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도행전 8장21절에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에서 "하나님의 도(道)"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이 세상에는 수 천가지, 수 만가지, 수 억가지 갈래의 길이 있으며 사람이라면 사춘기를 지나면서 한 번쯤은 자기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로 가는 것이 맞는 길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정작 이에 대한 정답은, 해답은 찾지 못하거나 어떤 모범 답안이 있기나한지 의심과 의문은 품은채로 그져 닥쳐오는 여러 어려움이나 고생과 삶의 현실의 벽 앞에서 부딪히고 싸우면서 버텨가기에 바쁘며 때로는 힘들고 지쳐서 그런거 생각하는 것조차 버겁고 사치스러울 때가 더 많아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사람의 생긴 얼굴 만큼이나 저마다 가고자 하는, 추구하는 길 또한 그 사람의 이념과 신념, 가치관, 성향... 등등등에 의해서 다 제 갈 길로 걷고 있으며 때가 되면 누구나 겪는, 누구나 가는, 걷는 죽음(사망)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 이라 여겨왔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서, 그를 의지하여서 가고자 하는 곳은, 그 길의 끝은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 즉 "천국(天國)" 이며 하나님께서 무한한, 무궁한 차원의 생명(요한복음1장1~5절) 그 자체이시므로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고 있는 유일한 "빛" 이니 하지만 우리 사람이 그 빛을 알아서(깨달아서), 그리하여 그 빛을 좇아서, 그 빛을 따라서 그 곳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면, 그 영원한 집(고린도후서 5장1~4절)에 도착하였다면 왜 아직도 사망(죽음)이 왕노릇(로마서 5장14~21절)을 하고 있으며 이를 슬프고도 괴로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것이니 바꾸어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 천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으로 그 가는 길을 찾아야 하며 어떻게 가는지 그 방법 또한 구해야 하지만 이를 어떤 누군가가 지금까지도 구체적이고도 논리적이며 명확하게 밝히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는 사람이 없었을 뿐만아니라 그리로 걸어 간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니 만약에 있었다면 그 길은 지금의 우리의 사망(죽음)의 길에 종지부를 찍고서 생명으로 가는,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에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그 길을 찾으며 구하여서 그리로 걸어갔으리라.
요한복음 14장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하시며 또한 11장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고 쓰고 있듯이 이치와 논리는 간단하니 사람이 사는 집에 그 사람이 떠나거나 없어지면 그 사람이 살던 집은 금새 폐허가 되고 폐가(廢家)가 되는 것처럼 사람의 육신(몸) 또한 그 사람의 영혼(靈魂)이 살아가는 집으로써 썩어지고 없어질 수 있고 없어진다는 것은 그 영혼(에스겔 18장20절) 또한 소멸되고 없어져 버린다는 것을 뜻하며 쉽게 말해서 인정하기 싫지만 살아갈 집(육신,몸)이 썩어서 없어졌다는 것은 그 영혼도 없어지고 사라진 것임을 의미하니.....
그래서 수 없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도(道), 천국의 문이 있는 그 길을 걸어가신 분이 그리스도(사도행전 2장36절)이신 한 사람 "예수" 이시며 이는 다르게 말하면 오직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며 그 길을 "십자가의 도(고린도전서 1장18절)" 라 하며 항상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그리스도 자신,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비록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행적을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도들에게 기록하게 하시고 떠나가신지 2000년이 흐르고 그 사이 우리 사람(인생)들은 나고죽고 나고죽고를 무한 반복하면서 죽음(사망)과 맞설 수 없음을 통감하고 그져 그것에 복종할 수 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경험해 왔기 때문에 몸과 마음과 유전인자에 배어버린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넘을 수 없는 넘사벽처럼, 메아리처럼 들리겠지만 엄연히 하나님의 말씀의 도(道)이며 선택적으로 이것은 믿고 저것은 못믿겠고 할 수는 없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직접 본보기를 보이시고 그 길대로 걸어가신 분이요 이로써 생명(부활)의 스타트를 끊은 첫 열매(고린도전서 15장23절)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죽었어도 살아나신 부활(마태복음 22장30절)한 모습을 막달라 마리아(마태복음 28장)에게 보이시고 사도들에게 보이셨으며 4복음서에서도 기록하여 우리들 또한 보고 있으니 이 또한 본보기로써 오늘날에는 육체(마태복음 24장22절)로 구원하시는 때이므로 죽어서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 "천국" 에 간다고 하는 말은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며 또한 시대를 분변(누가복음 12장56절)치 못하는 것이며 그런즉 지금 살아있을 때에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道)", "십자가의 도(道)" 로써 결코 넓은 길(마태복음 7장13~14절)도 아니며 절대로 편한 길은 아니라 좁고 협착한 길이기는 하지만 그 산만 넘으면 이보다 편안하고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할 수 없는 생명(부활)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길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전도서 11장9~10절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어렸을 동안(갈라디아서 4장1~5절)때에는 정한 때까지 사람이라면 겪는 모든 것들을 겪으시고 경험하면서 남들처럼 초등학문 아래에 종노릇을 하며 율법 아래에서 그 형식과 절차를 좇으며 겉치레와 체면을 중요시하는 예식과 의식을 따라서 행하셨었지만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기만 하고 즐거워하기만 하며 원하는 것만, 눈에 비취는대로만 행할 수 없고 아무런 눈치도 못채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은 고뇌와 번뇌와 근심이, 이러저런 고생과 여러 고비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하늘이 두려워지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음을 깨달아 아는 순간 수 천, 수 만, 수 억개의 길이 있을지라도 누군가가 생명의 길을 제시해준다면, 제시해주고 있다면 제 길(이사야 53장5~6절), 제 곳으로만 걸었던 길에서 멈추어 서서 방향을 바꾸어야 하리니 이 세상에 다른 길이 있음을 알고도 사망(죽음)의 나락으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