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니엘 1장1절에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 에서 "에워싸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에워싸다." 는 것은 도망갈 수 없도록 사방으로 둘러싸는 것을 말하며 모세의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 노릇(미6:4) 한 것도 애굽에 에워싸여서 사로잡혀 애굽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서 솔로몬 왕 이후로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어 있을 때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에워싸이고 사로잡혀서 그들의 포로가 되었으니 중요한 것은 예레미야 1장3절에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일 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 잡히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왜 시대시대마다, 그 세대세대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족속에게 에워싸이고 그들의 포로가 되어서 모세의 때에는 애굽에게 자그마치 430년 동안이나, 또 바벨론에게 70년 동안이나 종노릇을 해야만 했을까?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백성들을 이방인의 손에 붙이신 이유는 예레미야 4장16~17절에 "너희는 열방에 고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하시면서 22절에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하시는 것처럼 그 믿는다고 하는 택한 백성(성도,자녀)들이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분명 주의 이름을 외치며 믿는다고 부르짖고는 있는데 정작 지켜 행하라고 주신 계명(갈5:14~15)은 지켜 행하지 않고 거역하였으며 또한 그 마음이 상전(上典)이 되어 상석(上席)에 앉아서 떠받들어 주는 것만 좋아하고 재력이나 학력이나 권위나 지위나 나이와 같은 칼자루를 쥐고서 좌지우지 하는 것만 좋아하여 마음에 안들거나 못마땅해지면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밟아버리는 악(惡)으로 행하였니 이방 족속의 이방인에게 붙이신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다니엘 9장2절에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430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이 나고죽고 나고죽고 하기를 몇 번을 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노예로, 종으로 살아가면서 노예 근성과 종의 근성이 몸과 마음에 박히고도 남을 시간이며 또한 70년 역시 사람(인생)의 년수(수한)가 7,80이요 길어야 100년인데 기력이 쇠하고 질병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고 그마저도 사고나 재해로 갑자기 죽게 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과연 살아서 자유와 기쁨과 행복에 관한 소망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고도 남음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시간만 흘렀을 뿐, 공간만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서로가 서로에게 못됐고 나쁘고 악한 것으로 행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행한 것이 어찌 어제 오늘의 일이랴. 이사야 10장4~5절에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방족속을 몽둥이처럼, 막대기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그들의 손에 붙이심은 말에게는 채찍이 필요하고 나귀에게는 자갈이 필요하듯 선과 의에 대하여 무뎌지고 무감각해져서 미련해져 있는 우리들의 등에는 막대기(잠26:3)기 필요하니 그 몽둥이, 막대기로써 이방 족속을 부르신 것이며 이는 때려서라도 쳐서라도 악을 행하고 우준하고 미련하여 선을 행할 지혜가 없는 우리들을 일깨우고 돌이켜 고쳐 행하게 하고자 하심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0장6절에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하시는 것처럼 지나간 역사적 사건이나 일은 지식적으로 알리고자 기록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생명의 교훈(롬15:4)이 되고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들여다 보아서 밉다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뜻대로 안된다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못마땅하다고 사나워져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악을 즐겨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서 선으로, 의로, 사랑으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 아직도 죄대로 악대로 행하고 있다면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 이방 족속은 오직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약3:14~16) 죄와 악으로 행하는 것으로써 그것에 에워싸이고 사로잡혀서 포로가 되어 행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의 이방 족속에 싸워싸이고 사로잡힌 것을 드러내고 나타내 보이신 것으로써 마가복음 13장19~20절에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시는 것처럼 파리나 모기를 보면 망설임 없이 잡아 죽이는 것처럼 우리 사람의 목숨도 각종 질병이나 재해나 사고 앞에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파리 목숨이나 다름이 없으니 우리의 믿음의 소망이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있음을 성경 66권에서 기록하여 주셨고 그 길로 걸어가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나간 시대와 세대처럼 죄대로 악대로 행하지 말아서 주신 계명(눅10:25~28)에 순종할 때에 에워싸이고 사로잡혀서 포로되어 종 노릇하던 죄와 악에 대하여 자유와 기쁨으로 구원을 주시리니 이전처럼 나고죽고 나고죽고 400년 이었던, 70년 이었던 것에서 오늘날에는 육체로 구원하기 위하여 살아 있을 때에 믿음의 소망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가게 하시기를 약속(언약)하여 주신 것이 오늘날에 우리 앞에 놓인 구원에 대한 좋은 날(벧후3:10~11)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