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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태복음 3장7절)

교훈 안에 2015. 3. 14. 15:52

오늘은 마태복음 3장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 에서 "하나님"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잘 알고 계시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Jehovah)" 이시며 "여호와"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3년10월4일자) 적이 있으니 참고 하시기 바라며..... 그 어원은 "하늘에 계시는 님(하늘님)" 에서 유래 하였으며 하지만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하늘" 에 관하여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께로 난 하늘과 같이 높고 귀한 지혜와 명철의 그 교훈의 말씀을 뜻하기 때문에 그러한 높고 귀한 분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하며 이 세상에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God,천주,알라,하느님,상제(上帝)... 등등등)은 많지만 중요한 것은 절대자로써의 참 의미와 시편 97편1~2절에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하시면서 9~10절에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神)들 위에 초월하시니이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하고 쓰고 있듯이 더 나아가 모든 신(神)들 위의 조물주(창조자)로써의 지존무상(至尊無上)이시되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이기 때문에 피조물로써, 그의 다스림을 받는 자로써 또 그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악(惡)을 미워하여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 하리니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듯이 그 바로 앞 구절 6절에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오해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하며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있는 것도 없게 하시며 기적을 만드시는 마치 요술을 부리는 마술사와 같이 방망이 뚝딱하는 도깨비와 같은 절대자로 생각하며 그러다보니 그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또한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눈 먼 소경을 눈 뜨게 하며 죽은지 오래 된 사람을 살리시며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고 치유할 수 없는 각종 (희귀)병을 치료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믿게 하였으니 하지만 요한복음 6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이 살리고자 하시는 것은 영(靈), 즉 사람의 마음과 생각 곧 정신(精神)세계를 깨우고자 하시는 것이요 다시 말해서 아무리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게 된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눈 뜨지 못하여 제대로 걷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니 먼저는 영(靈)이 살지 못한다면 그 다음, 즉 육(肉)에 대한 모든 안위와 평화와 안식과 생명과 성공... 등등등은 아무런 유익도 소용도 없으니 들의 풀과 꽃과 같이 금방 사라지는 안개와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그래서 로마서 1장22~25절에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곧 신의 성품(베드로후서 1장4~9절)대로 지어져야 하리니 사람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한 성질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스스로를 다스리며 제어하고 조절할 수 없다면 성난 맹수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짐승과 무엇이 다르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인내와 경건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며 거기에 우리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라 할지라도 관용하며 용납하고 화평(은 배려와 양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할 수 있도록 사람을 대한 우애와 사랑으로 지어져야 하지만 자기 자신의 유익(입장과 처지)과 이익(기준이나 관점)이 앞서다보니 사람을 대한 불평과 미움과 비방과 무정함과 함부로함을 더욱 의지하고 믿었으니 이렇게 됨은 인정하기 싫지만 그러한 것으로 지어졌기 때문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면 무조건 "무소불능(無所不能)" 한 분으로 만들어 "하나님이면 안되는 것도 다 된다." 하는 억지 아닌 억지가 있음을 우리가다 아는 바요 로마서 12절에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하시면서 16절에 "~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곧 말씀(요한복음 1장1절)이시요 그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무궁한 생명과 복(福)을 주시고자 하심이니 "복음(福音)" 이요 사람이 이를 믿고 믿는다면 말과 행실로 지켜 행하여야 할 것이요 그러할 때 구원을 주시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그러므로 로마서 2장18~21절에 "(온전한)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하시면서 23~24절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이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며 바라고 계시는지, 그리고 그러한 그의 뜻을, 마음을 알았다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죄되고 악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스리고 제어하며 조절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여야 하리니 사람이 사람을 눈 뜨게 하여 빛으로 인도하는 것에는 말보다는(말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기 때문) 그 증거로 행실로 보여야 하니 그 사람의 참 행실은 그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며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가 변화되게 하기가 그 어느 것, 그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마음이 새롭게 되어 이전의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성정에서 선하며 온유하고 인애롭게 바뀌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기적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