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한복음 8장9절에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에서 "양심(良心)"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대인들의 율법사들(그 당시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자)이 간음(=행음)을 행하는 여자를 현장에서 붙잡아서 그리스도께로 끌고 왔을 때에 7절에서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면서 그 후에 되어진 일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말씀으로써 "간음(행음)" 은 남녀가 두 마음을 품어서 다른 남자를,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거나 육체적으로도 선(線)을 넘는 것을 의미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들여다 보자면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분명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도 행실은 지켜 행하라고 주신 계명 곧 "십 계명" 의 최고한 계명(로마서 13장8~10절)대로 지켜 행하지 않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으로 행한다면 이는 한 우물에서 쓴물, 단물(야고보서 3장9~12절)이 나오는 것이요 한 집에서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며 한 몸에 두 마음을 품은 "간음" 이니 그런즉 모든 사람(로마서 3장23절)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이처럼 세상이 악함(요한복음 7장7절)을 아신고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신 것이며 그러할 때에 "양심의 가책" 을 받아 다 나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양심" 이라 함은 옳고 그릇된 것 즉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악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마음을 의미하며 중요한 것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도의적으로 선(善), 악(惡)을 구분하고 의(義)와 불의(不義)를 구별할 줄 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선(善)으로만, 의(義)롭게만 행하여야 하는데 우리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이익(입장,처지,성공... 등등등) 관계에 얽히고 설켜 있어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행하며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밟아버리는 악대로 그릇되게 행하니 이를 "비양심(非良心)", 또는 "악한 양심" 이라 하며 그런즉 우리 사람을 "선한 양심의 소유자" 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악한 양심의 소유자" 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것으로써 선(善)하게, 의(義)롭게 행한다는 것은 나의 유익(기준,관점)과 이익(입장,처지)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헤아려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며 관용으로 배려해주고 양보해주며 무슨 혐의(잘못,실수)가 있더라도 용납하고 용서해줄 줄 아는 "사랑" 이 기본적으로 마음에 깔려 있어야만이 가능한 것이므로 기분에 의해서, 사람에 따라서, 욕심(유익이나 이익)에 의해서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왔다갔다, 오락가락한다면 어찌 선하고 의로운 양심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5절에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사람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 행하여야 할 하나님 나라 천국 법 곧 "율법" 을 통하여 계명 곧 "십 계명" 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최고한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할 때에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또한 아담의 때, 노아의 때, 아브라함의 때, 모세의 때, 사사시대, 분열 왕국시대, 초림 그리스도의 때로 세대세대(전도서 1장4절)를 분류하여 그 시대의 그 세대 사람들을 재소환하고 재조명하여서 그 마음들의 어떠함을 설명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선(善)과 의(義)가 무엇인지, 악(惡)과 불의(不義)가 어떤 것인지 사람이라면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켜 행하기를 바라시는 사랑(인애,자비,긍휼)으로 행하지 않고 패역(호세아 6장6~7절)을 행하였으며 가인(요한일서 3장11~15절)은 죄와 악을 다스리지 못함(창세기 4장7절)으로 인하여 동생 아벨을 쳐죽였으며 야곱에게 열두 아들들이 있는데 그 중에 요셉이 미워서 그 형들은 돈 받고 애굽에 팔아 버렸으며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 광야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을 코 앞에 두고 모두다 죽었으며 이는 악한 양심을 버리고 선한 양심으로 행하기를 바라시는 거울과 경계와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써 계명의 법에 순종함(히브리서 5장7~9절)이 진정 구원을 얻는 믿음이지만 하나 같이 하나님을 배신(배역,배도)하고 기분껏, 욕심껏, 마음껏 죄대로 악대로 행함으로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함으로 결국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 밷고 업신여기는 악한 양심을 버리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못박아 죽였으며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는 우리들은 과연 악한 양심을 버리고 선한 양심으로 행하고 있는가? 하는 우리의 마음을 이제 거울처럼 들여다 보아야 할 때이니 아직도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제아무리 우리에게 생명과 안식(히브리서 4장7~9절)과 구원으로 들어갈 기회가 남아 있을지라도 악한 양심을 버리고 선한 양심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로 그 기회는 옮겨간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0장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고 쓰고 있듯이 마음에 뿌림을 받은 것은 세례식, 세수 세족식, 침례식 때에 뿌리는 "물"도 아니라 이러한 것으로는 육체는 깨끗하게 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음에 추하고 더러운 죄와 악은 오직 거듭나게 하는, 새롭게 되게 하는 "말씀의 물(베드로전서 3장21절)" 이며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껏 아직도 여전히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방탕에 자신을 방임하였던 것에서 벗어나야 하며 벗어나서 이겨내려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겪어야만이 비로소 마음과 생각이 깨끗하게 씻겨지는 참 형상의 세례를 받음으로 구원 받을 자격을 얻게 되리니 칼이 마음을 사람의 마음의 생각 즉 양심의 악함을 드러내려 함(누가복음 2장34~35절)에는 정죄하고자 함이 아니라 인지를 하고 인정을 해야만이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