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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교훈 안에 2025. 5. 23. 05:30

오늘은 예레미야 39장17~18절에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에서 "신뢰(信賴)"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신뢰(信賴)" 라 하심은 사람이 어떤 대상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믿고 의지하는 것이 "신(神-하나님)의 영역" 이라고 한다면 그 믿고 의지하는 그 대상(神-하나님)의 어떤 이념(사상)이나 가치관(신의 성품) 역시 믿고 따르게 되기 때문에 이를 "신의(信義)" 라 하는 것이며 그 신의(信義)가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정립확립이 되고 또 자연스럽게 생활이, 삶이 된다면 그 때부터는 "신념(信念)" 이 되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또한 어떤 것을 신뢰(信賴)하고 의뢰(依賴)하는가? 하는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형태가 있어야 하며 나와주어야 하고 이를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는 것이 지도자(목사,전도사,선교사,교황,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들의 사명이요 몫이며 이제는 두루뭉술하게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오직 예수", "믿음천국 불신지옥"... 등등등과 같은 맹목적인 믿음과 신뢰를 강조하면서 아직도 교인(신앙인)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면 여전히 시대를 읽지 못하고 분변(마16:2~3)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지도자로 남게 되리니.....

먼저 마태복음 22:37~4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처음에 우리 사람을 지으시고 만드실 때에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랑(요이1:5~6)" 으로 행하기에 솔직하고 정직(전7:29)하게 지으셨고 또 그 기준이 되는 메뉴얼로 주신 것이 바로 모세를 통하여 미리 주셨던 율법의 핵심인 "십 계명" 이며 하지만 몇 천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사람은 율법의 핵심(참형상,실체) 알맹이인 "십 계명" 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서 껍데기(그림자-히10:1)에 불과한 제사(예배)와 희생 제물(헌금)에 올인(집념,집착,착념)하여 면죄부(죄사함)을 얻으려고만 하는 백성들(성도)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시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신 것이 바로 신약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십 계명(막12:30~33,눅10:25~28,롬13:8~10,갈5:14~15,약2:18~19)" 이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온전히 지켜 행하는 본보기를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니 이는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진심)으로 마음에 모시며 예배(제사)하는 것인지 그 정석을 보여주어서 그 본과 자취와 흔적을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 그러나 우리 사람은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체면이나 자존심,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 자루를 휘두르고 싶어하는 욕심을 인하여 사랑(이해,존중,배려,양보)으로 행하기보다는 무슨 벼슬인 양, 무슨 상전인 양, 무슨 주인인 양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언짢으면 짓밟아버리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기에 바빴고 이것(죄악)이 사랑으로 행하는 것보다 쉬우므로 때(새벽예배,수요예배,금요철야예배,안식일예배,주일예배,부흥성회예배,부활절예배,추수감사절예배,성탄절예배,송구영신예배..등등)되면 알량한 희생 제물(헌금) 몇푼으로 면죄부(죄사함)를 받을려고만 하니 사도행전 17장25절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시면서 31절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지으신 것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돈(헌금)이나 값비싼 물건(헌물,귀금속)을 바치게 하려 하심도 아니요 또 무릎을 조아리고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혀서 모시고 받들며 섬기게 하려 하심도 아니요 오직 주신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대로 지켜 행하여서 또 온전히 지켜 행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을 본받아서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부활)과 안식(쉼)과 구원(구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믿을만한 증거 곧 신뢰(信賴)하고 의뢰(依賴)할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믿음의 형태를 주신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서 2장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너나 할 것이 없이 그것이 지도자들(목사,전도사,선교사,교황,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체면과 자존심과 욕심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를 내려놓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고 죽이지 못한다면 시시때때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주인상전벼슬인 양 하는, 하나님인 양 하는 그 마음이 상석(上席-교만,오만,자만)에 앉아있어서 자꾸만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는 미완성, 불완전한 존재이기는 다 마찬가지이며 또한 그 죄와 악을 인하여 각종 질병(염증,암,바이러스,박테리아..등등)이나 사고(붕괴,폭탄,전쟁,살인,교통사고..등등)나 재해(지진,홍수,혹한,폭염,인재..등등)로 갑자기 개죽음을 당하는 사망이 표적(고전15:55~56)이 되기는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구원해주며 누가 누구에게 믿고 의지(신뢰,의뢰)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것으로써 결국 우리 사람 스스로가 체면과 자존심과 욕심에 얽매여 있는 올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죄와 악의 사슬에 결박되어 있는 것에서 빠져 나오는 수고 즉 저마다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그리스도와 동일한 마음으로 겪어야 하리니 비로소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전15:23)로서의 생명(부활)으로 나아가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계15:4)로서의 안식(히4:8~11)에 들어가며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갈3:27)로서의 구원(히2:10)에 들어갈 수 있며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1장12~14절에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신 하나님(사61:1,눅4:18)께서 우리 사람에게 부탁하신 아름다운 것은 오직 모세의 때에 벌써부터 주셨던 율법의 핵심인 "십 계명" 이며 그 계명들을 그리스도께서 다시 생각나게, 다시 떠오르게 하려고 그토록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신 것이 4복음서이며 또 사도바울 서신서 곧 신약 성경들이며 이것이 말로 다 해먹는, 말로써 날로 회쳐먹는 즉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바로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6~11)" 이며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도 몸소 실천하여 지켜 행하셨는데..... 이로써 우리 사람이 하나님께 의탁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있게 되며 또한 그 날까지 생명의 보호막(잠6:20~22)으로 지켜주실 줄 확신하노니 그런즉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율법의 핵심인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 하신 뜻대로 지켜 행하여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신뢰(信賴)하고 의뢰(依賴)하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신의(信義)" 요 참된 "신념(信念)" 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