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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이사야 66장12절)

교훈 안에 2020. 4. 21. 05:45

오늘은 이사야 66장12절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 에서 "평강(平康)"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평강" 이라 함은 어떤 근심, 걱정이 없이 무고(無故)하여 마음에 평화 즉 마음이 편안하고 평안한 상태를 의미하며 하지만 이 세상에 근심, 걱정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외치고 있는 우리들 또한 그 마음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의 씨(누가복음 8장11절)가 있음으로 하여 이 씨가 자라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온전히 결실(누가복음 8장14~15절)하여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 본보기로써 이미 결실하심으로 생명(요한복음 11장25절)이 되셨으며 그 생명이 평강의 왕(히브리서 7장2절)이 되게 하신 것이며 또한 생명 나무(요한복음 15장1절)이신 그리스도의 가지에 붙어있는 실과(계시록 22장2절) 곧 우리도 처음 익은 열매가 되어 생명 나무에 붙어 있는 생명 나무 가지요 열매로서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부활)에 참예하게 되고 이것이 구원이요 이 길에 들어서야 그 마음에 이미 안식을 얻어서 평강이 강 같이 이르게 되는데.....

하지만 결실치 못하고서 조그마한 돌부리에도, 작은 파도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며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된 것은 사람 살아가는 것은 다 똑같기 때문에 마음 같지 않게,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런저런 고생과 괴로움을 겪으면서 여러 근심, 걱정이 생기게 되며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가 자신의 유익과 이익만을 위하며 챙기게 되고 그러한 마음이 때로는 타인을 깎아내리고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게 되며 때로는 못마땅함에 미워하고 비방하고 마음에 안듦에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는 죄를 범하며 악을 행하게 되니 그 마음에 평강이 있기 보다는 근심, 걱정이 앞서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인 부분 즉 인생 성공을 위해 한 탕이나 한 방의 유혹을 저버릴 수 없고 또한 기왕에 살아감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좀더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욕망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 곧 최고한 계명과 완전한 율법을 좇아서 행하지 못하게 하여 돈(재리)의 유혹을 좇아가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여러 근심, 걱정이 더욱 생기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게 되므로 무엇보다 잠언서 3장

1~2절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하시면서 7절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하는 것처럼 죄를 범하며 악을 행하던 것에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삶의 지혜라 할지라도 결코 온전한 위로와 위안이 되지 못하며 큰 파도나 바위에 부딪힐 때에 갈 곳과 갈 길을 잃어버리고 또 다시 엄습하는 근심과 걱정 때문에 편안하고 평안한 평강은 사라지리니 오직 "서로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최고한 계명과 완전한 율법의 강령(마태복음 22장37~40절)이, 이 명령을 지켜 행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행하였던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려고 노력(훈련,연습)을 할 때에 비로소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는 생명에 이르게 되며 그 마음에 평강이 강 같이 있게 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9장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들에게 나타나신 "한 아기" 는 잘 알고 계시듯이 "그리스도

" 이시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도 처음부터 평강의 왕이셨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에는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 있는 육신이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를 입고 나셨기 때문에 우리 사람과 똑같이 어렸을 때에는 미우면 미워하고 원망하며 못마땅하면 분노하고 비방하며 마음에 안들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는 죄를 범하며 악을 행하였으며 그러나 누구나 마찬가지이듯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노력(훈련,연습)을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최고한 계명과 완전한 율법이었음을,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靈) 곧 성령(聖靈)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강령(綱領)이었음을 일깨우시고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피땀눈물의 노력 즉 십자가의 고난을 달게 여기시고 겪으셨으며 그 십자가의 고난이 오히려 그 마음에 평강이 있게 하였으니 히브리서 5장7~9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하는 것처럼 여기에서 "육체에 계실 때" 라 하심은 어렸을 때의 죄 있는, 죄의 종의 형체에 있어서 우리 사람과 같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는 죄를 범하며 악을 행하던 때를 의미하며 하지만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곧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심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법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셨고 온저케 되셨다는 것은 생명(부활)에 들어가신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곧 구원에 이르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생명으로 들어가야만이 마음에 평화, 평강을 얻을 수 있음을 우리를 위하여 본보기로 앞서 보이신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59장1~3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시면서 8절에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세상에 자식이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보고도,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부모는 아무도 없으리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아버지)은 더욱 그러하시니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망(죽음)과 멸망에 임하게 된 것은, 그로 인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은 오직 우리 사람의 생명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좇아서 행하기 보다는 재리(돈)의 유혹과 즐기고자 하는 일락(日樂) 즉 잠깐의 즐거움과 재미와 행복을 위하여 힘써 좇아가지 않으며 오히려 마음이 가는대로 미우면 미워하고 못마땅하면 비방하고 마음에 안들면 함부로하는 죄와 악을 더욱 좇으므로 그 마음에 평화와 평강이 있기 보다는 염려와 불안이 더욱 재리의 유혹과 일락을 좇게 하였으니 베드로후서 3장4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 있으며 그 때에는 이미 앞서서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본보기를 보이심으로 생명에 들어가시고 구원에 이르셨으므로 평강의 왕이 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 본과 자취를 좇아서 점도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계시니 먼저 마음에 평화와 평강에 이르는 것(로마서 2장7절)이 우리가 준비하고 예비해야 할 모습(자세)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