전하고 미완성이기는 마찬가지인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원(잠6:5)해야 하리니 이사야 28장17~18절에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범사)에는 "아담의 때, 노아의 때, 아브라함의 때, 모세의 때, 초림 그리스도의 때, 마지막 그리스도의 때" 하는 것처럼 다 기한이 있고 그 기한대로 목적을 이룰 때가 있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냐 아니면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이르는 축복과 은혜냐 하는 것이며 또한 그 일의 시작과 끝(전3:1~11)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으므로 알 길은 없지만 그마나 어림짐작이나 유추(미루어짐작)를 통하여 알 수 있게 하신 것이 바로 "공평의 측량줄과 공변됨(공의,정의)의 저울 추" 를 우리 사람에게 주셔서 그 날(재앙이 유행할 때)에 있을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를 피할 길을 열어 주셨으니..... 다시 말해서 우리 사람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너무나도 짧은 100 인생을 살면서 그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고 각종 질병(염증,암,바이러스..등등)이나 사고(교통,살인,붕괴,폭발,전쟁 사고..등등)나 재해(홍수,지진,폭염,혹한,인재..등등)를 통하여 개죽음을 당하기가 일쑤이며 마치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처럼 정조준을 당하고 있는데 그 원인과 이유에 관하여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고전15:55~56)에서는 단연 "죄와 악(사59:1~2)" 이라고 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 사람이 자꾸만 서로 물고 헐뜯고 치고 박고 짓밟아버리고 피(보복복수) 터지는 전쟁의 죄대로 악대로 행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직 그 마음을 상석(上席)에 두고서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상대방을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어하는 "욕심(약1:15)" 이고 그 욕심이 때로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간음을 행하기도 하며 때로는 거짓말, 도적질도 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바로 "십 계명" 이며 다만 그 마음을 말석(末席)에 두고서 착하고 너그럽고 좋은 마음(눅8:15)으로 겸손으로 서로를 거룩하게 섬기며 이해하고 공경하고 존중하며 배려하고 양보하는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것이 바로 핵심 계명이니 이것이 하나님이 거처로 삼아서 영원히 함께 할, 함께 살 집인 우리 사람을 지을 측량줄이요 저울 추이며 이 측량줄과 저울 추로 지어진 집이라야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옷처럼 덧입을 수 있으리니 이것이 아니라면 우리 사람의 행한 모든 죄와 악을 인하여 하나님께로 다 버림(렘31:37)을 받게 되므로 그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니며 그 예루살렘이 그 예루살렘이 아닌 하나님의 성지가 될 수 없으며 그 뜻대로 지켜 행하는 자에게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영영한 하나님의 성지가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욥기서 5장에서 9~13절에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며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밉다고 미워하고 뜻대로 안된다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는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시37:1)하지 말며 또 못마땅하다고 함부로하며 언짢다고 갑질하는 불의를 행하는 자를 인하여 똑같이 되어서 물고 헐뜯고 치고 박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 같은 죄악을 행하지 말아야 함은 결국 똑같은 사람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며 똑같은 행악자요 불의를 행하는 자로 드러나고 나타나게 되면 결국 이를 정조준하고 있는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서 하나님의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 곧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축복과 은혜는 꿈도 꿀 수 없게 되므로 우리의 열심과 충성으로 할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잠언서 6장16~19절)을 이겨내서 떠나고 벗어나야 하며 떠나고 벗어나야만이 비로소 생명의 보호하심(잠6:20~22) 곧 안전한 생명의 보호막 아래에 있게 되기 때문에 잠언서 24장3절에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 12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하시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얼마든지 거짓공갈협작조작으로 속일 수도 있고 또 보이는 앞에서는 얼마든지 친절과 배려와 겸손함과 섬기는 모습으로 꾸미고 포장해서 감추고 숨길 수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뒷(속마음)면 곧 내면의 시꺼먼 속내와 끝없는 욕심으로 인한 높아진 마음과 빳빳한 이마와 목, 꺽일 줄 모르는 이중인격, 다중인격적으로 행하게 하는 죄되고 악한 것들은 공평의 측량줄과 공의의 저울추로 주신 "십 계명" 에 비추어 보면 추하고 부끄러운 민낯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 개죽음을 당하는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를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 "죄와 악" 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