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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예레미야 34장7절)

교훈 안에 2025. 3. 15. 04:54

오늘은 예레미야 34장7절에 "때에 바벨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에서 "남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남다." 라 하심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말하고자 하시는 뜻은 "생존 게임(서바이벌)" 하듯이 유다 예루살렘 모든 성에서 이방 족속 바벨론 군대에 의해 에워싸이고(렘4:17) 사로잡혀서(렘1:3) 갇혀있는(사42:22)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백성)이기 때문에 그 중에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있는 즉 "살아남다" 가 더 정확한 표현이며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시대시대마다 그 세대세대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노아의 때에는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고 남은 "노아와 일곱 식구(벧전3:19~21)" 가 있었고 아브라함의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인하여 불로 멸망당할 때에 살아남은 "롯(벧후2:5~7)" 있었으며 모세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430년간 종노릇하던 애굽에서 탈출하여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을 향하게 하셨지만 백성들(성도)은 오래된 사람의 못됐고 나쁜 습관(엡4:22~32)인 불평불만만  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저항하고 배반함을 인하여 광야에서 다 파멸당하고 그 중에 살아남은 "여호수아(신31:23)와 갈렙(민26:65)" 이 있었고 초림 예수님의 때에도 유대인들(이스라엘 백성)은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하나님을 부르짖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시는 그리스도는 극형에 넘김을 인하여 이방족속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고 제자(사도)들과 몇 명(행1:13~14)만 살아남았으며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행1:11)이 남아있는 우리들에 대하여는 "안식(생명과 구원)에 들어갈 남아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고 그와 더불어서 살아남기 위한 온전하고 완전한 참 형상(실물,실체,참뜻)의 방법과 법칙을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기록해 놓으셨으며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우리들 역시 믿음의 소망인 생명과 구원과 안식을 좇아가는 중에 살아남아야 할 거울과 경계와 교훈으로써 이 시간 그것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니 이렇듯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올 때에 "조금 남은 씨(사1:9,렘5:1)" 를 하나님께서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우리들(히11:39~40)에게 결코 기회는 오지 않았으리라..... 또한 굳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아도 사람(인류)을 비롯한 모든 생물(동물,식물,곤충,벌레는 물론 바이러스,박테리아,세포까지)은 "적자 생존, 생존 경쟁" 하는 것처럼 먹고 먹히는 살벌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든지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면서 대신 필요없는 것들은 "자연 도태, 자연 선택" 하듯이 주어진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법칙 아닌 법칙이 존재하게 되었으니 어쨌거나 다 떠나서 우리 사람은 살아남기 위하여 어떤 방법과 법칙을 좇아갔을까? 하는 것을 들여다 볼 때에 현인류가 있은 이래로 사나운 맹수, 서슬퍼런 이빨을 드러낸 짐승과 다름 없는 치고 박고 물고 뜯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을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 수법이 때로는 매우 악랄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마치 괴물 같기도 할 때가 있으므로 이러한 방법으로는 결국 스스로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나방 같이 불구덩이, 어리석은 길을 따라 좇아가고 있는 이유는 상전인 양, 벼슬인 양 상석(上席)에 앉아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어하는 "욕심(욕구,욕망,탐욕)" 이 그 마음 중심에 있기 때문이며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 하며 이를 몸소 실천하여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의 본보기를 보이심으로써 가장 먼저 앞서 생명(고전15:23)과 안식(히8:1)과 구원(히5:7~9)에 들어가신 것이 "그리스도" 이시며 그리스도와 동일한 마음으로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하는 자들을 찾으려, 얻으려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예레미야 42장2~3절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하여 예레미야는 15~19절에서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 거하기로 고집하면 너희의 두려워하는 칼과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 오늘날 너희에게 경계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하고 쓰고 있듯이 "예레미야 42장" 은 이방 족속 바벨론에 의해 유다 예루살렘성 즉 그 백성들(성도)이 다 멸명 당하였고 왕(시드기야)조차도 붙잡혀 가버리고 조금 남은 자들이 살아남을 방법 곧 그 갈 길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는 내용이며 흡사 우리 나라(대한민국)가 일본과 을사늑약(1905년) 후에 일본이 왕(고종)도 퇴위(1907년) 시키고 나라의 주권조차도 침탈해 1910년부터 1945년 해방(자유)을 맞기까지 그 지옥 같은 35년동안 거의 일본의 식민지화 되어 종으로, 노예로 살았으니 우리 나라가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상황과 동일하다는 차원에서 더듬어 들여다 보면 힘 없는 왕(지도자)을 인하여 백성들(성도,국민)은 우왕좌왕,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애굽으로 급히 따라간다." 