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55장2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에서 "양식(糧食)"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양식"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6년12월16일자,2015년5월19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먹기 위하여 살던, 살기 위하여 먹던 우리 사람(인생)은 생명을 이어가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식 곧 양식을 먹어야 하며.....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비롯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양식" 의 의미는 마태복음 4장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실상(참 형상)은... 순서가 먼저는 성경 곧 모든 하나님의 말씀 즉 우리의 영(靈)을 살리는(요한복음 6장63절) 영(靈)의 생명의 양식을 먹어서 영(靈)을 살린 후에야 영(靈)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그 육신(신체,몸)의 집 또한 영구히 보존하며 영위할 수 있으니 집(몸,육신)이 없이는 아무것도 어떤 것도 그것이 영혼이라 할지라도 살 수 없는 이치(진리)이며 집(몸,육신)이 없어지는 순간 그 영혼 또한 없어지고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니 그런즉 여기에서 "먹는다." 는 뜻은 "청종(聽從)" 곧 귀를 기울여서 잘 듣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나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서 일깨우고 깨달아서 돌이켜 고쳐 행할 수 있는 것까지를 의미하며 일깨우고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처음(창세기)부터 참 형상 곧 온전하시는 뜻과 장성하신 뜻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보이신 것이 아니라 지극히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이상(異狀)" 보이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람(선지자)들의 눈에 비춰진 외적이고 육적인 부분과 하나님 나라 즉 영의 세계, 영적인 부분이 오버랩 즉 겹쳐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와 원하시는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영적인(고린도전서 2장14절)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하리니 하지만 아무때나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 여러 곳에서 명시하고 있는 "그 때", "그 날" 이 되어야 가능하며 "그 때" 에 가서야 그 "날" 를 암시(징조,조짐)할 수 있도록 열어서 보이시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의 글들을 열어서 해석(마가복음 4장34절)하시고 풀어서 설명(누가복음 24장27절)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며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셨다면 두 번째 다시 오실(임하실) 약속(언약,예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그 해석하시고 설명하신대로 사람들은 고쳐 행하였을 것이라. 어찌되었건 지금의 우리들이 눈만 돌리면 주의 말씀을 만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들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직도 우리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고(기근) 마셔도 목이 말랐던(기갈) 것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 보고 읽으며 가르치고 배우며 알리고 전함(전도)에 있어서 손에 쥐여져 있었던 것이 반쪽자리 하트에 불과하였기 때문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바로 뒷 구절 3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귀를 기울여서 들으며 듣고서 일깨워 돌이켜서 고쳐 행할 수 있어야 그 영혼이 살리니 처음(창세기)부터, 첫 사람 아담(로마서 5장12절)으로부터 시작된 사람의 육체의 정욕(욕심)으로 말미암은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야고보서 1장15절)로 인하여 우리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사망(파멸)의 어두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얽매여 있으며 갇혀, 사로잡혀 있어서 우리의 영혼은(에스겔서 18장20절) 길어야 7,80... 100세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시간속에서 겨우 순간(찰나)만을 살다가 마는 그런즉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 곧 정신 세계를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의 말씀대로 지어지고 만들어져서, 그 생각(진리의사상,이념,이치)의 차원을 끌어올려서 이를 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우리의 영혼은 진심으로 살리니 앞서 그리스도께서 비록 죄 있는 사람의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로 오셨지만 죄의 종으로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죄 있는 사람의 모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피땀눈물 곧 고뇌와 애통과 많은 심적 갈등에서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기도와 같은 고난을 겪으셨고 그 고난을 통하여 비로소 죄된 모습(자세)을 못 박을 수 있었으니 못 박은 결과물은 마음에 안 든다고, 못마땅하다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밷고 미워하고 곤욕을 치르게 하며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였던 유대인들을 대하여 똑같이 되어서 죄의 종의 모습으로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고 함부로하였던 것이 아니라 급기야는 선한 말(시편39편1~2절)조차도 내밷지 않으시며 입에 재갈을 물리고 묵묵히, 잠잠히 하나님께서 명하신 언약의 말씀 곧 그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시기 위하기 위하여 그것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 길만을 걸으셨으니 그 고난과 못 박으심과 죽으심 즉 "십자가의 도" 를 통하여 다시 사는 "부활" 에 참예하신 것을 우리 본 바요 아는 바이며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죄의 종이 되어 평생을 사망에 얽매이고 사로잡히고 갇혀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우리 또한 그 본과 자취를 좇아서 행할 수만 았다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주신 것임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4장32~34절에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는 것처럼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 이라 하심은 지금까지는 알래야 알 수 없는 반쪽짜리 하트였기 때문이며 다른 반쪽이 있어야 비로소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니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먹어야만 우리의 영혼이 살 수있는 온전하고도 장성한 생명의 양식을 그동안 먹지 못한, 먹을 수 없었음을 인하여 끊임없이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육체의 정욕에 매이고 져서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의 종의 되어서 이를 행하여 결국에 파멸(멸망,패망)과 사망(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가는 우리들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아날 수 있는 방법(지혜)을 직접 나타내 보이신 것으로써 이는 하나님께서 부모로써 아버지로써 자식(자녀)이 되는 우리들에게 드러내신 "참 사랑" 이시며 그 참 사랑의 완성 즉 온전히 이루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의 반열에 우리도 올라서게 되는 것이며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의 모습(자세)으로는 불가능하며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도, 그 교훈의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 지어지고 만들어져서 이를 행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하며 이것이 진정한 우리의 생명의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