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27장51절에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 에서 "휘장(揮帳)"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바로 앞 구절 50절에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하고 쓰고 있듯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비롯한 온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과 "그리스도" 라 말 하시는 것을 듣고서 그의 제자들 조차도 의심하고 부인하며 배반하였으며 온 유대인들은 못마땅해하며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그를 미워하고 비방하고 희롱하고 모욕하고 침 밷고 때리고 멸시하여 결국엔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을 때에 영혼이 떠나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영혼이 떠나심이 도대체 어떠한 연관성이 있기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게 된 것인지를 우리는 알아야(깨달아야) 하리니.....
"휘장" 에 은 성소 곧 장막(=회막,성막) 안의 성소와 지성소를 나뉘고 있는 "담" 과 같은 역할은 하는 천으로써 다시 말해서 휘장을 사이에 두고 레위 계통의 제사장(히브리서 5장1~4절)들이 제사장 자신 뿐만아니라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위하여 매일 섬기는 예(예배)와 제(헌금)를 드리는 성소가 있었고 대제사장(히브리서 9장3~5절)이 일 년에 일 차씩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위하여 그룹들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께 예(禮)와 제(第)를 드리는 지성소가 있었으니 "장막(帳幕)" 에 관하여도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여러차례 살펴 본(2013년12월13일자,13년7월29일자,13년2월14일자,13년1월30일자) 적이 있으니 더 많은 내용을 보기를 원하신다면 그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9장9절에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 하는 것처럼 "비유(2016년7월15일자)" 라 하시는 것은 참 형상이 따로 있지만 때가 이르기 전에는 참 형상에 준하는 어떤 것(사물,만물)에 빗대어 말씀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며 "장막" 이 현재까지의 비유라면 "휘장" 또한 그러하기 때문에 "휘장" 의 참 형상을 알아야(깨달아야) 하며 이를 깨달아 앎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영혼의 떠나심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무엇인지를 잡아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1절에 "율법은 정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하시면서 5~7절에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하시며 19~20절에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하는 것처럼 모세의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법과 첫 언약(약속)의 말씀 곧 율법은 참 형상이 아니며 또한 매일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예배,헌금)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며 다시 말해서 "장막" 은 오늘날의 교회나 성전, 예배당, 성당을 말하며 이 곳에 가야만 하나님이 계시고 거기에 가야만 죄사함을 얻는다는 것은 아직도 율법에 속해 있으며 첫 언약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니 참 형상 곧 참 장막은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으시고 오직 한 몸 곧 사람의 몸과 마음이 "참 장막" 이며 그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이 그리스도이신 한 사람 "예수" 이며 어떤 특정된 장소나 건물에 가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해 달하고 염불을 외듯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와 꾀와 허물(패역,궤휼,완악)을 마음에서 제하여 버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육체의 정욕(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며 이를 앞서서 본을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자취를 좇으면 그와같이 하나님의 생명(부활)을 얻을 수 있다는 산 길을 걸어갈 담력(용기)를 얻었으니 이러한 방법(지혜)이 아니고선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13~16절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전에는 하나님을 믿는다, 의지한다, 사랑한다, 경외한다 하면서도 정작 현실의 삶에서는 우리 자신의 육체와 정욕(욕심)과 능역을 믿으며 의지하며 사랑하고 존중하여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사나워져서 다투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훼방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니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유대인들과 우리들이 다른 것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때리고 훼방하고 비방하고 함부로 하였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막힌 담, 휘장을 헐어버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으심, 죽으심을 보이셨으니 이러한 방법이 아니라면 결코 하나님과 가까와질 수 없으며 하나님 뿐만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막힌 담(원수)을 헐어 화목하게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니 화평하고 화목하고 하나가 되는 것은 중간에 막혀 있는 휘장을 찢어버리는 방법과 길(지혜) 외에는 없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