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복음 7장27절에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에서 "길 예비하는 사자(목자)" 곧 "세례(침례)요한"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말라기 3장1~7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으로써 마태복음 5장18절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시는 것처럼 "천지(天地)" 곧 하늘처럼 높아야 할 이치(사상,이론)는 땅 아래로 곤두박칠쳐졌고 땅같이 낮아야 할 이치(이념,논리)는 권력이 쎄고 학력이 높고 재력이 많아서 높은 위치(지위,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늘을 찌르고 있는 천지가 뒤바뀌어 버린 이러한 세상에서 이러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성경 66권 율법의 말씀의 일점일획도 다 이루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의 차원에서 과연 "길 예비 사자" 에 관한 말씀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하며 무엇으로 이루어지게 되는가? 하는 것을 오늘 이 시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니.....
그래서 말라기 3장1절에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殿)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사자는 "그리스도" 시요 그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 세상 끝(롬9:28),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과연 "길 예비 사자" 는 누구이며 어떻게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드러나고 나타나서 이 말씀을 이루게(응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리니... 다시 말해서 "그 전(殿)에 임하였다." 는 것은 그 길 예비 사자의 성전 곧 교회에 언약의 사자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성전(교회)에 있었음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그 교회에서 "세례(침례)" 를 받는 것 또는 그 교회 교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수료증이나 교적부가 되며 실질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세례(마3:13~17)를 받은 것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어서 한 때(어릴 때)는 그리스도께서도 여느 교회의 성도였음을 말하고자 알리고자 하신 것이며 하지만 이는 단면적인 방법과 모습에 불과하여서 중요한 것은 성경적으로 이 "길 예비 사자" 에 대하여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니 누가복음 1장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이 말씀은 말라기 4장5~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이며 여기에서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 이라 하심은 "세례(침례)요한" 으로서 "엘리야 선지자" 는 아합 왕 시대에 아합 왕이 이방 여인 이세벨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녀가 섬기고 숭배하던 바알신까지 끌여들여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믿게 하는 것에 분노하여서 3년 6개월(마흔 두달, 천이백육십 일) 동안 하늘을 닫아 비오지 못하게 하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릴 것을 예언하였던 인물로서 그러한 엘리야의 심령으로 온다는 것은 그러한 흔적을 갖고 있고 그러한 흔적으로 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오늘날의 "엘리야" 곧 "길 예비 사자" 가 되며 그 성전(교회)에서 언약의 사자가 드러나고 나타나게 되며 그러나 우리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처음에 가졌던 신실하고 순전한 마음 즉 "처음 사랑의 마음(계2:4)"의 잊어버리게 되며 시간이 흐르면 명예가 쌓이고 재력이 쌓이고 권력이 쌓이면서 체면과 자존심도 하늘처럼 높아지고 칼자루를 자신의 뜻대로 임의대로 마음대로 휘두르게 되고 자기 밑으로 줄 세우고 뒤 봐주고 눈 감아주면서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해지면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밟아버리는 하나님의 계명(약2:8~9)이 아닌 사람의 계명 곧 죄대로 악대로 좇아가게 되니 안좋은 그 끝을 보게 되는 것이요 그 때에 언약의 사자의 그 상심하고 상한 심령(시51:17)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보다 갑진 금은보화, 보석, 진주보다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되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여 오직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한 사람 곧 언약의 사자요 그리스도가 되신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계시록 11장3~4절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하시면서 8절에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두 증인" 이라 하심은 하나님의 되어질 일들을 지켜 본 사람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되어질 일들은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집(장막,성전,교회) 안에서 있어지는 권력과 알력으로 말미암은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암투로 인하여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세상 사람들 즉 이방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똑같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을 의미하니 이는 마치 흡사 아합왕(목자,전도자,지도자)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절하고 섬기고 숭배하는 모습과 같아서 영적으로 하면 범죄의 도시 소돔이요 이방족속 애굽이요 세상과 똑같이 되어버린 예루살렘(주께서 못 박히신 곳)과 같아서 이러한 곳에 하나님 말씀의 비가 일천이백육십 일(마흔두 달, 3년6개월) 동안 내리지 못하는 가뭄을 예언한 것이 "두 증인" 이요 이것이 "길 예비 사자" 요 그들의 다 할 사명의 모습이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신실하고 순전했던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재력과 권력과 권위가 쌓이고 생기면 그 마음도 칼자루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늘을 찌르듯하게 되면서 그 말로가 길 예비 사자였던 "세례(침례) 요한(막6:17~29)" 과 같게 되며 중요한 것은 그러한 죄대로 악대로 좇아가는 사람의 모습에 마음이 상하여 상한 심령이 되어야만이 우리 자신이 고쳐 행할 수 있게 되며 고쳐 행함에 기준은 죄되고 악한 것을 버리려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에 있으며 그 고난을 통하여 죄되고 악한 것에서 벗어나고 이겨내야만이 비로소 사람의 계명이 아닌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히10:7~9) 수 있게 되며 그 순종함이 말뿐이 아닌 말만 앞세우는 것이 아닌 진정 하나님을 믿는 자라 할 수 있으며 그 순종함이 우리로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