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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교훈 안에 2016. 1. 19. 20:26

오늘은 이사야 29장22절에 "~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부터는 부끄러워 아니하겠고 그 얼굴이 이제부터는 실색하지 아니할 것이며~ " 에서 "아브라함(Abraham)"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앞 구절 19~20절에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경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인생)의 심한 패리(도리와 이치를 벗어나 완악하고 궤휼하며 사나움)함으로 말미암은 죄와 악에서 벗어난 후에 하나님의 장구한 생명과 안식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며 패리함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겸손하여진 것을 의미하니 패리함이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욕심과 높은 마음 곧 교만과 경만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며 그리고 "겸손" 은 그 근본이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2~5절)" 에 있으며 지금까지 우리는 나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겸손과 관용과 온유와 인애와 너그러움으로 배풀며 대접하였었지만 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바요 할 일이지 이를 "겸손하다.", "낮은 모습이다." 라고 말 할 수 없으니 상대편이 나 자신을 좀 불편하게 만들고 좀 곤란하게 만들며 못마땅하고 언짢게 하여 좀 밉고 싫고 불만이 생겨 화가 올라오고 사나운 성질이 꿈틀거릴 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 그렇게 되기까지의 사연이나 처지나 상황을 헤아려 이해하여 오히려 그 앞에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두지 않으려 애쓰면서(훈련,연습)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인생)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겸손" 이요 "인애(仁愛)" 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는데 "아브라함"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5년2월17일자, 2013년5월29일자) 적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아브라함" 에 대하여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읽은 바요 그에 관하여 익히 배운 바니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죽어 이 세상에 없는 그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곧 야곱(이스라엘)을 말하고자 전하고자 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에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21장43절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포도원" 에 빗대어 유다,예루살렘, 즉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28절~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백성(성도,자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뜻과 계명 곧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으로 지켜 행하는 자라야 그 나라의 백성이요 아들들이 되며 아들로써 유업과 기업을 잇고 받게 되니 로마서 6장19~21절에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아브라함의 자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금 살아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우리들 또한 육신(갈라디아서 5장19~21절)이 연약하여 하나님을 잘 모르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이 마음에서 이는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 사나운 성정대로 말하고 행하면서 자신을 방탕에 방임(에베소서 4장19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니 이제는 죄와 악으로 말미암은 불법을 행하며 그 열매(멸망,패망,사망) 맺었던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는 표면적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표면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며 또한 입으로만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 한다고 하여 그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신, 뿌려진 씨(말씀-누가복음 8장11절)가 자란 선한 열매(마태복음 12장33~35절)가 되었을 때에 진정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자녀(자손)가 될 수 있으니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6~8절에 "~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하는 것처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 곧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 다시 말해서 "약속" 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여여야 할 것과 또한 그렇게 행하였을 때에 지금까지 사망에 복종하여 그것에 종노릇하였던 것에서 벗어나 장구한 생명과 영원한 안식으로 갚아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그러나 육신이 약하여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것이 아니라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말로는 혀로는 "하나님" 을 외치면서 그 패리함과 죄와 악은 고쳐 행하지 못하였으니 그런즉 고쳐 행하는 방법과 그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본(本)을 보이시려고 맏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본보기로 약속의 자녀를 드러내고 나타내셨으며 그를 믿는 자(로마서 9장33~34절) 곧 그 본과 자취를 좇아 지켜 행하는 자들로 그리스도에게 붙은 첫 열매(고린도전서 15장23절)로써 부활에 참여케 하셨으니 이로써 진정한 아브라함 곧 그의 자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