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가복음 11장2절에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7절에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 에서 "나귀 새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나귀 새끼" 라 하심은 말(馬)과에 속하는 포유류이며 또 말이나 소보다는 체구가 작지만 나귀는 체력도 강하고 지구력도 말이나 소보다 월등해서 보통 사람의 짐(멍에)을 운반하거나 운송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말(馬)은 사람은 태우는 승용차라 한다면 "나귀" 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트럭이라 할 수 있으며 지금도 산간 지역의 차(트럭)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서는 나귀를 활용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일을 드러내고 나타내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께서 왜 말(馬)이 아닌 나귀, 그 중에서도 "나귀 새끼" 를 타셨을까? 하는 것이며 더군다나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마가복음 뿐만아니라 마태(21:2~7), 누가(19:30~35), 요한(12:14~15) 복음 즉 4복음서 전체에서 기록하고 있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나귀 새끼" 를 타신 이유가 오늘 본문의 말씀 바로 뒷 구절 9~10절에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시는 것처럼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며 또 그렇기 때문에 칭송을 받는 자리에서 어느 누가 위엄과 존귀를 나타내는 "멋지고 잘 생긴 말" 을 마다 하시면서 짐을 싣는 용도의 "나귀" 그것도 "새끼" 를 타기를 원할까? 그러니 그 담긴 메세지(내용,주장)가 주는 영향력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특별한 말씀이라는 차원에서 오늘 이 시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잡아 내시길 바라며..... 스가랴서 9장9절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목적)가 때로는 재력이나 학력이 되기도 때로는 권력이나 위력이 되기도 하며 또 때로는 한 방에 성공하고 성취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으뜸은 단연 나이(세월)와 지위(위치)에 걸맞는 명예와 체면과 자존심을 굳게 세우는 일이므로 없어도 있는 척, 있어도 더 있는 척하여서 흠집이 나지 않도록 좋은 집에 좋은 차에 좋은 물건(명품)을 소유하여 과시하고 으시대며 뽐내기 마련인데 그리스도께서는 명색이 구원자시요 유대인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는데도 오히려 있어도 없는 척, 없어도 더 없는 척 가장 낮고 낮은 모습(자세,태도)을 취하셨으니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 하는 것으로써 이는 "하나님의 뜻과 일 즉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함" 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심으로 하나님의 그 약속(언약,예약)하신 이 말씀을 응하고 이루기 위하심이니... 다시 말해서 공의(공정,공정)롭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섬기며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인애(사랑), 자비(긍휼), 인자(너그러움)가 있어야 하며 또 인애, 자비, 인자가 있기 위해서는 부득이 명예나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려야 하며 또한 명예나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마음이 상석(上席)에 있어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에서 비롯된 미워하고 원망하며 비방하고 훼방하며 함부로하고 갑질하고 짓밟아버리는 죄와 악을 비워 겸손한 마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귀 새끼" 를 타셨다는 것은 그저 허울(겉모양)에 불과할 뿐 하나님의 뜻과 요구이신 그 마음이 낮아질대로 낮아진 "겸손한 자, 섬기려 하는 자(막10:45)" 이심을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려 하신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하리니 "나귀 새끼" 는 마음은 전혀 겸손하지 않고 섬기려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속이거나 그 마음의 검은 속내를 숨기기 위하여 보여주기식으로 얼마든지 이벤트성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어떠함이 중요한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3절에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 5~7절에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하시면서 25~26절에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은 그 시대, 그 세대, 그 당대의 랍비(선생)요 지도자들(목사,전도사,선교사,교황,신부님,수녀님..등등)이었던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율법사, 대제사장들에게 그리스도께서 타격감(충격,영향력)을 주기 위하여 거의 독설 수준의 말씀들을 기록하신 것이지만 어찌 비단 랍비나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되고 제한된 말씀일까? 그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는 부추김대로 부추김을 받은 백성들(성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간(세월)과 공간(장소)만 다를 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르지 않고 마찬가지이므로 "나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 이라는 차원에서 시간이 되시면 23장 전장을 다 읽어보시면 좋으시리라..... 말로는 누가 못하겠는가? 그 말에 신뢰가 있으며 떳떳하고 자신있고 당당하기 위해서는 행동(행실,행위) 역시 말과 똑같은 "언행일치" 가 반드시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제아무리 높은 지위(재력,학력,위력,나이 많음,성별의 우월성..등등)에 있다고 할지라도 부득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낮추며 또 낮추고 낮추는 "겸손한 자, 섬기려 하는 자" 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상대방을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어하는 "욕심" 을 버려야 하며 그 욕심을 인하여 뜻대로 마음대로 안될 때에 미워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짓밟아버리는 "죄와 악" 을 비워야 하며 이러한 욕심과 죄악을 행함에 거침없게 만드는 높아진 마음(명예,체면,자존심)을 죽여야 하리니 이를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여 가르치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며 이것이 6000년 동안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과 일이요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율법의 요구(롬8:4)이시며 이를 가장 먼저 드러내고 나타내서 응하여 이루심으로 부활(생명)의 첫 열매가 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서 쉼(안식)을 얻으시며 구원의 근원(히5:7~9)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그 본과 자취와 흔적을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함을 인하여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 우리들을 위하심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1장28~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비록 누추하고 초라하고 허름한 데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이 행복하고 감사하고 즐겁고 기쁘고 재미지면 거기가 어디든 천국이 될 수 있으며 하지만 제아무리 삐까뻔쩍, 휘황찬란한 집에, 차에, 물건(명품)에 재력학력직업 빵빵해도 그 마음이 불안초조조급, 우울두려움스트레스, 근심걱정염려에 휩싸이게 되면 그 불평불만원망이 자꾸만 나쁜 생각(자살 충동)이나 이상한 생각(마약 중독,알콜 중독,게임 중독,도박 중독)을 하게 만들게 되므로 살면서 이보다 더 무거운 짐이나 멍에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의 뜻과 일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신 취지와 목적과 이유는 바로 지금 우리 자신 즉 그 마음이 하나님 나라 천국에 있는가? 아니면 도수장에 끌려가는 듯한 지옥에 있는가? 하는 것이니 여기(땅,세상)에서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 천국이 절대로 거기(하늘,하나님 나라)에 가서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여기(땅,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천국이 먼저 되기 위한 낮고 낮은 겸손한 자, 섬기려 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죄악을 비우며 명예체면자존심을 죽여서 인애와 자비와 인자로 가득 채워야 하며 그 가득 채워진 하늘의 것들로 인하여 어느새 그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서 못 갈 곳이 없고 못할 것이 없으니 누가 욕심과 죄악과 그로 인한 짐(멍에)들에게 치여 묶어 놓거나 가두어 두거나 무겁게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갇히고 옭아매고 얽매여 있는 것이므로 이 모든 것을 깨어부수고 벗어나고 도망하는 것 역시 우리 자신의 몫이며 이 모든 고통과 고난과 환난의 중심에는 높디높은 바벨탑과 철옹성과 같은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