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1장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에서 "예수(Jesus)"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그 의미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기록하고 있지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즉 "구원자" 를 뜻하며 바로 그 뒷 구절 22절에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모든 일이 드러나고 나타나서 이루기까지는 이미 선지자의 글 이사야를 통하여 7장14~15절에 "~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하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로서 잉태하여 낳을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에 앞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나심을 알리고자 함이며 하지만 때가 되기 전에는 그 또한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여서 선을 택하여야 할, 즉 종으로써 종노릇을 할 것이며 이를 갈라디아서에서는 4장1~5절에 "~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시면서 8절에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종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여자(마리아)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을 말함이요 이렇게 하심은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 곧 세상 주관자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히브리서 2장14절)에게 종 노릇하고 있는 우리들을 속량하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며 쉽게 말해서 구원하고자 하는 것(곳)이 죄에 빠져 있는 그의 백성(성도,자녀)들이요 그 백성들을 구원하려면 그 곳에 가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10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는 것처럼 율법은 장차 올 참 형상에 대한 그림자(히브리서 10장1절) 곧 표면적이고 부분적이며 초보적(초등학문)인 것이기 때문에 그 이면에 숨어 있고 감추어져 있는 깊은 뜻은 헤아려 이해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상대편을 외모(겉으로 드러난 행동)로 보아 판단(흉보고 욕함)하게 되니 은혜, 즉 온유한 마음으로 관용하고 인애로운 마음으로 용납하며 긍휼한 마음으로 화평과 화목과 평강을 도모하지 못하니 저주 아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는 우리 또한 아직도 상대편의 겉모습을 보고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지며 마음에 안 들어져서 불평하며 비방하고 싫어하며 미워하고 사나워져서 함부로하고 있다면 죄와 악을 버리지 못한 죄의 종이요 악에게 종노릇하고 있는 율법 아래 있는 자라는 것을 잡아 내셔야 하며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 좋은 예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첫 번에 그 백성들이 있는 유대(이스라엘)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은 그들(대제자상들과 율법사들과 유대인들)이 읽어 오며 배워 오며 알아 왔던 그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파격적인 말과 행실을 보이는 그 외모(겉모습)가 눈엣가시처럼 보였기 때문에 침 밷고 때리며 희롱하고 비방하며 욕하고 결국은 가장 극형에 해당하는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군중심리로 한 마음이 되어 외쳐서 죽게 하였으니 자신들또한 온전히 율법을 지켜 행하지 못하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아 일깨워 알아)보지 못하였었던 것을 이제는 우리가 거울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또한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경계가 되었음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5장7~9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하는 것처럼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먼저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외하심의 본(本), 즉 유대인들이 흉보고 욕하며 비방하고 때리고 침 밷고 희롱할 때에 그들과 똑같이 되어 다투며 더욱 큰 소리로 불평하며 비방하고 분내며 사나워져서 더욱 함부로 하였던 것이 아니라 죄에게 종이 되어 악에게 종노릇 하던 것을 그치고 입술을 닫고 혀를 잠잠하여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순종함을 보여 온전하게 되었은즉 그 자취을 좇아 행하는 자들의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니 진정한 아들로서의 "예수" 의 나심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