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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이사야 29장24절)

교훈 안에 2016. 1. 23. 09:38

오늘은 이사야 29장24절에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에서 "혼미(昏迷)"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앞 구절 13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하시면서 20절에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경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을 모르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여 그를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사람들 또한 말과 혀로만 할 뿐 그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사람의 계명으로 행하니 "사람의 계명" 이라 함은 하나님의 계명이 "이타심(利他心)", 즉 나보다는 남을 위하며 낫게 여기는 마음(빌립보서 2장2~5절) 곧 겸손함(19절)이 그 근본이지만 우리 사람은 나보다 남을 위하며 낫게 여겨 그 유익과 이익(고린도전서 13장5절) 곧 그 입장과 처지와 상황을 먼저 헤아리고 살펴서 이해하여 배려하고 양보하며, 화평하고 화목하기를 힘쓰고 애쓰기 보다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욕심과 높은 마음 때문에 이에서 비롯된 불평과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비방과 훼방과 사나움에 함부로 하기를 서슴치 않으니 이러한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만이 강포와 경만함을 소멸하고 그칠 수 있으며 그런 연후에야 그 혼미하던 마음이 총명하게 되어 하나님의 계명 곧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며 또한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여러차례 언급했었지만 이제는 죽어 이 세상에 없는 그 시대 그 세대의 그들에게 말하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 아니라 지금 살아서 믿고 의지하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고린도전서 10장11절)와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 하신 말씀이요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혼미" 는 말 그대로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서 사리와 이치의 분별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 "내 마음 나도 몰라." 하면서 이랬다저랬다, 왔다갔다, 오락가락, 이리흔들 저리흔들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뒤죽박죽인 것을 의미하며 마음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씨" 에 관하여 살펴 본(2015년6월10일자,2014년6월1일자,2013년9월22일자,13년2월11일자) 적이 있었지만 사람(인생)은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하는 방법은 아등바등 몸부림을 하면서 때로는 자신의 유익과 이익, 즉 불편하고 곤란하며 못마땅하고 언짢은 것을 없이하려고 타인의 아픔(처지)이나 슬픔(사연)이나 괴로움(상황)에는 눈을 감아 버리고 오히려 모욕하고 비방하며 미워하고 다툴 때도 있으니 진정 살아남는 방법은 마치 씨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이 싹을 튀우고 움이 돋아 나물이 나무가 되어 그 나무(이삭)에 충실한 열매를 맺듯 사람의 마음밭(땅,흙)에 진정 씨(말씀-누가복음 8장11절)가 떨어졌다면 스스로 열매(마가복음 4장28절)를 맺기까지는 그 안에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 사나운 성정들을 버리고 비우고 죽여서 제하여 버려야만이 되지만 오히려 욕심과 높은 마음에서 비롯된 죄와 악이 살아서 진심 살려야, 살아야 할 것을 위해 죄와 악을 죽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울증이 있는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금방 나빴다, 친절하게 웃다가 뒤돌아서면 얼굴색을 바꾸고 미워하며 비방하고, 겸손하게 남을 위하다가 언제 그랬냐는듯 사나워져서 함부로하며 훼방(잘못되기를 바람)하는 마음의 전쟁... 혼미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잠언서 5장에서는 22~23절에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어느누가 자기자신더러 "나는 악인이야!", "나는 악한 사람이야!" 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 자신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내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욕심과 높은 마음과 사나운 성정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것이 주의 훈계를 받는 것이지만 이를 버리고 비우고 죽이지 못한다면 어느누구도 "악인(惡人)" 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결국 그 죄와 악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올무와 얽매이게 하는 줄이 되어 멸망과 패망과 사망에 이르게 하며 사는 날 동안도 어리석음과 미련함으로 혼미케 되니 이는 로마서 11장7~10절에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결국 이스라엘(믿는 자)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 말과 혀로만 할 뿐 구하였던 것은 보이지 않는 내면 깊숙한 곳의 정욕(여러가지 욕심)이었으며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는 그리스도가 본을 보이신대로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자요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한다면 그것이 도리어 마음을 혼미하고 완악케되어 정도(正道) 곧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에서 똑바로 보지도 제대로 들을 수도 그런즉 깨달아 일깨워 올바르게 걷지 못하는 소경과 귀머거리와 앉은뱅이가 되어 하나님의 장구한 생명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애가 2장11절에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하시면서 14절에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하는 것처럼 진정 앞서서 무언가를 볼 줄 알고 들을 줄 알아 가르치고 전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베드로전서 3장21절)에 있는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그 사람(백성,성도,자녀)들을 넘어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으며 등이 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명한 경고와 주의 곧 그 훈계와 교훈의 말씀으로 그 죄악에서 돌이키고 그 사로잡혀 있는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전하고 알려서 하나님의 장구한 생명으로 갈 수 있도록 선도하고 인도해야 하지만 오히려 그와 상관없는 것들(요행,성공,크게 됨... 등등등)을 가르치고 전하며 그와 상관없는 헛된 경고(지옥불... 등등등)나 묵시(높은 성경 지식... 등등등)만을 보인다면 그 결국은 혼미함으로 하나님의 진노하신 날(22절)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