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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이사야 37장16절)

교훈 안에 2016. 7. 17. 11:24

오늘은 이사야 37장16절에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 에서 "그룹(cherubim,seraphim)"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남)유다 견고한 성 예루살렘을 치고(공격) 이를 취함(이사야 36장1절)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이사야 37장4절,17절)하여 의뢰하지 의지하지 말기를 미혹할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때에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내용을 기록하신 말씀으로써.....

"그룹" 에 관하여는 아주 오래전에 살펴 본(2013년8월28일자) 적이 있었지만 "그룹" 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고도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곳이 에스겔 10장이며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그룹들" 이라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며 "그룹들" 을 우리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에 빗대어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그 차를 운전하시는 운전자이시며 "그룹들" 은 그 차의 몸체이며 그 차 바퀴(9~10절) 안에 또 차 바퀴가 있어서 그 차가 움직임에 있어서는 어김없고 틀림없는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각기 (그룹,사람,사자,독수리) 형상이 있는데 기름(휘발유,경유)이나 가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으로 움직이니 "네 생물(15절,20절)" 이라고도 하며 그 바퀴들 둘레에는 허다한 눈들이 있으니 마치 멀리서 보면 구름(3절)과 같은 형상이며 "구름"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3년11월8일자,13년4월25일자) 적이 있으니 그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하나님의 명(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차(그룹들)에는 언제 어디서나 어디든지 달려나갈 수 있도록 날개(16절)가 있으며 옛날에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여러곳에서는 달리는 "말 병거(스가랴 6장)" 에 빗대어 기록하고 있으며 그 모셔 섰는 모습을 이사야서 6장에서는 "스랍(2015년6월4일자)" 이라고 하고 "네 바람" 이라고도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바람" 에 관하여도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5년12월10일자,2014년6월19일자,2013년4월2일자) 적이 있으니 그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비록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靈)과 신(神)을 표현하기 위해서 육안(肉眼)으로 보이는 만물(로마서 1장20절)을 들어(빗대어)서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보이지 않는 영(靈) 곧 마음과 생각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 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요한복음 14장20절에 "그 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시면서 23~2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비록 몸(육신)은 다르다 해도 마음은 "한 가지", 즉 한 뜻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온전한 부활(마태복음 22장30절)의 때에 있어질 모습이기도 하니 창세(처음)로부터 마지막이라고 하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과 처소를 함께 하고자 하시며 우리 사람(장막)은 하나님의 처소를 덧입기(고린도후서 5장1~2절)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인생)에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이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존중해주지 못하고서야 어찌 보이지 않는 영(靈)이시며 신(神)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니 더욱이 "사랑(2016년4월20일자)" 이라 함은 고귀하고 숭고한 부모님의 사랑까지도 초월하는 크나큰 사랑(고린도전서 13장), 즉 부모는 자식(자녀)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제 새끼(자식) 사랑" 까지도 뛰어 넘는 "사람 사랑" 이며 그 근본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 이 없이는 결단코 행할 수 없는 것이며 이는 "장막" 곧 "성소"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3년12월13일자,13년2월14일자,13년1월30일자) 적이 있었지만 모세가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지은 장막(히브리서 8장5절) 그 중에서도 지성소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언약궤 위에 덮는 그룹들(히브리서 9장5절)이 있었으니 장막은 오늘날의 교회,성전,성당,예배당을 뜻하며 그러나 그러한 사람의 손으로 지은 보이는 장막을 말하고자 전하고자 하여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다만 보이는 만물에 빗대어 보이지 않는 장막 곧 우리 사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사람의 "마음과 생각(히브리서 8장10절)" 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 에 관한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역대하 5장1절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지라.~ " 하시면서 7절에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하는 것처럼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곧 예루살렘 성전이며 이는 오늘날 교회,성당,예배당을 의미하며 성전에는 당연히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니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그룹들이 있는 곳 곧 언약궤가 있는 장막(지성소)을 의미하며 그러나 이러한 것은 비유(히브리서 9장9절), 즉 참 형상이 아니라 그림자(초보적,부분적)라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이는 만물로써 들어서(비유해서) 설명(해석)하여 주신 것 뿐이니 다시 말해서 어찌 하나님께서 지정된 장소, 어떤 곳에만 계시겠는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진정 진심 바라고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과 계명을 헤아려 이를 지켜 행할 줄만 안다면 비록 몸은 다르지만 한 뜻 한 마음으로써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우리 사람이 온전한 장막일 것이며 그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명은 밉고 싫고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하고 언짢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 상대편의 그 처지와 입장과 상황과 사연을 이해하여 관용하고 용납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니 이를 행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본으로 보이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버리고 비움)를 죽기까지 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이는 수천년 동안 몸에 배고 찌들어 있었던 우리 욕심으로 말미암은 죄와 악을 씻어 제하여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부단한 인내와 노력(훈련,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