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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사도행전 7장41절)

교훈 안에 2019. 3. 23. 09:13

오늘은 사도행전 7장41절에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 에서 "제사(祭祀)"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제사" 의 기원은 잘 알고 계시듯이 사람(인류)이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농사에 영향을 끼치는 자연의 어떤 신비로로운 힘이나 번개 천둥과 같은 두려움(공포)에 대하여 하늘을 공경하는 종교의식 곧 제천의식(祭天儀式)을 하게 된 것이 그것이며 시간(세월)이 흐름에 따라 종묘제사, 조상제사... 등등등 사람은 저마다 여러 이유와 목적을 갖고서 제사를 하게 되었으니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어떤 제사이든 반드시 그 제사만의 형식과 절차를 갖춘 순서에 입각하여 제사를 올리게 되어있으며 이렇게 제사의 형식과 절자를 진행하기 위한 순서를 기록하고 있는 글을 "의문(儀文)" 이라 하며 쉽게 말해서 오늘날 교회에서, 성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보(週報)" 이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 또한 마찬가지로 제사를 드리는 방법과 이유를 기록하고 있는 글로써 다만 여느 제사들과 차이가 있고 다른 것이 있다면 제사를 올리는 대상이 "하나님" 이라는 것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이유와 목적이 우리 사람(인생)의 죄 속함 즉 "죄 사함(히브리서 7장27~28절)" 을 위함이라는 것이며 여느 세상에서 하고 있는 제사들과 구별(구분)하기 위하여 오늘날에는 "예배" 라고 표현하여 말하고 있으며 속죄 제물(예물)로 드려지는 것이 오늘날의 "헌금" 이며 무튼 모든 제사법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 이며 이 율법을 사도 바울은 "의문에 쓴 증서(골로새서 2장14절)" 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10장1~2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실 것(히브리서 9장15절)을 믿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유로 때(부활절,부흥회,추수감사절,성탄절... 등등등)마다, 날마다 제사(예배,헌금)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교회(성당,예배당,성전)를 찾는 것이니... 바꾸어서 말하자면 우리 자신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생각(기억)하면서 제사(예배,헌금)를 드린 것이 이미 오래되었고 시간(세월)을 보면 그리스도 이전까지 돌아가서 모세의 율법이 기록된 이후로 6000년이나 흘렀기 때문에 더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리는 일을 그쳐야 하고 마쳐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것이지만 오히려 제사를 드릴 때마다 계속하여 죄를 생각(기억)하게 하고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나니 그 제사가 정말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되었으며 쉽게 말해서 죄를 짓기는, 악을 행하기는 그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어 손과 발과 몸을 움직여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므로 그 마음에 죄와 악을 행하게 만드는 것들을 씻어서 정결케 해야 하지만 거룩하게, 고상하게, 경견하게 모양을 갖추어서 기도와 정성과 열심으로 드린다고 하여 마음에 있는 죄와 악이 없어지고 사라질까? 하는 것이니 더욱이 히브리서 5장1절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 3절에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는 것처럼 제사(예배,헌금)를 드리기 위해서는 또한 제사를 이끌고 가는 제사장(목자,신부)이 필요한데 제사장도 자기 자신의 죄와 악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 중에 취하였기 때문에 똑같기는 마찬가지이므로 누가 누구의 죄와 악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며 그런즉 우리 사람(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죄와 악을 제하여서 깨끗케 하는 것에는 예외가 없고 형식과 절차를 따른 순서를 좇는 의문(儀文)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잡아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시편 51편16~17절에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죄를 인하여)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 있는 사람의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로 오신 것은 우리 사람의 죄와 악(요한일서 3장5절)을 없이 하려고, 죄와 악을 제하여 깨끗케 하는 방법(지혜)을 알리며 전하기 위함이며 말로만 4복음서에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본(本)을 보이셨으니 다시 말해서 죄와 악을 행하게 만드는 미워하고 비방하고 불평하고 훼방하고 분노하고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던 사람의 육체의 여러 정욕(욕심,욕구) 즉 이러한 죄와 악을 버리고 비워야 하는데 우리의 몸(손과 발)과 마음은 이미 이러한 것에 길들여져 있고 세포속까지도 물들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버릇처럼 행하여 오던 것들을 제어하고 다스려서 제거하려 함에 있어서 마음에 이는 충돌 곧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며 그 전쟁으로 멸망과 사망으로 치달은 것은 가장 먼저 우리 사람이며 무튼 마음에 이는 싸움(야고보서 4장1절)에서 자꾸만 죄에게, 악에게 지고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고뇌와 번뇌와 애통(통회)와 여러 심적 갈등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겪으셨으니 "십자가의 고난" 이며 하지만 그러한 고난으로 말미암은 상한 심령은 더욱더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려고 몸부림을 치게 만들며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린 것은 이러한 애절하고도 통회하는 마음에서 벗어버리고자 하신 몸부림으로써 마침내 못박으시고 죽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 진정한 죄와 악을 깨끗케 할 수 있는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온전한 "제사" 이며 하나님께서 받고자 하시는 제물과 예물은 돈(헌금)이 아니라 깨끗하고 정결해진 우리 사람의 "마음(영혼)" 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9장13절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는 것처럼 선(善) 즉 사랑으로 행할 줄 알면서도 여러가지 개인적인, 이기적인 핑계 곧 못마땅해서, 마음에 안들어서, 언짢아서, 기분 나빠서... 등등등 이러한 이유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야고보서 4장17절)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한 가닥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그런즉 죄를 범하지 않는,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없음으로 서로 이해(배려,양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용납(관용,용서)못할 것이 없으니 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긍휼한 마음(빌립보서 2장3~5절)으로 마음에 이는 여러 죄의 정욕들을 버리고 비우려는 노력(훈련,연습)이 필요하며 그러한 노력 곧 상한 심령의 통회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로서 못박게 도와주시며 죽이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는 부활에 참예하셨듯 우리 또한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