는 것은 마치 모세의 때에 35년도 아닌 그 끔짝한 자그마치 430년간 애굽에 종노릇하면서 아브라함의 때에 하나님과 가나안(생명,안식,구언)에 관하여 하신 영원한 약속(창17:7~9)조차도 쌔까맣게 잊어버리고도 남을 길고도 긴 시간(세월) 속으로, 그러한 애굽 아래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는 것으로써 그러한 "애굽(사31:1~3)" 에 대하여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않는 사람"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 백성들(성도)들로 애굽을 탈출시키려 하신 가장 큰 이유와 목적은 더는 애굽의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이제는 하나님의 법 곧 율법과 또 그 율법의 핵심 계명인 "십 계명(행하지 말아야 할 죄악 5가지, 반드시 지켜 행하여야 할 선과 의 5가지)" 을 지켜 행하게 하려 하심이며 그런 연후(신8:1~2)에야 비로소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으로 들이시려 하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오직 계명대로 지켜 행하며 그 법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러나 지켜 행하지 못한다면, 순종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가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는 것" 과 동일하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제아무리 조금 남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결국 칼(멸망)과 기근(파멸)과 죽음(사망) 뿐임을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는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거울(고전10:6)과 경계(고전10:11)와 교훈(롬15:4)으로써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5장1~4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 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정의(공정,공평,공의)와 진리(이치,섭리)" 의 기준과 메뉴얼이 되는 것은 단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 계명(살인,간음,도적질,거짓,탐욕을 행하지 말아라. 대신 거룩,섬김,공경,사랑을 행하라.)" 일 것이며 이것이 백 마디, 천 마디 말로 "믿습니다. 주여주여!!" 하는 것보다 더 효력이 있고 영향력 있는 하나님의 길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그러니 그 계명대로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 각자각자의 높디높아진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려야 하며 또 그러한 체면이나 자존심을 인하여 옹고집스럽게 행하는 진상 짓을 비워야 하며 뻣뻣할대로 굳어진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다스려야 하며 이 모든 것을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오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 이시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가르침의 정당성(떳떳하고 자신있고 당당함)을 위하여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6~11)" 이며 이로써 흠(죄) 많고 점(악) 많은 불완전한 미완성의 사람에서 벗어나 떠나 하나님의 소생(행17:24~29), 아들들(히2:10)로서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 명분(갈4:1~7)과 조건이 되며 또한 애굽(멸망,파멸,사망) 아래가 아닌 "생명의 보호막(잠6:20~22) 아래" 에 있게 되리니 "그 한 사람" 이 없어서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기를 수 없이 쳇바퀴 돌듯 반복하면서 마지막 때인 오늘날에 이르렀으며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한 사망의 쳇바퀴 돌듯 무한 반복하여 돌며 언제까지 그 재앙과 저주의 고리(올무)에 걸려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으로써..... 로마서 9장6~8절에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하시면서 28~29절에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곧 유대인(아브라함의 혈통)들을 택하신 것(암3:2)은 그들이 잘나서도 아니요 이뻐서도 아니요 특혜가 있어서도 아니요 오직 계명대로 지켜 행하지 않았을 때에 있을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약속하셨던 그 계명대로 지켜 행함을 인하여 있을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은혜 아래에 있게 되느냐 하는 표본(샘플)을 보여주기 위하심이며 그런즉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무늬(껍데기)만 "이스라엘(하나님의 백성)" 이요 욕심과 그 욕심을 인한 포학과 완악함만 남아 흑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갈 육신의 자녀가 될 것이며 하지만 지켜 행한다면 이삭으로부터 난 자(약속의 자녀-갈3:16) 곧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전15:23), 속한 자(계14:5), 옷 입은 자(갈3:27)로 드러나고 나타나서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부활)과 안식(쉼)과 구원을 얻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리니 이들을 찾으려, 얻으려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이며 비로소 하나님의 뜻하신 모든 일(계획)들과 약속을 이루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가 오리니 "그 한 사람" 이 없었다면 오늘날에 우리들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