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도행전 8장23절에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에서 "불의(不義)"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불의" 는 말 그대로 의롭지 못한 것, 도리나 이치(상식)를 벗어난 언행(言行)을 뜻하며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인생)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의로움", "의(義)" 는 어떠한 이유나 무슨무슨 핑계가 없이 일(문제,사건,상황)이든 사람이든 "이타심(利他心)" 이 마음 바탕에 깔린 온유와 인애와 긍휼과 관용과 화평(배려,양보)으로 할 때에 그 생명력이 있으니 시편 37편1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하시면서 7~8절에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남,타인,상대방)의 의롭지 못한, 불합리한 것들에 대하여 또는 불공평한, 부조리한, 상식에 벗어난 것들을 보고서 불평하고 분노하며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미워하는 것은 그 자체 또한 행악에 치우쳐서 "불의" 를 행할 뿐이니 똑같은 사람밖에 안되기 때문이며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의 유익(입장,처지,상황)을 먼저 구하여 살피고 헤아려서 이해하려 힘쓰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의로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우리 사람(인생)은 남(다른 사람,타인,상대방)들이 보는 곳이나 잘 보이는 앞에서나 잘 보여야 할 사람과 장소에서는 세상 그리 착하고 선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친절과 겸손과 관용과 온유함과 사랑으로 베풀며 행하다가도 잘 보이지 않는 뒤에서나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러한 공간에서는 자신이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한 것이 생기면 언짢아진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고 기분이 나쁜 감정을 여과없이 보이면서 비방(흉보고 욕함)과 사나움과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 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속임)와 죄를 행하니 과연 이러한 이중 인격, 양면성의 우리 사람의 모습(자세)을 의롭고 착한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악한 사람이라, 불의한 자라 해야 맞을까? 야고보서 3장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하시면서 8절에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세상에 말이 되었건 행동이 되었건 실수가 없는 사람이 없음으로 하여 그 당사자가 없다고 흉을 보고 욕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들보(누가복음 6장41~42절)는 보지 못하고서 남의 티만 보고 있는 어리석은 자요 행악에 치우치고 있는 불의한 자이며 하나님 앞에 외식하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이니 그런즉 차라리 그 입에 재갈을 먹여 잠잠(시편 39편1~2절)하는 것이 좋으며 "묵언수행(默言修行)" 하는 것처럼 차라리 묵묵히 있는 것이 쉬지 아니하는 악과 죽이는 독이 가득한 입으로 범죄치 않는 것임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 16장10절에 "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지극히 작은 것, 아주 작고 사소한 것 즉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아서 매사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몸에 밴 겸손과 배려와 이해와 양보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연스레 나오게 되리니 동전 뒤집듯 좋은 땐 좋게, 안좋은 땐 나쁘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수 없으며 로마서 6장12~13절에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우리 사람은 내 자신이 원하는대로 마음이 내키는대로 미우면 미워하고 싫어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불평하며, 못마땅해지면 사나워져서 함부로하며, 언짢아지면 다투며 무례히 행하기를 손과 발과 입과 눈과 귀가 빨랐으며 이리 행하기가 쉽고 편했으니 이러한 사욕을 좇아서 감각이 없는 자처럼 방탕에 방임(에베소서 4장19절)하던 것이 지나간 날로 족하며 이제는 말과 행위(행동,행실)를 일깨우고 돌이켜 고쳐서 행하여야 하며 이렇듯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고린도전서 6장9~10절)으로 받을 수 없으니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는 하나님께 있는 무한한, 무궁한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이 있기 때문이며 그런즉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면 무엇보다 불의(디모데후서 2장19절)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호세아 14장1절에 "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죄가 없으신 분(요한일서 3장5절)으로서 죄있는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를 입고 오셔서 죄와 악을, 불의함을 버리기 위하여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그러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것은 그리스도 자신,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이 방법(지혜)이 아니고선 우리 사람의 죄와 악에서, 불의함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본보기를 보이시기 위하여 몸소 실천하여 행하심으로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좇아오게, 지켜 행하게 하려 하심이며 또한 지금 우리 사람의 마음의 양면성, 이중성 즉 악한 양심으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앞(베드로전서 3장18절)에 갈 수 없음으로 하여 선한 양심으로 온전히 바뀌고 새롭게 변화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죄악과 불의에 대하여 죽으시는 죽으심의 본보기를 보이셨으니 믿는다면, 의지한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면 입으로만, 혀로만, 말로만, 말뿐인 것이 아니라 생명처럼, 사명처럼 지켜 행하여야 하며 불의함에 엎드러졌던 지나날의 우리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의롭다 함(디도서 3장7~8절)을 옷처럼 입어서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